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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훈의 정치적 소신 발언, 질타 아닌 이해가 필요한 이유

너의길을가라 2014. 11. 13.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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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급 센터' 서장훈의 은퇴 이후의 삶은 여타의 선수들과는 달랐다. 평생을 몸 바쳐 뛰었던 농구 코트를 떠난 후 <무한도전>에 출연하는 등 예능계의 블루칩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지난 5월 종영한 <사남일녀>에서는 독특한 예능감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오랜만의 방송 나들이에서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12일 첫 방송된 SBS <일대일-무릎과 무릎 사이>에서 강풀과 함께 웹툰 '26년'에 대해 나눴던 이야기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밤 늦은 시각, 영빈관이라는 중국 음식점으로 잠행(潛行)을 나선 두 사람은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서장훈은 강풀에게 "정치색이 아주 강한 작가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되게 많은 것 같다"고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강풀은 "좌빨?"이라고 받아치며 웃음을 터뜨리면서 "정말 중간에 있는 어떻게 보면 어떤 면에서 되게 보수적인 사람이거든. 근데 너무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내가 왼쪽에 있는 거야. 나는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설명했다.


서장훈이 이런 질문을 던진 이유는 "네 만화를 좋아하고 싶어도 만화에서 드러낸 정치적 성향 때문에 만화를 편히 보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기본적으로 아직까진 우리나라에서 공인은 정치색을 너무 노골적으로 띠는 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에요. (정치적 성향에 대해) 소신은 있으나 굳이 사람들한테 공개하고 싶지는 않아요"라며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아직까진 우리나라에서 공인은 정치색을 너무 노골적으로 띠는 거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발언은 강풀처럼 '좌빨'이라는 오해를 받으며 살아가는 수많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질타를 받았다. 그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선 '공인'에 대한 정의부터 확인하도록 하자. 다음(DAUM)의 국어사전에는 '공인을 공직에 있는 사람'이라고 심플하게 정의하고 있다. 네이버(NAVER)의 경우에는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면서 다음의 것보다 느슨하게 접근하고 있다.


공인(公人)

1. 국가 ·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

2. 공직에 있는 사람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제6판


편,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제6판에는 공인을 '공인'을 1. 국가 ·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 2. 공직에 있는 사람 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두 번째 정의야 문제가 없지만, '국가 ·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매우 포괄적이다. 최근 들어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의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사람들을 공인이라고 지칭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유명인=공인'이라는 등식은 바람직한 것일까?



이미 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고, 그에 대해 국립국어원이 친절한 답변을 달아놓았기에 인용하고자 한다. 이 답변에 따르면 인지도가 높다고 해서 모두 '공인'인 것은 아니며, 연예인을 비롯한 방송인을 '공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엄밀한 의미에서 강풀이나 서장훈은 공인이 아니며, 따라서 '아직까진 우리나라에서 공인은 정치색을 너무 노골적으로 띠는 거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서장훈의 고민은 자신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답'은 내려졌으니 이제 이를 감안하고, 서장훈이 말한 '공인'을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최대한 포괄적으로 이해하기로 하자. 그도 그런 의미에서 '공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직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면 곤란하지만, 이른바 유명인 등 '짜가' 공인들은 일반적이라면 당연히 자유롭게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도 무관하다. 또, 드러낼 자유가 있다면, 서장훈의 말처럼 드러내지 않을 자유도 있다.



물론 '과잉 정치화'된 대한민국의 네티즌들은 이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졸지에 서장훈은 '침묵하고 눈 감아버리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수꼴 인증'까지 해버렸다. '꼴통이라는 냄새가 풀풀'난다나? '정치적 소신을 노골적으로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다. 게다가 아예 커밍아웃까지 해버린 꼴이 되었으니 황당할 노릇이 아니겠는가?


정확히 어떤 의미에서 서장훈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그 이유를 간단히 추측해 볼 수 있다. 직업적으로 다수의 대중을 상대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성향을 띠게 됐을 때' 불이익과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소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은 '26년'을 그린 강풀을 '좌파'라고 여기고, 그의 작품들에 아예 손도 대지 않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 반대의 상황도 현실에서 자주 벌어지기도 하지 않던가?


"나도 (정치적 성향에 대해) 소신은 있으나 굳이 사람들한테 공개하고 싶지 않다"는 그의 발언은 문제될 소지가 전혀 없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대중에게 공개할 것인지 여부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이며, 이것이 자신의 일에 지장을 준다거나 혹은 그 외의 다른 편견을 받기 싫어서 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회사 내에서 굳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광고함으로써 'A는 어떤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심어줄 이유가 무엇인가? 또, 영업직 사원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말하며 물건을 판다면 실적은 최소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그러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난 가수가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말리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 시민의 입장에서 내가 좋고 싫은 것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노래에 어떤 선동적인 것은 없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노래하는 트리뷰트의 성격이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좀 무섭다. 사회적 참여를 포기했던 친구들이 이해가 간다. 그래도 누군가는 깃발처럼 있어줘야 할 것 같다. 무서우면 그만 둘 것 같다. 무서운 정도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 달라질 것 같다." (가수 이승환)


'너의 정치적 소신을 밝혀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너의 정치적 소신을 밝혀도 그 어떤 불이익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그 정치적 소신이 어떤 것이든 간에 말이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 혹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좌 혹은 우', '진보 혹은 보수'이건 간에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를 드러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어느 한쪽으로부터는 매장(埋葬)에 가까운 대접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무덤으로 들어가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 아닐까? 이승환의 용기를 모든 사람에게 바랄 순 없는 일이다.


또, 섣불리 누군가의 정치적 성향을 재단해 함부로 판단하는 것 역시 위험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설령 그 판단이 옳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성향을 가지고 누군가의 일에 타격을 입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만약 그 판단이 틀린 것이라면 이는 나중에 '어, 그랬어? 몰랐네' 정도로 넘길 수 없는 일 아닌가? 문제는 대중들의 시선이다. 


대중들은 서장훈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뚜렷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것을 비겁한 행동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성향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는 강풀과 대척점에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면서, 아예 그의 정치적 성향이 규정되어 버린 것이다. 공개하고 싶지 않다던 그의 정치적 성향이 이번 방송을 계기로 그의 실제 정치적 소신이 어떤 것인지와 무관하게 대중들에게 확정적으로 인식된 건 아이러니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지지정당을 밝히는 것이 자유로운 미국과 달리 대한민국에서는 이를 밝히는 순간 '낙인'이 찍히게 된다. 물론 그것이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수십 년의 군사 정권을 거쳐야 했던 탓인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은 너그럽고 여유로운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더군다가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밝히지 않겠다는 사람에게까지 손가락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다소 지나쳐 보인다.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은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설득의 대상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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