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국정원 패소, 뉴스타파 명예훼손 무죄 판결이 당연한 이유

너의길을가라 2014. 9. 1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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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25부(장준현 부장판사)는 국정원 직원 신모씨 등 3명이 뉴스타파 대표 김용진와 최승호 앵커를 상대로 낸 1억5천만 원(각각 5천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이로써 '국정원의 언론과 국민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도전기(?)'는 다시금 실패로 귀결됐다. 예상됐던, 너무도 당연한 결과이다.



이번 판결을 짚어보기에 앞서, '국정원의 언론과 국민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도전기'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지난 2009년 6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현 서울시장)의 국정원의 `민간사찰 발언'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당시 박원순 상임이사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정부(MB 정부)가 시민단체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는데 배제의 정치를 총체적으로 지휘하는 사령부가 있다고 본다"면서 국정원의 민간사찰과 시민단체 탄압 사실을 알렸다.


박 상임이사의 주장은 국정원이 시민단체와 관계를 맺는 기업과 그 임원들까지 전부 조사해 개별적인 연락을 취하는 등 압박을 가함으로써 시민단체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내용을 전하면서 박 상임이사는 "명백한 민간사찰이자 국정원법 위반이다. 야만적이고 잔인한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 상임이사의 폭로가 있은 후, 정부와 국정원의 대응은 경악 그 자체였다. 진상을 명백히 밝히거나 민간사찰의 대상인 시민단체에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이름으로 박원순 상임이사에게 명예훼손 소송을 건 것이다. 국가가 국민을 고발?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이에 대해 박 상임이사는 "국가가 국민을 고발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명예훼손은 국정원이 아니라 국민이 당하고 있다"면서 반박하고 나섰다.


2010년 9월 15일, 국가가 '허위사실을 말해 국정원과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박 상임이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판결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가 나 국가기관의 업무 처리는 국민의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라는 점, 국가는 잘못된 보도 등에 대해 방대한 정보를 활용해 스스로 진상을 밝히거나 국정을 홍보하는 등 대응 수단을 갖고 있다는 점, 만약 아무 제한 없이 국가의 피해자 자격을 폭넓게 인정할 경우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역할이 위축되어 자칫 언로가 봉쇄될 우려가 있다는 점, 많은 국가기관이 소송을 남발할 위험성도 있다.


부가 명예훼손의 대상인가 <시사IN>에서 발췌


2011년 12월 2일에 열린 항소심(서울고법 민사13부(문용선 부장판사))의 결과도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였다. 다 만, 2심 재판부는 '명백한 허위 사실 유포나 악의적인 비방 등으로 명예훼손 피해를 당했을 때는 제한적으로 국가도 국민과 마찬가지로 소송 제기가 가능하다'는 단서를 달아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는 국가도 소송 제기가 가능하다는 길을 열어 놓았다.


하지만 1994년 헌법재판소는 국회 노동위원회의 헌법소원을 각하하면서 "기본권의 주체가 아닌 자는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없다. 국가나 국가기관 등은 기본권의 주체 소지자가 아니다"는 판례를 확립해놓았고, 이러한 기조는 계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는 만큼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촌극'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지난 2008년 4월 MBC 'PD수첩'은 'PD수첩-미국산 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을 방송했다. 대한민국의 검역 주권과 국민 건강권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정운천 당시 농림수산부 장관과 민동석 당시 차관보는 자신들의 명예가 훼손당했다면서 PD수첩 제작진을 고소했다. "PD수첩의 거짓 선동방송으로 30년 공직자의 명예가 한순간에 짓밟혔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2011년 9월 2일, 대법원의 판단은 역시 '무죄'였다. 판결의 요지는 국정원이 박원순 상임이사를 명예훼손을 고발했던 사건과 같은 맥락의 내용이었다. '국가나 국가기관은 기본권의 주체 소지자가 아니고, 기본권의 주체가 아닌 자는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없다'는 기존의 판례는 유지됐다. 여기에 '공직자 개인'도 포함된 것이다.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이러한 감시와 비판은 이를 주요 임무로 하는 언론보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때 비로소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으며,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으므로,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결정 또는 업무 수행과 관련된 사항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언론보도로 인하여 그 정책결정 또는 엄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언론보도로 인하여 그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에 관여한 공직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다소 저하될 수 있더라도 그 보도로 인하여 곧바로 공직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된다고 할 수 없다. 



정부와 국정원의 국 민과 언론을 입을 봉쇄하고 억압하려던 시도는 완전히 실패했다.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정신을 좀 차렸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정확히 알고 있다. 2013년 1월, 국정원은 표창원 전 교수가 <경항신문>에 기고한 '국정원의 위기'라는 칼럼을 문제 삼으면서 표 전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최근의 여러 판례들을 통해 '공부'가 된 것일까? 검찰은 국정원의 토스가 '똥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약 1년의 시간이 흐른 2014년 2월에서야 무혐의가 명백하다며 '각하' 처분을 내렸다. 재판까지 가봐도 승산이 없다는 것을 검찰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이때부터 정부와 국정원은 국정원 조직이 아닌 국정원 특정 직원의 이름으로 고소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뉴스타파>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이었다.



지난 2013년, <뉴스타파>는 유우성 씨의 동생 유가려 씨가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를 받고, 유우성 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하게 되는 전 과정을 '뉴스타파 스페셜-자백이야기'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인터넷에 게재했다. 이 영상에는 국정원의 '큰삼촌 수사관, 대머리 수사관, 아줌마 수사관'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유가려 씨를 폭행 · 혁박해 허위 진술을 받아내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국정원은 또 다시 '명예훼손' 카드를 꺼내 들었다. 물론 이번에는 살짝 '꼼수'를 부려 '국정원'이 아닌 국정원 직원인 신모 씨 등 3명의 이름으로 고소를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명예훼손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특정돼야 하는데, 문제의 애니메이션에서 묘사된 이들이 원고들이라고 특정됐다고 보기 어렵다"다면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영상에 '국정원 수사관'이라는 집단이 표시됐다고 해서 국정원의 구성원인 신씨 등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결론이었다.



국정원은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는 등 반헌법적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 왔다. 국정원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급기야 '국정원 해체론'까지 대두 됐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국정원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썼고, 범죄 집단에게 '셀프 개혁'을 지시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물론 지난 11일, 법원은 국정원의 사이버 활동이 '국정원 고유 활동을 벗어난 정치개입 행위에 해당하지만 선거개입으로 볼 수는 없다'는 판결을 내려 면죄부를 내리고자 했다. 하지만 이 판결은 법원 내부에서도 비판을 받으며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판결'로 불릴 만큼 논리적 개연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낯부끄러운 판결이다. 검찰은 "1심 판결이 일부 법리 오해 및 양형부당의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항소를 결정했다.



뉴스타파가 3일 공개한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 타임라인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당시 국정원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국정원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증거를 위조해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조작했다.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을 통해 그동안 국정원이 간첩을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를 여과없이 드러났다. 충격스러웠고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 이것이 '서울시 간첩 조작 사건'이라는 잘못된 이름으로 언론에 보도됐던 그 유명한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이다.


반헌법적 행위를 무분별하게 일삼으며, 언론과 국민을 억압하려드는 국정원의 만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사과는커녕 반성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는 정부가 든든한 뒷배로 국정원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뉴스타파>에 대한 국정원의 고소가 패소(뉴스타파 무죄)로 마무리됨으로써 국정원 직원을 '대리인'격으로 내세우려는 시도조차 물거품이 되었다.


이제는 깨달았을까?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국민이 그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국정원은 언론을 옥죄고 국민의 입을 막기 위해 국정원의 이름으로 혹은 소속 공무원의 이름으로 고소 · 고발을 일삼는 반민주적인 발상을 버리고, 오로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물론 그러한 바람이 지금의 국정원에겐 그저 '소귀의 경 읽기'에 그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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