버락킴의 극장

<제보자>의 외침, 진실을 밝히는 것이 국익이다

너의길을가라 2014. 10. 4.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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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보자>는 관객에게 '진실이 먼저냐, 국익이 먼저냐'는 물음을 던진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어라? 뭐가 더 우선이지?' <제보자>는 잠깐이나마 고민에 빠졌을 우리들이 머쓱해질 정도로 명쾌한 답을 내린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국익이다'



'본 영화는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으나 영화적으로 재구성된 픽션임을 밝힙니다'


영화 도입부에서 '픽션'이라는 것을 밝히면서 실명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진 않았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장환 박사(이경영)가 황우석 박사라는 것을 알고, 'PD추적'이 'PD수첩'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 <제보자>는 지난 2005년 대한민국을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스캔들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2005년 5월 황우석 박사는 체세포 핵이식을 이용해 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실린 논문을 세계 최고 권위를 지닌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황 박사는 단숨에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했고, 그의 말과 행동은 신앙의 대상이 됐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산업으로 각광받고, 현란한 숫자들이 나열된 경제적 가치와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거짓된 희망'이 점철되면서 대한민국의 그야말로 황우석 신드롬에 빠져 허우적댔다. 여기에는 정부도 마찬가지였고, 언론도 예외가 아니었다.



황우석 신드롬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던 2005년 12월 22일 대한민국 언론사를 통틀어 가장 뜨겁고 격렬한 후폭풍을 불러일으켰던 방송이 전파를 탔다. 바로 'PD수첩'의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 편이었다. 영화에서도 잘 표현됐던 것처럼, 진실이 밝혀지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방송사 간부들은 "진실은 중요치 않다. 국민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방송을 접으라고 압박하고, 시민들은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박사님을 믿는다"면서 방송국 앞에서 침묵 시위를 벌인다.


<제보자>는 '진실'이 밝혀지기까지의 혹독하고 처절한 과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연출을 맡은 임순례 감독은 "'진실을 알리고 싶다'는 아이템에서부터 출발했"다면서 "여기서 말하는 진실은 실제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말 자체를 의미한다. 우리는 늘 진실이라는 것 앞에 당당했는지,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은 진실 앞에서 어떤 행동을 보였는지 조금이나마 전하고 싶었다. 그 시작과 끝이 바로 '제보자'다"라며 영화를 만들게 된 동기를 밝혔다



영화에서는 '황우석 스캔들'을 다루고 있지만, 임순례 감독이 진정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진실' 그 자체다. 진실이 세상에 밝혀지기까지의 그 험난한 과정 말이다. 진실을 알고 있는 한 명의 제보자에서부터 시작된 싸움은 제보자를 지켜내는 것으로 이어지고, 그 바통은 '언론'이 이어받는다. 의문을 제기하고, 검증을 하는 과정을 통해 진실은 확인된다.


물론 그 과정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물리적 위협으로부터 경제적 압박, 지인과 가족을 동원(이용)한 압력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은폐'가 시도된다. 권력을 이용해 언론의 입을 막고, 제보자에게는 신변의 위협이 가해진다. 더욱 손쉬운 방법은 제보자를 흠집내는 것이다. 달이 아니라 손가락을 바라보게 하는 전략은 너무도 흔한 것이지만 백방백중의 성공률을 자랑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섰음에도 여전히 '제보자'는 사회적으로 그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내부 고발자'라는 이름은 아직까지도 '배신자'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제보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제보자'가 외면당하는 사회에서 '진실'은 모습을 드러내기 어렵다. 거짓과 비리가 횡행하는 사회를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 제보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언론은 어떠한가? "제보, 한 분의 결심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헛되지 않게 하려면 각각 기능을 하시는 분들이 어우러져야 되는데, 10년 전만 해도 그런 노력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더 어렵고 약화됐다. 그리고 약화된 원인 중 언론의 위상 추락이 많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는 임순례 감독의 말처럼 2014년의 대한민국은 '진실'이 밝혀지기 더욱 어려운 구조로 바뀌어 버렸다.



한 택시기사가 윤철민 PD(박해일)에게 "내가 다른 프로그램은 안 보는데 <PD추적>은 믿고 본다"고 말하는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오른다. 2014년 대한민국, 우리에겐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가? 믿고 볼 수 있는 오로지 진실만을 향해 나아가는 언론이 존재하는가? 아니,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2014년의 대한민국, 우리는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것이 고통스럽고 아픈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내 믿음과는 상반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기꺼이 수용할 마음의 자세를 갖추고 있는가?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은 어쩌면 모두에게 불편한 일일 수 있다. 그 불편함을 묻어두기 위해 우리는 진실을 묻어두고, 다른 무언가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스스로를 속여왔다. 그 무언가는 '신념'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국익'일 수도 있다. 그러한 거짓말과 정당화는 과거에도 있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그와 함께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끊임없는 싸움 또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고(故) 이영희 선생의 말을 떠올려보는 것으로 <제보자>에 대한 짧은 감상을 마치고자 한다. "내가 종교처럼 숭앙하고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진실이다. 진실에 입각하지 않은 애국은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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