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공연기

옥주현에 대한 편견, 전율 그 자체 '마타하리' 보고 버렸다

너의길을가라 2024. 12. 28.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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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의 조명이 바뀐다. 화려한 붉은 색 전통 의상을 입은 댄서가 매혹적인 춤사위를 선보인다. 숨을 멎게 만들 정도로 현란한 몸짓에 관객은 넋을 잃게 된다. 무대가 그를 위해 존재하는 듯하고, 그는 무대를 위해 태어난 존재같다. 세계 최초로 스트랩 댄스를 선보이며 일약 스타로 떠오른 마타하리(옥주현), 말레이어로 '새벽의 눈동자'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그는 누구인가.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의미처럼 거리 곳곳마다 풍요롭고 로맨틱한 사랑이 꽃핀다. 사람들은 행복에 가득차 있다. 그런 파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추레한 모습의 여성이 눈에 띤다. 그의 이름은 마가레타. 길을 지나가던 안나(윤봉)가 그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상냥하고 친정한 안나는 처절하고 불운한 삶을 살았던 마가레타를 껍질 속에서 끄집어낸다.

두 사람은 자바 여인들의 춤에 영감을 받아 춤에 재능이 있는 마가레타를 '마타하리' 재탄생시킨다. 세계 최초로 스트랩 댄스를 선보인 마타하리는 순식간에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된다. 파리 상류사회를 접수하고 팜므파탈 같은 존재로 되어 제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던 마타하리는 맑은 마음과 자유로운 영혼의 조종사 아르망(에녹)을 만나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유럽 전체가 위기 속으로 빠져든 것처럼, 승승장구하던 마타하리의 삶도 휘청하게 된다. 국방부 장관 팽르베(홍경수)의 정치적 계략과 정보국 라두 대령(노윤)의 집착은 마타하리에게 '스파이'라는 거짓된 삶을 부여하고, 그 결과는 프랑스와 독일의 '이중 스파이'라는 희생양으로 돌아온다. 진퇴양난에 빠진 마타하리의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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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은?" "지붕까지 꽉찼지!"
"기자는?" "유럽의 모든 신문사에서 다 왔지."


솔직히 고백하자면, 옥주현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2005년 '아이다'로 뮤지컬에 데뷔한 그는 '엘리자벳', '레베카', '위키드' 등 굵직한 작품에 출연하며 최고의 티켓 파워를 지닌 배우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등에 여성 서사 뮤지컬에 출연하며 대체 불가 배우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그를 향한 (안티들의) 부정적 시선도 만만치 않다.

부끄럽게도 그에 일부 영향을 받았고, 은근 동조하기도 했다. 컨디션 난조로 무대를 취소했다는 과거의 뉴스들에 편견도 생겼다. 옥주현의 무대에 대한 찬사들이 훨씬 많았음에도 애써 단점을 찾는 리뷰들에 귀를 기울였다. '꼭 옥주현의 뮤지컬을 볼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을 품고 살며 애써 외면했다. 문득 실제로 보지 않은 채 어떤 평가를 한다는 게 어리석은 일이라는 회의가 들었다.

'마라타리' 공연 소식을 접하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옥주현이 무대에 오른다기에 그의 공연을 예약했다. 무대의 막이 오르고, 옥주현이 등장했을 때 그의 목소리톤이 어색하게 들린 것은 사실이다. 대화를 할 때 연기가 매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마타하리'로 변신을 하고 무대에서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순간, 왜 뮤지컬계가 옥주현에 열광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납득이 됐다. 아니, 팬이 됐다.

노래 실력으로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는 옥주현은 풍부한 성량에 깊이 있는 감정 표현까지 더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는 춤사위로 압도적 매력을 발산한다. 그는 가창력이 무엇인지 관객 앞에서 여실히 증명한다. 객석에서 옥주현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감탄이 절로 새어 나오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옥주현은 노래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매커니즘을 완벽히 이해하는 배우이다.

'마타하리'에서 옥주현이 더욱 빛나는 까닭은 2016년 초년 이후 재연, 삼연 그리고 이번 사연까지 줄곧 캐스팅됐을 만큼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일 것이다. 또,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옥주현에게 영감을 받아 곡을 썼다고 한 만큼, 옥주현 맞춤 노래 속에서 옥주현은 섬세한 기량을 뽐낸다. 이처럼 '마타하리'는 옥주현을 위한, 옥주현의 의한 뮤지컬인 셈이다.

"내 사랑은 영원해. 걱정 마, 기억해 줘."


'마타하리'는 명장면을 꼽기가 힘들 정도로 감동의 연속인데, 마타하리와 아르망의 로맨틱한 감정이 오가는 장면이나 아르망과 라두 대령의 갈등이 고조되어 격렬히 맞부딪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아르망 역을 맡은 에녹과 라두 대령 역의 조윤의 발성과 딕션, 가창력, 연기력 모두 일품이다. 저들의 다른 작품들고 찾아서 보고 싶다는 궁금증이 생길 정도로 흡인력이 있다.

그럼에도 역시 최고의 장면은 마타하리의 총살 직전의 무대일 것이다. 질곡의 삶을 살아온 끝에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된 마타하리는 끝내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곁을 지켜준 안나와 마지막 문답을 나눈다. 평소 공연을 앞두고 관객과 기자가 얼마나 왔는지 확인했던 그들만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대화인데,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이다. 홍사봉의 안정적인 연기도 돋보인다.

최후의 순간, 드디어 37번째 넘버 '마지막 순간'에서 옥주현은 호소로 짙은 목소리와 공간감 가득한 목소리, 독보적인 성량으로 관객들을 끊임없이 기절시킨다. 이쯤되면 끝났을 거라 생각하는 순간마다 감동의 파도가 한없이 밀려온다. 카운터펀치가 쉼없이 몰려와서 당혹스러운 정도이다. 이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타하리'의 티켓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이다.

이처럼 '마타하리'는 무대 세트의 완성도가 뛰어나고, 최고의 댄서였던 마타하리의 안무 연출도 훌륭하다. 옥주현을 비롯한 출연 배우들의 기량도 만개한 터라 꼭 추천한다. 무엇보다 옥주현이라는 배우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어서 뜻깊었던 공연이었다. 커튼콜에서 관객들에게 인사하며 무대 매너를 보이는 여유도 돋보인다. '마타하리'는 3월 2일까지 LG 아트센터 서울에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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