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박원순 이후 바뀐 정부의 메르스 대응, 아쉬움이 남는 이유

너의길을가라 2015. 6. 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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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초기 대응과 오락가락 대처, 무능한 정부가 메르스 사태를 키운다 라는 글을 쓴 지 5일 가량이 지났고, 상황은 예견된 것처럼 더욱 악화됐다. 8일 현재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자는 87명, 사망자는 6명으로 늘어났다. 향후 '메르스 사태'는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까?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은 '낙관적'인 반응과 '비판적'인 반응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뉘고 있다. 


낙관론의 대표주자는 아이러니(irony)하게도 정부다.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삼성서울병원 관련 확진자가 본격적으로 발생하는 이번 주를 계기로 환자가 정체되거나 감소할 것"이라며 낙관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평택성모병원에서 시작된 1차 유행이 인정화 상태에 접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의료기관의 경우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반면, <문화일보>는 정부 방역 한계.. '메르스 퇴치' 결국 국민손에 달렸다 는 기사를 통해 "정부는 이번 주까지 추가 환자가 정점을 보이다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메르스 의심 증세가 나타나면 스스로 격리 후 의료 기관에 신고하는 국민의식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정부가 3차 감염자를 추적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확진자가 점차 늘어남에 따라 대한민국은 1019명의 확진자 중 무려 450명이 사망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메르스 발병 2위 국가가 됐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불명예를 안게 됐다'고 평가하지만, 불명예가 시작된 건 초기 대응에 실패한 그 순간부터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3위나 2위나 도긴개긴(도찐개찐은 잘못된 표기) 아닌가?



물론 아무런 정보가 제공되지 않던 초기에 비해 메르스 병원명이 공개되면서 막연한 공포감은 누그러지고 있다. 메르스 확진자의 평균 연령이 높고, 메르스로 인한 사망자의 공통점이 기저 질환을 앓고 있는 고령자라는 것이 확인된 것도 두려움을 완화시켰다. 하지만 10대 고등학생 확진자가 발생하고, 전국적으로 퍼져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만큼 여전히 안심할 수는 없는 단계인 것은 분명해보인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유치한 자존심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7일 최경환 국무총리 대행은 메르스 환자가 발생 및 경유 병원 24공을 공개하면서 "확진환자가 나온 병원명단 등의 정보를 국민안전 확보 차원에서 공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국민혼란'을 이유로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던 정부가 자신들의 주장을 번복하며 180도 변신을 한 셈이다.


ⓒ 국민일보


메르스 사태가 급반전의 급류를 타게 된 계기, 다시 말해 정부의 메르스 대응 전략이 180도 바뀌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박원순 서울시장'이었다. 4일 박 시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서울의 한 대형 종합병원 의사가 메르스 감염이 의심되는 상태에서 1500여명이 모인 대규모 행사에 참석하는 등 불특정 다수와 접촉하다 격리 조처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히면서 정부에 메르스 병원 공개와 강력한 격리 조치를 요구했다.


청와대는 메르스 스타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을 반성하기는커녕 박 시장을 비판하기에 급급했고, 새누리당과 종편 방송은 '박원순 때리기'에 올인했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도 "지방자치단체나 관련 기관이 독자적으로 메르스를 해결하려 할 경우 혼란을 초래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박 시장을 비판하고 나섰다.



하지만 한 가지 '숨겨져 있던 비밀'이 밝혀졌다. 최경환 국무총리 대행은 메르스 병원을 공개하면서 "박 대통령께서도 지난 6월 3일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에서 환자가 발생한 의료기관을 투명하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지시하셨"다는 사실을 알렸다. 앞서 '유치한 자존심 싸움'이라고 말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데, 이는 박 시장의 긴급 기자회견(4일)보다 박 대통령의 지시가 빨랐다는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두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첫 번째는 사실 여부다. 정말 박 대통령이 3일에 메르스 병원을 공개할 것을 지시한 것일까? 두 번째, 만약 박 대통령이 그런 지시를 한 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했을 때, 무려 4일이나 지난 이후에 병원 공개가 이뤄진 이유는 무엇일까? 대통령이 지나가듯 넌시지 던지는 말도 곧바로 현실화되는 것이 공직사회인데, 명확한 지시를 4일이나 지나도록 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일단, 분명한 팩트는 박 대통령이 5일 '메르스 병원 공개'에 대한 언질을 했다는 것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했던 박 대통령은 "메르스 관련 정보의 신속하고도 투명한 공개를 지시했기 때문에 의료기관 간의 확진환자 정보 공유, 또 대다수 감염자가 발생한 병원명 공개, 이런 조치가 지금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3일에 지시를 했든, 아니면 그보다 뒤늦게 지시를 했든 간에 7일이 되어서야 공개가 이뤄진 점을 미뤄보면 분명 '신속한' 공개는 아니었던 셈이다. 이처럼 매번 한 박자 이상 늦는 정부의 대처는 국민적 불신을 불러일으켰고 극심한 혼란을 야기했다. 추후에 이 부분은 국정감사 등을 통해 잘잘못을 따져물어야 할 사안이다.


메르스 사태에 미온적이었던 정부에 비해 훨씬 더 적극적이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국민들로부터 많은 신망(信望)을 얻었다. 불안감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국민 앞에 직접 나서서 정보를 제공하고 상황을 수습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지도자에게 마음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골든타임을 놓치고, 이후의 대응 전략에 있어서도 패착을 한 정부를 비판하면서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시민의 안전 앞에서 늑장대응보다는 과잉대응이 낫다"는 박 시장의 발언과 그가 보여준 대응 자세를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가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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