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일본의 징용시설 세계문화유산 등재 시도,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너의길을가라 2015. 5. 2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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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의 23개 근대 산업시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登載)하고자 했던 일본의 도전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지난 15일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세계유산위원회(WHC) 위원국에 공개한 일본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최종 보고서'에서 '등재 권고' 결정을 내리면서 내용적인 면에서 2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 일본 강제징용의 나가사키(長崎)현의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


이코모스(ICOMOS)가 지적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는 "일본의 근대산업시설이 산업혁명의 전체적인 면을 보여주지 못한다(Japan submitted don`t contain the full scope of the Industrial Revolution)"는 평가절하이고, 두 번째는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라"(allows an understanding of the full hisory of each other)"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무슨 이야기일까? 차근차근, 하나씩 짚어보도록 하자. '일본의 근대산업시설이 산업혁명의 전체적인 면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이코모스의 평가는 애초에 일본 측이 8개 지역 23개 근대산업시설을 '메이지 시대 일본 산업혁명 유산'이라며 소개했던 것을 깡끄리 무시한 것이었다. 이코모스는 보고서에 시종일관 '산업혁명(revolution industrielle)'이 아닌 '산업화(industrialisation)'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고작 한 글자 차이지만, 이 두 개념은 굉장한 차이를 갖고 있다. 이코모스는 (일반적인 통념에 따라) 산업혁명을 기술을 넘어 교육, 의료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변화로 규정하고 있고, 산업혁명 유산이라 함은 '사회 정치적 변동이라는 대전제(prerequisite) 아래 대학을 개설하고, 통신망과 철도, 해상 운송을 가능케 하는 등 사회 교육 의료 정치적 분야에서 낡은 봉건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데 영향을 준 시설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근대산업시설은 '산업혁명'을 드러내는 유산이라기보다는 "단지 일본의 맥락에 한정된 몇 산업의 기술적 진보를 보여줄 뿐 이 기술이 가져온 더 큰 사회 변화를 다루지 않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코모스의 평가에 수긍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산업혁명'이라는 타이틀은 '서구사회'의 귀속물 쯤으로 생각하고, 동양사회는 그 영향을 받은 수동적 위치에 있다는 오리엔탈리즘적 인식체계가 엿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렇게 된 건 일본의 자충수 때문이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두 번째 지적으로 이어진다. 이코모스가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한 이유는 일본 측이 23개의 시설물 중 7곳에서 태평양전쟁(1941~1945)이 벌어지던 당시 조선인(5만 7,900명) 및 중국인을 강제 징용됐던 역사적 사실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코모스가 보고서에서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진 않았지만, 그동안 대한민국 정부가 같은 이유로 항의를 하는 등 반대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해왔던 것을 받아들여 간접적으로 표명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일 박근혜 대통령도 대한민국을 찾았던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만나 자리에서 "국가 간 불필요한 분열을 초래하는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애초에 일본 정부는 근대산업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면서 기간을 메이지 시대(1850~1910년)로 한정시켰는데, 이는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일정 부분만 '절단'해서 평가를 받겠다는 의도였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일본의 부끄러운 과오인 군국주의의 야욕, 전범국가라는 자신들의 역사를 숨겨야 했기 때문이라 보는 것이 일반론이다.


하지만 이코모스는 일본 산업화를 '산업화 태동기', 서구 기술 도입 · 습득 시기, 자생적 산업화 시기', 이렇게 3단계로 나누어 구분하면서 이런 산업 시설들이 "명백한 군사적 필요에 의한 것"이라 못박았다. 이는 등재 반대라는 강경한 입장을 취하기보다 설령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더라도 이를 설명할 때, 조선인을 강제징용했던 역사적 사실을 알리도록 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대한민국 정부의 전략적 승리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건 정부 측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한 분석일 뿐이다. 두 가지 우려가 남아 있다. 우선,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라'는 이코모스의 권고는 말 그대로 권고 사항일 뿐이다. 두 번째는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전체 역사'란 표현에 조선인 강제징용 또한 포함됐다고 정부는 본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ICOMOS-Korea 위원인 강동진 경성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이코모스가 보고서에 구체적인 기간을 명시하지 않았다. (일본은) 전체 역사를 '1850년부터 1910년까지 벌어진 일 중 누락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정상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과거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일본의 입장에서는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하려 들 것이 뻔하다.


일단 '태클'이 걸리긴 했지만, 완전한 '브레이크'는 아닌 상황이다. 어쩌면 일본 측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정부는 자신들의 성과(?)에 취해있는 듯 하고, 기본적으로 '민족주의' 성향을 띨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언론들은 '두 번째 지적'에만 포인트를 맞춰 '일본의 꼼수가 실패했다'고 통쾌해하고 있다. 하지만 '진중한' 우리들은 이 상황을 좀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안심하긴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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