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배우 이미연은 JTBC <뉴스룸> 문화 초대석에 출연해 손석희 앵커와 이야기를 나눴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인터뷰에 처음에는 긴장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지만, 이내 그만의 당당함과 차분함을 '여유롭게' 드러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배우(女俳優)'라는 표현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부분이었다. 그 대화 내용을 한번 들어보도록 하자.
손석희 : 여배우 분들은 남자 배우들보다도, 사실 배우를 떠나서 인간으로서도, 나이가 점점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몇 년 전에 꽃보다 누나에서 아직까진 주인공이 하고 싶다고 얘기한 것도 그런 데서 나온 얘기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떻습니까? 그거에 대한 고민은 뭡니까? 제가 나이를 밝혀드리진 않겠습니다.
이미연 : 아니요, 전 말씀하셔도 돼요. 저는 어차피 뭐, 저 71년생. 돼지 띠. 마흔 여섯 됐습니다.
손석희 : 4년 지나면 지천명이신데
이미연 : 네, 얼마 안 남았습니다.
손석희 : 어떤 고민이 있습니까, 여배우로서는?
이미연 : 뭐, 사실, 그, 왜, 저는 가끔 그런 의문은 들어요. 왜 남자 배우한테는 남자 배우라는 말을 쓰지 않고, 여자 배우한테는 여배우라는 말을 쓰는지, 어찌 보면 그걸 잘 이용하면 되게 편안하게 배우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는 별로 그 표현이 마음에 들진 않고요. 글쎄요. 아직까지도 연기도 잘 하면서 늙지도 않고 뭐 이러기를 바라시는 것 같아요. 많은 대중 분들이나 관계자 분들이. 근데 그거를 적절한 수위에서 맞춰가면서 내 나이듦이 부끄럽지 않게 나이를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아요.
'여배우'에 대해서, 또 '나이듦'에 대해서 손석희 앵커는 '그 나름대로'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했지만, 이미연은 '여배우'라는 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왜 남자 배우한테는 남자 배우라는 말을 쓰지 않고, 여자 배우한테는 여배우라는 말을 쓰는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어찌 보면 그걸 잘 이용하면 되게 편안하게 배우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자신은 "그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다고 말했다.
한층 성숙해진 그는 편안한 미소를 띠며 담담히 말했지만, 오히려 그 말 속에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타협하지 않고 살았던 배우 이미연, 아니 인간 이미연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것을 느꼈던 것인지 손석희 앵커는 인터뷰 말미에 "호락호락한 배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웃음은 많이 보여주셨지만, 역시 이미연은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라고 덧붙였다.
사실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도 문제의 소지가 있지만, 거기까지 건드리진 않도록 하자. 어찌됐든 손석희 앵커가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니까 말이다. '여배우', 그것이 명백히 '성차별적'인 용어임에도 평소에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던 건 곰곰히 짚어봐야 할 일이다. 물론 최근에 들어서 그런 문제 의식이 제기되고, 약간의 반성적 시선이 존재했지만, 여전히 그런 고민들이 부족한 것 같다.
가령, '개그맨, 스턴트맨, 여류작가, 레이싱걸'과 같은 용어들은 어떨까? 혹은 '미망인(未亡人), 처녀작(處女作), 흑진주'와 같은 용어들은 어떠한가? 물론 이런 접근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남성들이 존재하겠지만, 이 용어들이 '성차별적'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팩트다. 특정 직업을 지칭하는 용어에 '맨(man)'이라는 남성형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물론 애초에 그 직업군이 '남성'들로 구성이 됐던 탓도 있겠지만, 남성과 여성이 혼재되어 있는 현재에 와서 그런 표현들은 분명 성차별적이다. ('man'에 '사람'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지만, 'person'이라는 보다 중립적인 단어가 있으므로 고쳐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여류작가'는 어떠한가? 이는 '여배우'라는 표현처럼 불필요하게 성별 표시를 하는 셈이다. 그 야릇한 시선을 이젠 거두자!
더욱 놀라운 것은 '미망인'처럼 결코 사용해서는 안 될 용어들이 미디어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아직 죽지 못한 자, 다시 말해서 남편을 따라 죽었어야 할 여자가 아직 살아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미망인이 언론 등에서 별다른 문제 의식 없이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는 건 충격적이다. 여성의 순결 이데올리기에 천착한 표현인 '처녀작', '처녀지'도 언론 보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 또한 불쾌하기 짝이 없다.
그 외에도 '여경', '여의사', 여기자' 등도 마찬가지다. 남자 경찰이 범인을 잡으면 그저 '경찰'이지만, 여자 경찰이 범인을 잡으면 '여경'이 된다. 단어에 국한짓지 말고,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드러내는 표현까지 시야를 넓혀보자. '정숙하다', '다소곳하다', 조신하다'와 같은 형용사들은 대개 '여성'에게 붙는다. '가모장'의 진정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김숙이 위의 표현들을 윤정수에게 하면서 신선한 역발상을 보여줬지만, 일반적이라고 볼 순 없다.
안상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사회연구센터장은 "의미를 곱씹어 보면 성차별적이란 사실을 알 수 있는데도 부지불식간에,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는 '집사람'이나 '안사람' 같은 성차별적인 용어 사용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얼마나 '남성중심적'인지 여실히 깨닫게 된다.
혹자들은 이런 접근에 대해 '까칠'하다고 말하거나 '불편'한 기색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고작 '언어'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성차별적인 언어들은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해결 방법은 거꾸로 성차별적인 언어들을 바로잡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수도 있다. 언어와 사고는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 없는 상호적인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연상암기법'을 강조하는 영어 강사의 어휘 교재(<경선식 영단어 초스피드 암기비법>)에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되었다는 보도 내용은 눈을 씻고 봐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참담했다. '죽다'는 뜻을 가진 'perish'를 "그녀를 패서 죽이는 모습'이라고 설명하고, '익숙한'이라는 뜻의 'inured'는 남자들과 같이 자는 데 익숙한 여자가 처음 만난 남자에게 "이리 누워"하며 익숙하게 꼬시는 모습"이라 연상케 하는 식이다.
'(연상 암기법은) 유치한 말장난이 아니라 과학'이라고 홍보를 하고 있는 경선식 대표는 "암기를 더 쉽게 하기 위해 일부러 사회 통념과 어긋나는 사례를 들기도 한다. 여성 비하라는 것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상처주려는 목적은 없었다"고 변명했지만, 이것이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수준이라면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언어'에 좀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 곧 '생각'이 담기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사회의 단면도 비친다. 이러고 보면 알 수 있다. 우리가 얼마나 초라한 사회에 살고 있는지 말이다. 무의식 중에라도 '성차별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보고, 그런 표현들을 교정하는 노력을 기울이자. 물론 별다른 고민 없이 성차별적인 용어를 마구잡이 사용하고 있는 미디어의 반성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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