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루시>, 초능력으로 귀결된 뇌와 인간에 대한 철학적 물음

너의길을가라 2014. 9. 4.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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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추석 극장가를 노리고 세 편의 영화가 오늘 동시에 개봉했다. 강동원 · 송혜교 주연의 선천성 조로증을 다룬 <두근두근 내인생><과속스캔들>과 <써니>를 연출한 강형철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타짜-신의 손> 그리고 뤽 베송 감독이 연출을 맡고,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을 맡은 <루시>가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다. 특히 <루시>의 경우에는 최민식의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여름 극장가는 <군도>, <명량>, <해적>, <해무>가 1, 2 주의 간격을 두고 차례차례 개봉을 하면서 관객들에게 영화 선택의 순서를 강요한 측면이 있다면, 추석 극장가는 장르가 다른 세 편의 영화가 동시에 개봉함으로써 관객들이 취향에 따라 골라 볼 수 있는 선택권을 갖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무제한의 선택권을 갖는다는 뜻은 아니다. 12세 이상 관람가를 받은 <두근두근 내인생>를 제외한 나머지 두 편은 모두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추석 극장가라는 특수를 감안한다면, '감동'을 주무기로 삼고 있는 <두근두근 내인생>이 다양한 관객과의 소통을 통해 흥행 싸움에서 다소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가족이 함께 영화관을 찾게 됐을 때, 다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입소문'이 작용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영화의 완성도가 개입될 여지도 사실상 없어 보인다.


<타짜-신의 손>과 <루시>의 경우에는 청소년 관람 불가라고 하는 핸디캡을 얼마나 잘 돌파해 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게다가 <타짜-신의 손>은 주연 배우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점을 김윤식, 유해진 등의 배우들로 상쇄시키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루시>는 뤽 베송 감독 특유의 난해함이 관객의 외면을 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에 반해 스칼렛 요한슨과 최민식이라고 하는 주 · 조연 배우의 힘은 다른 영화들에 비해 뛰어난 편이다.



필자의 경우에는 '이 영화는 감독적이에요'라는 이야기를 건네는 듯한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탓에 <두근두근 내앤생>은 제외했고, 도박(+폭력)을 다룬 영화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타짜 - 신의 손>도 배제했다. 게다가 <타짜 - 신의 손>의 경우에는 주연 배우들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별다른 미련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리하여 선택한 영화는 바로 <루시>였다.


10%, 인간의 평균 뇌사용량

24%, 신체의 완벽한 통제

40%, 모든 상황의 제어 가능

62%, 타인의 행동을 컨트롤

100%, 한계를 뛰어넘는 액션의 진화가 시작된다!


'고작 10% 정도에 불과한 인간의 뇌 사용량. 만약 인간이 뇌를 100%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영화 <루시>는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을 만한 흥미로운 물음에서부터 출발한다. 루시(스칼렛 요한슨)는 사귄 지 1주일 밖에 되지 않은 남자친구의 꼬임에 의해 미스터 장(최민식)이라는 인물에게 서류 가방을 전달하게 된다. 그 가방에는 신종마약 CPH4가 들어있었고, 미스터 장은 루시에게 이 마약을 운반하도록 지시한다.


예상치 못한 일로 인해 루시의 몸에 CPH4가 흡수되고, 이에 따라 전기적 반응이 일어나면서 루시는 뇌가 영역을 확장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이후부터 영화는 루시가 뇌 사용량을 높여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단계적으로 풀어낸다. 뤽 베송 감독이 <루시>를 만든 이유는 간단하다. 뇌의 신비 더 나아가 인간의 존재에 대해 한 번쯤 깊이 생각해보길 바라는 것이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와서 '와, 정말 대단한데! 인간의 뇌와 지성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라고 생각하고 또한 그것에 대해 더 알아보기를 바란다" (뤽 베송 감독)


감독의 바람처럼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데 있어서 <루시>가 일정한 기여를 하려면, 영화적 상상력이 매우 뛰어나거나 혹은 연출력이 관객의 마음을 완전히 훔쳐야만 가능했을 것이다. 아쉽게도 <루시>는 90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연출력은 다소 식상하고, 심지어 화면으로 구현되는 영화적 상상력도 기대에 못 미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결국 시간으로밖에 증명할 길이 없다'는 철학적 물음, 뇌의 신비라고 하는 과학적 궁금증, 진화와 초월이라고 하는 인류에 대한 고민은 '초능력'이라고 하는 카테고리에 묶여 방황하고 만다. 물론 인간은 단 한 번도 뇌를 100% 활용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사용량을 늘어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신체를 움직이고,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초능력의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는 상상력에 마냥 딴지를 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영화는 다큐가 아니기 때문에 영화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고자 하는 감독의 생각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이를 표현해내는 방식이 다소 평이했던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진화'와 '초월'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루시>는 조니 뎁이 주연을 했던 <트랜센던스>가 연상시킨다. <트랜센던스>를 봤던 관객이라면 <루시>의 '표현'들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의 두뇌가 업로드된 슈퍼컴퓨터가 온라인에 접속해 스스로 진화를 거듭하면서 '한계'를 초월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트랜센던스>의 영화적 상상력이 오히려 '현실적'이었고, '설득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스칼렛 요한슨은 그 이름만으로도 관객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최고의 여배우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루시>에서도 그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었다. <그녀(her)>에서 목소리만으로도 엄청난 카리스마를 선보였던 스칼렛 요한슨은 <돈 존>, <언더 더 스킨>에 이어 <루시>를 선택하면서 다소 '독특한' 필모그래피를 쌓아나가고 있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그의 연기 욕심엔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다. 다음 영화는 다시 정통 할리우드 영화의 계보를 잇는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라고 하니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라 할 만 하다.



뤽 베송이나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이름 때문에 영화를 선택한 관객도 많겠지만, 최민식이라는 배우를 보기 위해 <루시>를 선택한 관객도 상당수 될 것이다. 뤽 베송 감독은 "나는 최민식에게 매료됐다. 그는 내가 만난 가장 훌륭한 배우들 중 하나다. 최민식은 매우 흠모할 만하고 친절하다"고 말했고, 스칼렛 요한슨은 "최민식과 함께 일하는 것은 정말 멋졌다. 우리의 언어는 서로 달랐지만 표정으로 서로 의사소통을 잘 할 수 있었다.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표현력이 훌륭하다. 때문에 최민식의 연기는 정말로 볼 만 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만큼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인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최민식에게 부여된 '롤'이 작았다. 물론 그것이 최민식의 할리우드 데뷔작이라는 측면과 할리우드에서 동양 배우가 갖는 위상 등을 감안하면 큰 비중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또,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롤' 안에서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다만, 그가 연기한 미스터 장은 그의 연기를 모두 선보이기에는 지나치게 평면적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뤽 베송 감독은 최민식이 연기한 미스터 장이 영어가 아닌 한국어를 쓰도록 했고, 루시(스칼렛 요한슨)과의 의사소통은 통역을 거치도록 연출했다. 뤽 베송 감독은 영화 초반부에서는 의도적으로 영어 자막을 삽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것에서 오는 공포와 불안을 관객들도 고스란히 느끼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영화적 장치는 북미를 비롯한 영어권 관객들에게는 분명히 효과를 거두었겠지만, 애초에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고 있는 대한민국의 관객들은 본의 아니게 모든 상황을 이해한 채로 다소 평온하게 영화를 감상할 수밖에 없게 되어 버렸다. 뇌의 활성화가 상당히 이뤄진 상태에 놓여 있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관객이라고나 할까?


지난 7월 25일 북미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며, 흥행 수익 1억 1857만 달러를 기록했던 <루시>가 대한민국에서도 흥행 대박을 거둘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물론 뇌의 활성화가 이뤄진다면 이를 예측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그런 능력을 가진 인간은 나타나지 않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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