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와 관련해서 워낙 많은 글들을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글을 보태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정확한 팩트를 토대로 깔끔한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대한민국 정부의 실책을 점검하면서 다른 국가의 정부들은 어떤 대응을 보였는지 짚어보는 것도 의미있는 작업일 것이다. 우선, 확산되는 메르스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해야 하고, 또 다시 같은 잘못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격리자가 1,667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메르스가 확산되는 만큼, 그로 인한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도 부풀어오르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전적으로 무능한 정부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보건당국은 2가지 면에서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우선, 초기 대응에 실패하는 바람에 통제력을 상실했고, '메르스 병원 공개불가' 등 메르스와 관련한 정보를 감추면서 오히려 공포감을 조장했다.
지난달 20일로 돌아가보자. 당시 보건 당국은 메르스 첫 번째 환자를 확진하고, 그와 같은 '병실'을 사용한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 등만 격리 관찰 및 역할조사를 실시했다. 이는 안일한 판단이었다. 문제는 이미 같은 '병동'에 이미 메르스 바이러스가 퍼져있었다는 것이었다. 초기에 좀더 범위를 넓혀 격리 관찰을 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메르스가 미국에 상륙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는 준비가 돼 있다."
톰 프리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2014년 5월 2일)
"메르스가 우리나라에 유입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2015년 5월 23일)
과연 어느 쪽이 더 믿음직스러운가?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질문인 것 같다. 예상하고 준비가 되어 있는 보건당국 수장과 "굳이 메르스 때문에 추가적인 그러한 조치를 하실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한다"면서 정작 본인은 열흘 가량 전부터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녔던 보건당국의 수장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 아닐까?
미국의 경우 지난해 5월 2일 인디애나 주에서 첫 번째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11일 플로리다 주에서 두 번째 환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메르스 환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빠른 확진 시스템이 주효(奏效)했고, 철저한 역추적을 통해 밀접 접촉자를 조사해 더 이상의 감염자가 없다는 사실을 파악했던 덕분이었다.
3명의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던 독일도 보건당국의 철저한 통제로 2차 감염자가 없었다. 지난 2003년 사스(SARS)로 무려 300명의 사망자를 내며 망신살을 뻗친 홍콩은 메르스 사태만큼은 신속한 대처를 통해 성공적인 차단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는 누적 환자 1010명, 사망자 442명으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역시 초기 대응에 실패한 탓이다.
ⓒ 한겨레
대한민국은 미국과 독일, 홍콩에 가까운가, 아니면 사우디아라비아에 근접해있는가?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답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차이를 만든 것은 무엇일까? 결국 '준비' 아닐까? 톰 프리든 CDC 국장의 말처럼, 미국은 메르스가 상륙하기 전(2013년 7월)부터 감염 예방책을 마련하는 데 지원하고 있었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하자 그제서야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관리대책본부를 꾸렸던 대한민국과는 판이한 양상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도 '컨트롤 타위' 부재로 인해 부처 간 엇박자가 계속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젠 이러한 촌극들이 놀랍지도 않다. 국가적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익히 봐왔던 장면이기 때문일까? 이젠 너무도 익숙한 모습들이다.
가령, 휴교(休校)와 관련해서 정부의 호흡이 맞지 않아 혼선을 빚었다. 1차 책임자인 문형표 장관은 2일 "지역사회 전파 이전 단계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휴교 조치는 이르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지만, 그 다음 날인 3일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교육 현장은 워낙 학생이 모여있는 곳이고 생명과 건강은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복지부의 주의 단계보다 한 단계 높은 경계 단계에 준한 조치를 시행하기로 한 것에 대해 이해를 구한다"며 휴교를 적극 권장했다. 현재 약 230개 학교가 휴교에 돌입했다.
황우여 장관의 발빠른 휴교 조치의 이면에는 지난 2일 교육당국이 일선 학교로 보낸 황당한 공문('메르스 질병정보 및 감염예방 수칙')이 있었던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내용에는 '익히지 않은 낙타고기나 멸균되지 않은 생낙타유를 먹지 말라'는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은 형식적인 예방 수칙이 담겨 있었다. 일단 공문을 보냄으로써 '우리가 할 일은 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참으로 한심한 탁상행정이 아닐 수 없다.
또, 메르스 환자를 치료한 병원의 명단을 공개하는 문제를 두고 벌어진 갈등도 정부의 무능을 잘 보여준다. 정부의 입장은 간단하다. 병원을 밝히게 되면 공포와 혼란이 조장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메르스 병원'이라는 낙인이 찍혀 버리면, 그로 인한 경영상 피해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할 병원의 경영진은 오히려 당국에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누락시킬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 알 권리'와 '불필요한 불안 방지' 차원에서 시민사회단체와 다수의 국민들은 병원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계속해서 정보를 숨김에 따라 이른바 (정부 입장에서 볼 때) '괴담'이 SNS 등을 통해 마구 퍼져나가고 있다. 이미 상당히 자세한 수준의 병원 명단이 작성돼 옮겨다니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그 명단을 받아보지 못한 국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까지 되면 정부는 '칼'을 빼어들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3일 SNS를 통해 '메르스 괴담'을 유포한 A씨가 검거됐다. 물론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고, 이를 제재해야 하는 것은 마땅하다. 하지만 그 원인 제공을 누가 했는지에 대해선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처음부터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고, 불안과 공포가 서식하는 것을 막았다면 '괴담'이 퍼지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언론은 하루종일 '메르스 사태'와 관련한 뉴스들을 쏟아내고 있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정보 앞에 속수무책이 되기 십상이지만, 결국 이 모든 문제의 시발점은 '정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2003년 '사스 예방 모범국'에서 2015년 '메르스 민폐국'이 된 원인에 대해서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메르스 확진 판정이 나온 지 무려 2주가 지나서야 민관합동 긴급회의에 모습을 드러낸 박근혜 대통령의 대응도 정상적이었는지 의문스럽다. 판단은 국민들의 몫이겠지만,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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