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그리스는 정말 과잉 복지 때문에 망한 걸까요?

너의길을가라 2015. 7. 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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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나라' 그리스는 지난 6월 30일 (사실상)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가 됐다. 국제통화기금(IMF)로부터 빌린 15억 3,000만 유로를 갚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제 채권단은 긴축 정책안을 요구했고,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이 제안을 수용하면 그리스 국민에 부담을 추가로 지우고 경제를 악화하며 사회적 불평등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국민투표를 제안했다.



그리스에 1,446억 유로를 지원한 최대 채권자인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은 지난 3일 "디폴트라는 사태는 모든 채권단에 대한 채무를 이행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그리스 경제와 국민들을 심각한 상황으로 안내하는 문을 여는 것"이라며 그리스에 대한 디폴트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일종의 '압박'이라고 할 수 있는데, 5일 실시되는 국민투표가 마뜩잖았던 모양이다.


만약 국민투표에서 '반대'가 높게 나온다면,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유럽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는 바로 이것일 것이다. 이는 '하나의 유럽'이라는 원대한 꿈이 서서히 무너지는 아찔한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로존의 붕괴는 출범 당시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유로화라는 단일 통화가 낳은 비극이라고 할까?



유로존 국가들이 유로화라는 단일 통화를 사용하면서 '환율 변동'이 갖는 조기 경보 기능이 사라지게 됐고, 그리스 · 스페인 · 포르투갈 · 이탈리아 등 주변 국가이면서 경제 취약국들은 통화가 고평가됐다. 계속해서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고 버블은 컺지만, 환율 정책을 펼칠 수 없으므로 손을 쓸 방법이 없어졌다. 반면, 독일 · 프랑스 등 중심(핵심) 국가들은 저평가 되면서 급성장하게 되는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복지 개혁' 않으면 그리스처럼 된다 <문화일보>

'연금 퍼주기'식 달콤한 복지에 너무 취했다 <국민일보>

포퓰리즘 정치가 나라와 백성을 절벽서 떨어뜨린 그리스 <조선일보>
"한국, 그리스처럼 될 수도..복지 포퓰리즘의 덫 옥죄어 올 것" <동아일보>

그리스의 비극, 포퓰리즘이 원흉 <파이낸셜뉴스>

정권유지 위한 무분별한 '복지 확대'..'빚 폭탄' 키운 그리스, 국가부도 위기 <한국경제>


한편, 그리스 사태를 조명하면서 대한민국의 보수 언론들은 '복지'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복지 때문에 그리스가 망했다'는 주장을 어김없이 '복붙'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일보>에 글을 게재한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리스 문제의 본질은 감당할 수 없는 복지 정책에 있'다면서 '가계든 나라든 장기적으로 지출이 수입을 넘어서면 견딜 수 없고 결국 망한다는 매우 평범한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복지 정책도 그리스를 닮아가는 모습이다. 이른바 무상복지라는 이름 아래 복지 대상자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특정 연령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연금,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등이 그런 것'이라면서 이대로 간다면 한국도 그리스처럼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위에 인용한 기사들은 대부분 같은 논지의 주장을 담고 있다. 천편일률적이라 할 만큼 닮아있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


그리스가 '복지병' 때문에 무너졌다고요? <한겨레>

그리스 위기, 도전 받는 신자유주의 <프레시안>

그리스, 4년간 연금 40% 삭감.. "과잉 복지는 헛말" <경향신문>


이쯤에서 <한겨레>의 반격을 들어보도록 하자. 최우성 논설위원은 '그리스의 재정적자가 심각한 것 맞'지만, 그 이유는 '과도한 복지지출 때문이라기보다 상류층의 만성적인 탈세와 조세체계 부실에 따른 세수 부족에서 찾는 것이 온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리스의 1인당 국민소득 대비 정부 복지지출 비중은 유로존 국가 가운데 높은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2011년 이후 유로존의 긴축 요구로 불과 4년 만에 3차례에 걸쳐 (연금이) 40% 넘게 깎였'다는 점을 들어 '과잉 복지는 헛말'이라고 되받아치고 있다. 그러면서 "독일인들은 우리보다 더 많은 연금을 받으면서 우리에게만 ‘지나치게 많은 연금을 받는다’고 손가락질한다"는 그리스의 한 연금 수급자의 비판을 인용했다.


중국의 경제학자 가오롄쿠이은 『복지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에서 '그리스에서 사회복지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6%인데, 이는 유럽연합 평균인 26.9%에도 크게 못 미'칠뿐만 아니라 '그리스의 실업보험도 극소수 실업 인구만 보장해주는 수준'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오히려 그리스 부채 위기의 원인이 '복지' 때문이 아니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최에 따른 손실에 있다'고 주장한다.



"트로이카(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가 지난 5년의 체제를 무한정 유지하고자 하는데 여기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실현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그리스가 유로존) 탈퇴를 고려할 경우 (트로이카가) 재고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 구제금융을 받아들이면 분명 트로이카 채권단은 치프라스총리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을 할 것이다." (폴 크루그먼)


한편, <프레시안>의 박인규 편집인은 '그리스 시리자 정부의 반긴축 정책은 바로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패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국제 채권단이 그리스 정부와의 협상에서 초강경 자세를 견지하는 이유에는 정치적 저의가 있는데, '돈보다 사람이 먼저'를 내세우는 치프라스 주도의 시리자 정권이 정치적 성공을 거둘 경우 신자유주의적 패권의 최대 적수인 반긴축 세력이 마치 바이러스와도 같이 유럽대륙으로 퍼져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 디폴트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기본적으로 필자는 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그리스는 보수 언론이 말하는 것처럼 '선진국'이라 말할 수도 없고, '과잉 복지'를 실현하는 나라는 더더욱 아니다. 북유럽 국가들 정도는 돼야 '복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그리스 사태'를 오로지 '복지'의 탓으로 몰아가고,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도 복지를 축소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보수 언론들의 '뻔뻔함'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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