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최대 개신교 단체인 연합 개신교(EPUdF)가 17일 목사의 동성 커플 축복을 허용하도록 했다고 한다. 동성 간의 사랑을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죄악'으로 이해하는 교회의 입장을 생각할 때 매우 파격적이고 전향적(前向的)인 결정이다. 전체 인구의 약 83%가 가톨릭 신자일 정도로 가톨릭 전통이 강한 프랑스에서 고작 2%만을 점유하고 있는 개신교는 사회적 영향력이 적지만, 이러한 변화 자체는 매우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아, 프랑스 개신교도의 2/3 가량은 여전히 동성 결혼에는 반대하고 있다.
-동성 결혼식을 올린 자비에르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
글을 정확히 읽은 사람들은 눈치챘겠지만, EPUdF가 결정한 것은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을 허용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동성 커플 축복'은 '동성결혼'에 대한 축복을 직접적으로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쯤되면 '사실상' 동성결혼을 인정한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커플'이라 하면 '결혼하지 않은' 혹은 '결혼한' 커플을 모두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어 있다. 지난 2013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동성 결혼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물론 가톨릭 단체들의 강력한 반발이 뒤따랐다.
이혼한 부부나 동성애자 커플의 아이들에 대해 가톨릭 교회가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가 때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오늘날 동성애자 결혼은 증가하고 있고, 부모들의 이혼으로 갖고 구성도 변화하고 있다. 가톨릭교회가 변화하는 세대를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에 대해 이제 우리 스스로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가 동성애자 커플이나 이혼한 부부의 가정이 신앙을 갖지 못하도록 백신을 주사하는 것은 아닌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프랑치스코 교황, 2013년 11월 세계 수도회총원장연합회(USG) 회의-
'동성 커플'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은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미 여러차례 드러낸 바 있다. 그는 2010년 '동성 결혼'은 반대하지만 '시민적 결합(Civil Union, 법으로는 동성간 결혼을 허용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부부로 인정하는 것)'에는 찬성한다고 말한 바 있고, 2013년 7월 브라질을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동성애자인 사람이 좋은 의지로 신을 찾는다면 내가 어떻게 심판할 수 있느냐"며 동성애자를 포용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 동성결혼 합법화 국가
네덜란드(2001), 벨기에(2003), 스페인 · 캐나다(2005), 남아프리카공화국(2006), 노르웨이 · 스웨덴(2009), 포르투갈 · 아이슬란드 · 아르헨티나(2010), 덴마크(2012), 브라질 · 프랑스 · 우루과이 · 뉴질랜드(2013)
동성결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동성결혼은 '세계적'으로 논란거리다. 물론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200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15개 국가가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미국에서도 '동성결혼을 금지한 것은 평등권을 규정한 헌법에 어긋난다'는 판결이 잇따르면서 36개 주와 워싱턴 DC가 동성 결혼을 인정하고 있다. 2012년 이전까지만 해도 9개주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동성결혼은 합법도 불법도 아닌 애매모호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지난 2013년 9월 7일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이 공개 결혼식을 가지면서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하객으로 초대했다. 이 결혼식은 성수수자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이벤트 차원에서 치러진 것이었는데, 그만큼 사회적으로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부정적인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논쟁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채 오물을 투척하기 위해 결혼식장을 찾은 개신교도도 있었다.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냉담하지만,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은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가 한걸음 더 나아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혼의 당사자인 김승환 씨도 "가장 큰 변화는 아직 동성결혼이 제도화되지 않은 한국에서도 동성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라고 말했다. 물론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다. 이쯤에서 '동성결혼'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할지 좀더 고민을 해보도록 하자.
『사람의 거짓말 말의 거짓말』의 저자 남재일은 '실질적으로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진짜 주체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세속 권력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지적하면서 '동성결혼 합법화 여부를 결정짓는 주체는 신이 아니라 세속 권력을 창출해낸 주권자인 시민이라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에 '동성애는 종교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사실상 '모든 것'이 결국 '정체적 문제'라는 점에서 볼 때 이는 타당한 접근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인지언어학의 창시자이자 정치 담론의 프레임 구성에 대한 전문가인 조지 레이코프는 '국가를 가정에 연결하는 은유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서 보수주의 정치와 진보주의 정치를 두 가지의 결혼 생활의 모형을 통해 설명한다. 이른바 '엄격한 아버지 모형(strict father family)'과 '자상한 부모 모형(nurturant parents family)'이 바로 그것이다. 조지 레이코프는 이 두 모형에 따라 '동성 결혼'을 바라보는 관점에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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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아버지는 도덕적 권위자이자 가정의 주인으로서, 어머니와 자녀들을 지배하고 필요한 규율을 부과한다. 현대의 보수주의 정치는 이 가정의 가치를 위계적 권위, 개인적 규율, 군사적 힘을 중시하는 정치적 가치로 변형시켰다. '엄격한 아버지' 가정에서 결혼이란 이성 결혼이어야 한다. 남성적이고 강하고 단호하며 지배적인 아버지는 아들의 역할 모델이며, 딸에게는 잘래 남편감의 모델이 된다.
자상한 부모 모형에는 두 명의 동등한 부모가 있으며, 이들은 자녀들을 보살피고 자녀들이 타인을 보살필 수 있도록 가르칠 의무가 있다. 자상한 보살핌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바로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과 책임이다. 책임에는 강함과 능력이 요구된다. 강하고 자상한 부모는 자녀를 돌보고 보호하며, 신뢰와 유대를 쌓고 가정의 행복과 충족, 공정성, 자유, 개방성, 협력, 공동체 발전을 촉진한다. 이들은 진보주의 정치의 강력한 가치다. 이 모형의 전형도 이성애적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자상한 부모' 모형에는 동성 결혼을 배제하는 요소가 없다.
-조지 레이코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결국 '동성 결혼'의 문제는 종교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인 문제이고, 이것은 '결혼(가정)'에 대한 두 가지 관점(모형)에 따라 결정될 수 있는 '시각'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변질된 유교 문화가 낳은 병폐 중의 하나인 가부장제가 점차 사라지고, 신뢰와 유대를 바탕으로 한 '자상한 부모' 유형이 많아지면서 동성결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적어도 '동성결혼을 배제하는' 경직된 사고방식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남재일은 "동성결혼에 대한 낯섦은 이성결혼에 내재한 사랑이 부정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가부장적 권력관계가 부정당하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동성결혼에 대한 공포로 가득한 사람들에게 "이성결혼이 사랑으로 가득하다면 동성결혼을 부정하지 않고도 존속"할 것이기에 "진정으로 이성결혼 제도를 옹호하는 자라면 동성결혼에 손가락질할 시간에 자신의 결혼을 사랑으로 채우는 일에 몰두"하라는 조언을 건넨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동성애는 여전히 혐오(嫌惡)의 대상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진일보했지만, 여전히 피부로 느끼는 현실은 기피와 경멸로 가득하다.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할 뿐 진지한 이성적 사고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적인 추세로 볼 때, 동성애는 사랑의 한 형태로 인정되고 있고, 동성결혼은 합법화되고 있다. 이슬람 문화권에 이어 동성결혼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아시아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이어질 것이다.
즉,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뜻이다. 당장 혹은 갑자기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진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성소수자에 대한 고민의 역사가 유럽에 비해 훨씬 짧지 않던가? 찬성이든 반대이든 간에, 그것이 '혐오'라고 하는 감정적 영역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이성적 영역에서 고민하고 판단하는 단계에는 이르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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