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군도 → 명량 → 해적, 꼬리에 꼬리를 무는 흥행 스토리

너의길을가라 2014. 8. 12.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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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한국영화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밀려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다. 점유율은 고작 43%로 2009년 이후 역대 최저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하반기부터 <군도>를 필두로 <명량>, <해적>, <해무>까지 공교롭게도 두 글자 제목의 기대작들이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만큼 대대적인 반격이 예상됐었다.


아직 <해무>가 개봉(8월 13일 개봉)을 하지 않은 가운데, 관객을 만난 세 편의 영화는 모두 나름대로 선전을 했거나 하고 있는 중이다. 우선, <군도>는 개봉 첫 날 5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당시만 해도 개봉일 55만 명은 역대 최다 기록이었다. 흥행 가도는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이어져 7일 만에 350만 돌파에 성공했다. 그러나 <군도>의 시대는 거기까지였다.



<군도>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강동원에 대한 애착 때문에 의적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고, 그만큼 영화의 초점이 흐려졌다는 혹평을 받았다. '뭉치면 백성, 흩어지면 도적'이라는 메시지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묵직함을 기대했지만 지나치게 가벼웠던 <군도>는 점차 동력을 잃어갔고, <군도>에 대한 아쉬움은 고스란히 <명량>으로 이어졌다. <군도>에 실망했던 관객들은 자신들의 해소되지 못한 카타르시스를 <명량>을 통해 풀어내기 시작했다. <명량>의 흥행 대박에는 알게 모르게 <군도>의 공이 있었던 셈이다.


개봉 첫 날 무려 68만 명의 관객이 <명량>을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다. <군도>가 세웠던 개봉일 최다 관객 기록을 깨면서 시작된 '기록 행진'은 흥행 기록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기에 이른다. 현 재 1,100만 관객을 돌파한 <명량>은 <아바타>가 가지고 있는 역대 박스오피스 기록(1,362만 명)을 갈아치울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관건은 과연 <명량>의 흥행 기록이 어디까지 이어질지에 맞춰지고 있는데, 1,500만 관객이라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명량>이 갈아치운 흥행 기록


역대 최고의 오프닝 스코어(68만), 역대 최고의 평일 스코어(98만), 역대 최고의 일일 스코어(125만), 최단 100만 돌파(2일), 최단 200만 돌파(3일), 최단 300만 돌파(4일), 최단 400만 돌파(5일), 최단 500만 돌파(6일), 최단 600만 돌파(7일), 최단 700만 돌파(8일), 최단 800만 돌파(10일), 최단 900만 돌파(11일), 최단 1,000만 돌파(12일)



<명량>은 12척의 배로 330석에 달하는 왜군과 맞서 싸워 기적의 승리를 거둔 '명량대첩'을 스펙터클하고 그려냈다. 이순신의 일대기를 다루기보다 한 번의 전투에 모든 것을 집중시킨 선택이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역사책을 통해 글로만 '읽었던' 명량대첩이 눈 앞으로 그려질 때 느껴지는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감격스러웠다. 김한민 감독은 "61분 해전신이 관객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면 이 영화는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 것처럼 <명량>은 그 장면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물론 <명량>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그 이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진중권은 <명량>을 두고 '졸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도 "감동의 일정 부분은 영화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의 화술은 종종 요령부득으로까지 여겨진다" 고 혹평하기도 했다. 또, '최민식을 데려다놓고 이 정도밖에 뽑아내지 못했냐'는 비판도 있다. 캐릭터를 전혀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역시 그것은 런닝타임 128분 중에서 무려 61분을 해상신에 쏟아부은 감독의 선택 탓일 것이다.


<명량>의 가히 엽기적이라 할 수 있는 흥행 돌풍은 '영웅'에 대한 시대적 바람이 맞물린 탓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군도>와는 달리 카타르시스를 자극했던 <명량>은 관객들의 입소문을 탔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사극이라는 점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영화관으로 불러들이는 장점이 십분 발휘됐다. 물론 씁쓸하지만 스크린 독점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좌석 점유율이 85% 정도로 높았다고는 하나 이는 한국영화의 장기적인 발전을 놓고 볼 때 고민해봐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군도>가 예상과 달리 지나치게 가벼웠다면, <명량>은 예상보다 지나치게 무거웠다. 그 틈새 시장을 파고든 것이 바로 예상대로 가벼운 <해적>이다. 개봉 전까지만 해도 4편의 영화 중에서 가장 기대를 받았던 작품은 <군도>였고, 가장 외면당했던 작품이 <해적>이었다. 뚜껑을 열자 결과는 반대로 나왔다. 너무 큰 기대를 받았던 <군도>는 고꾸라졌고, 상대적으로 기대를 받지 못했던 (그래서일까?) <해적>은 오히려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해적>이 내세우고 있는 마케팅 전략은 철저하게 '웃음'에 맞춰져 있다. 애초에 <명량>의 흥행 열기에 밀려 <해적>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오히려 <명량> 뒤에 개봉하는 것이 전화위복이 됐다. 그럴 수 있었던 까닭은 <해적>이 대놓고 '웃긴 영화'이기 때문이다. 한없이 묵직한 <명량>을 본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다음 영화로 '가벼운' 영화를 선택했고, <해적>은 그에 안성맞춤이었다.



제목에서부터 '잭 스패로우'라고 하는 압도적인 캐릭터를 탄생시킨 <캐리비안의 해적>을 떠올리게 하는 <해적>은 오히려 <인디아나 존스>에 보다 가까운 영화다. '위화도 회군'과 이성계가 명나라로부터 10년 동안 국새를 받지 못했다는 역사적 팩트에서부터 출발한 <해적>은 뜬금없이 '옥새를 먹어버린' 고래를 등장시키는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한다.


'옥새'를 꿀꺽한 고래를 찾기 위해 해적이 동원되고, 그 과정에서 산적과 해적이 만나는 흥미로운 이야기 구조가 펼쳐진다. 역시 주요한 웃음 포인트가 이 두 집단의 만남과 부딪침에서 비롯된다. 특히 철봉 역을 맡은 유해진의 활약은 영화의 백미(白眉)다. 다소 과장해서 말하자면, 유해진이 <해적>을 살렸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또, 주인공인 송악산의 미친 호랑이 장사정(김남길)과 해적단 단주 여월(손예진)의 로맨스도 선을 넘지 않는 정도에서 무난하게 그려졌다. 여월은 소마(이경영)와 장사정은 모흥갑(김태우)과 긴장관계를 유지하는데, 이 관계가 영화 막판까지 이어지면서 영화는 긴장의 끈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 밖에도 조연급 배우들이 욕심 내지 않고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소화했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해적'과 '산적'의 만남이라는 흥미로운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음에도 스토리나 연출 면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그러나 애초부터 '웃음'을 포인트로 하고 있고, 관객은 이에 호응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12세 관람가인만큼 가족들과 함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한국판 블록버스터 영화로 <해적>은 충분히 시장가치가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군도>는 실패를 자초했고, 그 실패는 <명량>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져 흥행 대박을 만들었다. <명량>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해소하며 한결 너그러워진 관객들은 <해적>을 통해 웃음을 즐길 수 있게 됐다. 개봉 순서를 일부러 이렇게 잡진 않았을 텐데, 참으로 공교롭고 절묘하게 됐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화를 둘러싼 흐름이 재미있지 않은가?



P.S.


1. <해적>은 개봉 6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2. 참고로 <군도>에서 스님으로 등장했던 이경영의 연기 변신과 <명량>에서 배설로 등장해 배에 불을 질렀던(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 김원해의 연기 변신도 흥미로운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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