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축제, 이대로는 안 된다!'
이맘 때가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질타(叱咤)' 기사의 전형이다. 보수 언론의 고상한 지적질에서부터 진보 언론의 고지식한 비판까지, 거기에 현역 대학생들의 자성(自省)의 목소리까지 들려온다. '우리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닐까?'라는 반성은 '너희는 좀 깨어있다'는 박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반면에 되려 '안쓰럽다'는 생각을 품게 한다. "그게 어디 너희 잘못이겠니?"
ⓒ 헤럴드경제
현역 대학생인 <오마이뉴스>의 김예지 기자는 툭하면 연예인, 무분별 주점.. 대학이 대학이 아니다 라는 기사로 자성의 대열에 합류했다. 두 번의 축제 동안 목적 없는 '팔이'를 계속해야 했다고 고백한 그는 "대학 축제의 문제가 데칼코마니처럼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끈질기게 논의를 이어가야 하"며, "팔고 소비하는 것이 전부가 아닌, 보다 새로운 축제를 상상해야 한다. '그들'만의 축제가 아닌 '모두'의 축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팔고 소비하는 것이 전부인 이 세상에서 대학생만 다르길 바라는 건 오히려 욕심 아닐까? 자라나는 젊은 세대는 달라야 한다며 매몰차게 꾸짖는다면, 보고 배운 것이 그것뿐인 걸 어떡하냐는 푸념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보고 배운 것이 '소비주의'말고 무엇이 있단 말인가? 지금 대학생 신분인 20대 초중반,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 생(生)들은 그 어느 세대보다 '(천민)자본주의'에 가장 많이 노출이 됐던 세대다. 물론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대학생들의 축제가 비싼 돈을 지불해서 가수 등 연예인을 부르고, 주점 등을 운영하는 수준으로 변질된 것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흐름은 포착되어 왔고, 이미 거스를 수 없을 정도로 뿌리 깊이 정착되었다. 다수의 사람들이 비판하기에 급급할 뿐, 왜 그렇게 변화했는지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 문제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기보다 현상에 집착하고, '너희는 왜 그러냐'며 타박하는 건 너무 쉽다. 쉽기 때문에 너도나도 동참하고 있지만, 그 어떤 해결책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해도 없고, 공감은 더더욱 없다.
대학의 축제가 '소비'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까닭은, 앞서 말한 것처럼 지금의 대학생 세대가 '소비'에 매우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장 쉽고, 간단한 데 굳이 다른 무언가를 찾을 이유가 있을까? 축제를 위해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고 할 때, 가장 많은 호응을 받는 것을 구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알바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63%가 연예인이 섭외되는 것에 찬성했다고 한다. 이제 학생회가 고민할 것은 더 핫한 연예인을 섭외하는 것뿐이다.
'축제의 변질'에는 훨씬 더 중요한 사회적 맥락이 숨겨져 있다. 취업이 비교적 쉬웠던, 풍요로운 시절에 대학을 다녔던 세대들(지금의 대학 축제에 가장 비판적인 세대이기도 하다)은 '낭만'을 '현실'에서 구현하면서 캠퍼스 생활을 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축제에 적용시킬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삼포세대'들에게 캠퍼스 생활은 사치다. 막막한 취업 전선 앞에 무언가를 아기자기하게 준비할 시간 따위는 없다. 4학년 학생의 42%가 취업준비로 바빠서 축제 불참 의사를 밝혔다.
자연스럽게 축제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보다 기존의 것을 답습하기 마련이다. 그렇다. 데칼코마니처럼 반복된다. 여기저기서 불평불만이 나오지만, 가수를 불러서 한바탕 신나게 소리지르고 몸을 흔드는 것만큼 호응이 높은 것도 없다. 적어도 그 순간 만큼은 쌓였던 스트레스가 씻은 듯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금 세대의 '문화'이다. 그것이 싫다고 한다면, 다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또한 대한민국 사회의 문화 아닌가?
ⓒ <오마이뉴스> 김예지 기자
주점을 운영하거나 간식거리를 파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입이 짭짤하기 때문이다. 대학 측의 빈약한 지원 때문에 과(科)의 곳간은 늘 부족하다. 각종 행사 등을 치러내려면 주점 등을 통해 수입을 직접 창출해내야만 한다. 물론 안주를 만들어 팔고, 술을 파는 주점을 운영하는 것이 가장 '쉽다'는 측면이 있다. 더 나아가서는 역시 대한민국 사회의 단면 아니겠는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는 법인데, 이상하게 대한민국 사회는 더러운 윗물을 계속해서 흘려보내면서 터무니없게 아랫물만 맑기를 바라는 것 같다.
달라져야 한다는 당위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책임을 고스란히 대학생들에게 전가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5월 중순부터 말까지 진행되는 축제가 끝나면, 대학은 곧바로 기말고사 기간에 돌입한다. 대학생들에게는 고민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더군다나 '축제' 따위에 고민을 쏟을 심리적 여유도 없다. 대학생이 주인공인 축제를 만든다고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학점이 잘 나오나? 취업이 잘 되나? 인사 고과(人事考課)에 목을 메는 이 사회의 어른들이 과연 대학생들을 야단칠 자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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