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해무>, 극한의 상황에 몰린 인간,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다

너의길을가라 2014. 9. 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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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무>는 한마디로 '꿉꿉한 영화'다. 우선, 잔인하다. 따라서 영화관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기 마련인 여성들이 기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흥행 대박을 기대하기엔 어렵다. 지금의 144만 명이라는 스코어가 새삼 놀라운 따름이다. 이는 분명히 '봉준호 제작'에 '김윤석 박유천 주연'이라는 홍보성 미끼가 작용한 탓일 것이다. 혹자는 '해적'과 '해무'를 착각한 관객들이 꽤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해무>는 지난 2001년에 발생한 제7 태창호 사건을 바탕으로 한 연극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당시 중국인 49명과 조선족 11명이 태창호에 숨어 전라남도 여수로 밀입국을 시도하다가 26명이 질식사했다. 선장은 알선책과 연락을 하고, '시체를 바다에 버리라'는 지시를 받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필자가 <해무>를 '꿉꿉한 영화'로 정의한 까닭은 그것이 단순히 '영화적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관객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과연 인간이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걸까?" 그에 대한 대답으로 "그래, 저건 영화잖아"라는 대답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안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상상'에 불과했던 것이 실제로 존재했던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대답은 이내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구나"로 바뀌어 버린다. 외면하고 싶었던 인간의 민낯, 아니 우리 자신의 민낯을 확인하게 되면서 느끼게 되는 참담함은 생각보다 쓰리고 아프다.


물론 그들에게는 제각각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밀항이라는 범죄에 가담할 수밖에 없는 이유 말이다. 그들은 어쩔 수 없는 '뱃놈'이었고,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었다. 갚아야 하는 빚이 있었고, 지켜야 할 배가 있었다. 물론 영화 속에는 그러한 '이유'들이 분명하게 잘 드러나진 않는다. 오히려 선장을 제외한 나머지 선원들을 움직이는 것은 소위 '한 배를 탔다'고 하는 집단 의식과 선장이 내리는 명령에 대한 절대적 복종이다.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에 대한 고찰을 통해 발견한 것은 "그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악마적이지도 않았다. 우리 모두의 안에는 아이히만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독일의 전범(戰犯)으로, 대량학살을 뜻하는 '마지막 해결책'의 책임을 맡고 집행자 역할을 수행했다. 그가 한 일은 유대인들을 식별해 집단수용소로 보내 죽게 만드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토록 끔직한 학살의 집행자였던 아이히만이 일반 사람과는 다른 '괴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1960년 5월, 아이히만은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의해 체포돼 예루살렘 특별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한나 아렌트는 대학 강의를 모두 최수하고, <뉴요커>라는 잡지의 지원을 받아 특파원 자격으로 재판을 참관한다. 그도 '괴물' 아이히만의 존재를 두 눈으로 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아렌트는 "아이히만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 자" 라면서 그가 '머리에 뿔이 난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한 명의 인간'이었다고 말한다. 5·18 민주화운동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고,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했던 군인들은 어땠을까? 세월호 참사 당시에 수 백명의 사람들이 배 안에 갇혀 있는데도 탈출하라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던 선원들의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들을 죽여서는 안 된다',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5·18 민주화운동의 경우에는 분명하게도 '(잘못된) 명령에 대한 복종'이었다. 당시 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했던 군인들은 '머리에 뿔이 난 괴물'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청년들이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 것 아닐까? 그들이 다른 존재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다시 말하면 우리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말이니까 말이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에는 어떨까? 혹시 선원들은 거역할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명령'을 받고 움직였던 것은 아닐까? 극한의 상황 속에서 내려진 권위자의 불복할 수 없는 명령. 만약 그런 상황들이 제대로 설명만 된다면, 선원들의 보여줬던 비정상적인 행동들이 조금은 설명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현재로서는 '진실'은 세월호와 함께 철저히 수장되어 버렸지만.



<해무>는 제7 태창호 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하면서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얻기도 했고 외면을 당하기도 했다. '전진호'를 '대한민국'으로 비유한 글들이 쏟아지면서 '꼭 봐야 하는 영화'라고 호평을 받기도 했지만, 영화에 출연했던 한 배우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막말을 한 이산이라는 배우의 페이스북 글에 '황제단식'이라는 댓글을 달았다가 '해무 보이콧 운동'이 벌어지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영화를 영화 외적인 것들과 결부시켜 '소비'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굳이 한 명의 조연배우의 발언 때문에 영화를 보이콧할 필요까진 없어 보인다. 그런 이유 때문에 안 보기엔 너무도 아까운 영화이기 때문이다. '악의 평범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고, '세월호 참사'와 연관지어 받아들이는 것도 무방하다.



또, 선장(김윤석)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폐선 직전의 낡은 배'였다는 것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물론 그에겐 자신을 '선장'일 수 있게 하는 목숨보다 소중한 가치이겠지만, 이미 '전진호'는 피와 죽음으로 얼룩진 공간이자 껍데기만 남아 버린 허울뿐인 배일 뿐이다.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배'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선장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던져보는 것도 영화에 대한 흥미로운 복기(復棋)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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