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예정대로 진행되는 서울시 공무원 시험, 무엇이 문제일까?

너의길을가라 2015. 6. 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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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 전에 우리는 위험한 진실을 만났다. 시장이기 전에 한사람의 시민, 인간으로서 고뇌했다. 회피하고 싶은 생각도 했지만 한편,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투명성이야말로 메르스 최고의 치료약이라는 생각으로 시민들에게 진실을 알렸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1일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글 중에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아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메르스 사태'에서 가장 존재감을 드러냈던 사람은 단연코 박원순 서울시장이었다. 그의 과감하고도 발빠른 조치가 있지 않았다면, 여전히 정부의 '비공개주의'로 인해 많은 시민들이 불안감 속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칭찬할 것은 주저하지 말고 칭찬하도록 하자. 그럼에도 여전히 그를 향한 불만의 목소리는 존재한다. 다름 아니라 '서울시 공무원 시험' 때문이다.



지난 8일 서울시는 서울시 공무원 채용 필기시험을 예정대로 13일에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유는 간단하다. 13만 명에 달하는 전국 응시생들의 혼란을 막기 위함이다. ('공무원 시험에 올인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잠시 접어두자.) 시험을 준비하는 응시생들에게는 자신만의 학습 패턴(을 넘어 생활 패턴)이 존재한다. 이것이 흔들리게 되면 밸런스를 잃게 된다. 하물며 일정이 변경된다면 어떻겠는가?


"현재는 시험을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원칙이지만 지역사회에 메르스 감염 사례가 한 건이라도 발생하거나 그에 준하는 수준의 위험이 감지되면 즉시 중단할 것이다."


'시험 일정'은 하나의 '약속'이고, 서울시가 이를 지키고자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메르스 확산'이라는 공포가 눈앞에 있음에도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이유는 '지역사회에 메르스 감염 사례'가 아직까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메르스는 의료기관을 통해서만 전파되고 있'으므로 비록 13만 명이 모이는 대규모의 채용 시험이긴 하지만, 이를 연기할 필요까진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공기 감염'의 가능성을 들어 서울시 공무원 시험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한림대학교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만약 공기 전파가 된다면 가장 밀접하게 접촉한 가족 간 전파가 대부분 이뤄져야 한다"며 공기 감염의 가능성을 일축했다. 권덕철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총괄반장도 기존 역학조사 결과를 토대로 '공기 감염은 없다'고 못박았다.


그럼에도 115번 환자의 등장은 '공기 감염'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115번 환자는 삼성서울병원 외래진료실에서 감염된 케이스로 응급실에는 들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병원 측은 응급실 구역의 화장실에서 14번 환자에게 감염됐을 수 있다고 밝혔지만, 성별이 다른 두 사람 사이의 감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겨레>는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촬영실 밖에서 대기하는 과정에서 접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역시 '병원 내 감염'의 틀을 벗어나진 않는다. 물론 WHO(세계보건기구)가 '공기 감염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그 내용도 '기도에 관을 넣거나 뺄 때, 또 내시경을 할 때처럼 5마이크로미터 미만의 작은 침방울이 퍼져 나갈 때는 공기 중 감염 예방법을 지켜야 한다'는 수준으로 '병원 내 감염'의 범위 안에 있다.


"서울시 공무원 시험은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치뤄지는데 시험장에 메르스 의심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시험을 치러야할지 고민"


"요즘 아무런 생각이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의심환자가 고사장에 올 수도 있다. 메르스보다 취업을 못하는게 더 근심"


양 측의 의견을 골고루 다뤄야 하는 언론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메르스' 때문에 자신이 준비했던 시험을 포기하는 응시생은 없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시험을 치러야 할지 고민이라는 응시생은 수험 기간이 짧든지, 어차피 응시율의 허수를 담당하는 케이스라고 보면 된다. 오히려 불만의 초점은 시험을 예정대로 실시하는 것보다 '자택시험'에 맞춰져 있다.



서울시가 자택격리 대상자의 경우 감독관 2명, 간호사 1명, 경찰관 1명 등 4명이 동생한 가운데 집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물론 헌법이 보장하는 바에 따라 수험생의 응시 기회를 보장하겠다는 서울시의 발상도 칭찬할 만 하지만, 다른 응시생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형평성 시비'를 제기할 법한 일이기도 하다.


"누구는 편하게 집에서 보고, 누구는 숨막히는 시험장에서 보는 게 과연 공평한 것이냐", "우리는 몇 시간씩 대중교통 타고 올라가는데 자택에서 편하게 보는 건 말이 안된다"는 의견에서부터 심지어는 "오픈북 시험이냐"는 비아냥까지 제기됐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겠지만, 감정적으로 그런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자택 시험은 자택에 격리된 응시자의 응시 기회를 보장해주는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일반 응시생들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인터넷 등을 통해 들려오는 불만의 목소리를 듣다보면 괜히 씁쓸해진다. 과도한 공포를 조장하는 '시험 연기론'도 그렇지만, '자택 시험'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은 지독한 경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참혹한 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기 떄문이다.


'합격선'에 도달한 응시생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말없이 책장을 넘기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혹시 상처가 될까? 너무 시니컬한가? 최소한의 배려, 상생.. 이런 말들을 떠올리기에 '존재의 위협'으로 가득한 대한민국 사회는 녹록치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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