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가슴 아픈 세월호 1주기, 치안 한류가 부끄럽지 않으려면

너의길을가라 2015. 4. 1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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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K-드라마 등 문화적인 한류의 바람이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 흐름 속에 또 하나의 '한류'가 있으니, 바로 '치안한류(K-Police Wave)'다. 치안한류 프로젝트란 대한민국 경찰의 우수한 치안시스템을 외국에 전수하는 것인데, 전세계에 우리나라 경찰관을 파견해 주기를 희망하는 나라는 22개국에 이른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치안 시스템은 세계적인 수준이고, 그 중심에 경찰이 자리하고 있다. 야간에 마음껏 거리를 활보해도 안전한 나라가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는 건 외국을 다녀오면 절실히 깨닫게 된다. 무엇이 됐든 우리의 뛰어난 분야를 알리고 수출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볼 때 반가운 일이다. 치안한류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보유한 우수한 경찰력을 앞다퉈 수용하고자 하는 국가들이 많다는 건 국가적 위상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쯤에서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치안한류, 다시 말해 경찰의 치안 시스템을 수입하고자 하는 국가들은 당연히 자국의 치안을 불안하게 느끼고 있는 나라일 것이다. 치안 상태가 열악한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것이 정부의 무능력에서 기인한 것이 대부분이다. 군부 독재로 인한 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난다든지, 경제 불안으로 실업률이 폭등하면서 시민들이 불만을 표시하는 것 등도 결국 정부의 문제로 귀결된다.


ⓒ 법무경찰신문, 이성한 전 경찰청장과 칸드커 방글라데시 경찰청장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치안한류는 결국 각국 정부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물론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시위나 집회로 인해 국가가 전복되는 것을 바람직한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 어쩌면 시민들이 마음껏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데에는 '이 정도로는 나라가 무너지지 않아'라는 안정심리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브레이크가 있기 때문에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지난 2008년의 촛불 집회로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도심에서는 매일같이 시민들이 모여들었고, 그로 인해 공권력과의 충돌 상황이 빚어졌다. 하지만 중동이나 북아프리카의 경우와 달리 대한민국의 정부는 굳건했다. 여기에는 경찰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는데, 치안한류로 전세계에 수출을 할 만큼 정교하게 잘 갖춰진 시위 · 집회에 대한 대처 매뉴얼이나 치안 시스템 덕분이었다. 경찰의 자신감 혹은 자부심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든든한 치안 시스템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지만, 한편으로 그것이 과잉됐을 때 혹은 그 방향성이 비틀어졌을 때는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2008년 촛불 집회 당시에도 경찰의 과잉 진압이 존재했고, 지난 주말동안 전국을 뜨겁게 했던 '세월호 1주기 범국민 대회'에서도 경찰이 보여준 모습들은 많은 시민들을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그 책임을 경찰에게 온전히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강경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정부에 종속적인 위치에 있는 경찰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단체는 '4월16일의 약속국민연대(이하 4·16 연대)'를 만들어 기자회견을 여는 등 시위를 주말까지 시위를 이어왔다. 도심 한복판에서 열린 시위였던 만큼 경찰과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경찰은 차벽을 만들어 광화문 주위를 막았고, 4·16 연대는 "경찰의 무도하고 불법적인 장벽에 가로막힌 시민들에게 폭력 진압이 가해졌다. 경찰이 평화적 추모행진을 가로막았다"고 성토했다.



한편, 페이스북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은 많은 시민들을 분노케 했다. 4·16 연대에 따르면, "경찰이 가족들 화장실 가는 것조차 막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엄마들이 플라스틱박스로 간이화장실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자식 잃은 부모에게 국가가 이런 모욕까지 안 깁니다. 정말 처참하고 참담"하다는 유가족의 심경 고백은 더욱 가슴이 아팠다.


이럴 수밖에 없었을까, 라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경찰로서는 상황을 철저히 통제해야 했을 것이다. 조금의 방심(?)도 있어선 안 되는,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하는 직업적 책무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유가족과의 대화를 통해 일정한 통로(적어도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든다.




세월호 참사 1주기 범국민대회가 열렸던 18일, 경찰은 16일 밤부터 광화문 누각 앞에 고립되어 있었던 유가족을 비롯한 시민 100여 명을 연행했다. 실시간으로 보도되는 기사들은 늘어가는 인원을 업데이트하기 바빴다. 20여 명에서 시작한 숫자는 어느덧 100여 명까지 늘어났다. 그 과정에서 물대포 · 최루액 · 소화기 등이 사용됐다.


일련의 상황들에 대해 국제앰네스티의 아놀드 팡(Arnold Fang) 동아시아 조사관은 "평화적인 집회와 행진을 진압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그 유가족 모두에 대한 모욕적인 처사"라고 비판했다. 특히 16일 살포된 최루액에 대해선 "특정 폭력 행위에 대한 대응이라기 보다 평화적인 집회 참가자들을 해산하기 위해 살포됐다. 이는 국제 기준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민주사회에서 경찰과 시민은 적이 아니다. 시민들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자신들의 뜻을 표현 · 표출하고, 경찰은 이를 적절히 관리하면서 전체적인 치안을 지킨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때 시위 · 집회 현장에서 시민들과 대치하고 있는 경찰(및 의경)이 안고 있는 공포와 불안은 시민들이 공권력에 대해 느끼는 그것과 비교할 때 결코 적지 않다.


결국 이 불필요한 싸움, 서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싸움은 '정부'의 태도에서 비롯한다. 특히 세월호와 관련해서 이렇듯 가슴 아픈 장면들이 연출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유가족과 시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국가(여기서는 대통령에 가깝겠지만)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원활하게 마무리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던가?


애초부터 꼬여버린 일이긴 하지만, 적어도 세월호 참사 1주기만큼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 유가족들을 만날 수는 없었을까? 중남미 4개국 순방이 국가적 이익에 부합하는 일이고, 이를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낸 것도 사실이지만 굳이 일정을 이렇게 짜야 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벌써부터 '지겹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이제 고작 1년이 지났을 뿐이다. 국가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줬던 사건인 만큼 애도의 기간은 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상처들이 아직 봉합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 아닌가?



김동춘 교수는 자신의 책 『대한민국 잔혹사』에서 "정치 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감이 가족의 단위, 며칠 전 일어난 일에만 관심 갖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이 사회는 아직 미개사회를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공감의 촉수가 혈육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 사회가 있는 반면, 내 가족의 고통을 통해 다른 가족의 고통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공감의 범위를 확장하는 사회가 있다. 우리는 전자와 같은 미개사회에서 벗어나 후자에 가까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과연 우리는 공감의 범위를 확장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가? 글을 마무리 하자. 세계 각국에 치안 한류를 수출할 만큼 대한민국 경찰의 치안 시스템은 독보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이를 활용하는 정부에 대한 아쉬움은 짙게 남는다. 시민을 위한 경찰이 되기 위해선 경찰 스스로의 노력뿐만 아니라 정부 자체가 변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1주기는 우리에게 많은 고민과 숙제를 던져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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