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특종 가로채기 논란에 대한 손석희의 '사과 없는' 해명

너의길을가라 2015. 4. 1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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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성완종 리스트'가 대한민국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고(故)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이 자살하면서 남긴 메모에는 현 정권의 실세들의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이완구 국무총리를 비롯해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했거나 하고 있는 인물들을 비롯해서 홍준표 경남도지사, 유정복 인천시장 등 지자체장의 이름도 표기되어 있었다.


한국경제TV


리스트에 이름이 적힌 당사자들은 극구 부인했지만, <경향신문>이 단독 인터뷰한 성 전 회장의 육성 파일이 공개되면서 보다 '현실성'이 짙어졌고, 검찰의 압수수색을 통해 관련 증거들과 구체적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검찰 특별수사팀은 리스트에 오른 8명 가운데 구체적인 정황이 가장 많이 확인된 이완구 국무총리를 정조준하고 있는 듯 하다.


수사 결과에 대해 예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현 정권에 심대한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미 그 조짐은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지지율(직무수행 평가)은 5% 하락한 34%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박 대통령의 콘트리트 지지율을 형성해왔던 대구 · 경북(14%p↓), 60대 이상(10%p↓)에서 하락 폭이 가장 컸다는 점이다.


고(故)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예상됐던 것처럼) 물타기가 시작됐다. "노무현 정부 실세, 성완종 특별사면 개입 정황 포착" (YTN) 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의도하는 것은 현 정권을 겨냥하고 있던 '성완종 리스트'를 '여야의 문제'로 돌리고자 함이다. 이렇게 되면 (늘 그래왔던 것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만의 '딜'이 성사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시각각 진행되고 있는 수사 결과에 대해 코멘트를 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이 보다 중요한 일이고,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 호들갑을 떠는 언론의 장단에 호흡을 맞출 필요도 없다. 흐름을 따라서 차분히 캐나가다보면, 죽음으로서 밝히고자 했던 '진실'에 당도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 흐름을 막으려고 하는 존재들의 발버둥을 적절히 체크하고 제어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



너무 길었던 서론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고, 정작 이 글에서 다루고자 했던 '손석희의 해명'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상황은 이렇다. <경향신문>은 성 전 회장과의 생전 인터뷰를 진행했고, 관련 내용을 보도하면서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진상을 밝히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5일, <경향신문>은 인터뷰 녹음파일을 검찰에 제출했고, 유족과의 협의를 거쳐 더 이상 육성을 보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다음 날 JTBC <뉴스룸>은 성 전 회장의 육성 파일을 입수했고 이를 방송으로 내보냈다. '유출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다름 아닌 <경향신문>이 녹음 파일 보존을 위해 협조를 요청했던 디지털포렌식 전문가인 김인성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였다. 참고로 김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변명문 같은) 사과문을 게재했다.(http://minix.tistory.com/453)



<경향신문>의 특종을 가로챈 <뉴스룸>의 행태에 대해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손석희 JTBC 사장은 녹음파일을 보도하며 시청자의 알 권리를 내세웠지만, 이는 알 권리나 공익성과는 거리가 멀다. JTBC 보도는 경향신문 이상으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할만한 내용이 없었다. 경향신문이 예고한 기사를 앞질러 공개한 것일 뿐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새로운 사실이 없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JTBC에 넘어간 녹음파일은 유출자가 경향신문을 통해 확보한 것으로, 그 과정에 부도덕한 행위가 있었다. 이를 몰랐을 리 없는 JTBC가 경향신문과는 상관없이 입수했다고 밝힌 것은 유감스런 일"이라며 "JTBC의 보도는 공익성과 신뢰성을 모두 놓쳤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이 더해지면서 논란을 증폭됐다. 그러자 지난 17일, JTBC '뉴스룸'손석희 앵커는 '경향신문 특종 가로채기 논란'에 대해 직접 해명에 나섰다.



"보도 책임자로서 어제 방송이 논란의 대상이 된 것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녹취록 파일이 검찰로 넘어간 이상 공적 대상물이라고 판단했고, 편집없이 진술 흐름에 따라 공개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봤다. <경향신문>이 전문을 공개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육성이 갖고 있는 현장성에 의해 시청자가 사실을 넘어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하듯 보도를 했어야 하느냐는 것에 대해 그것이 때론 언론의 속성이라는 것만으로도 변명이 안 될 때가 있다.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감당하겠다"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믿는 혹자들은 '모로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는 주장을 펼치며, '성완종 리스트'를 부각시키면 그만이라고 타박한다. 또는 '손석희'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를 앞세워 '그가 하는 일이라면!'이라 목소리를 높인다. 한윤형의 말처럼, "사람들의 환상 속에서 '손석희의 JTBC'는 기득권에 유능하게 대응할 수 있는 힘있는 영웅"인 듯 하다.



그에 반해 <경항신문>은 졸지에 "기득권에 대응한다고 말하나 힘이 없는 주제에 보도이득을 독점하려고 한 이기적인 존재"로 전락한다. 이러한 구도가 짜여지는 양상이 참으로 안타깝다. 또, 참으로 부당하다. 물론 논란에 대해 직접 입을 연 손석희 앵커의 태도는 (솔직히 말해서) 멋있었고, 그 내용도 그럴 듯 했다. 손석희 앵커 의 아우라는 역시 대단하다고 또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에서 보여줬던 JTBC의 조심스러웠던 태도와 비교해 이번 판단은 매우 섣부른 것이었다. "통상 권력·광고주의 압력에 맞서 자주 통용되는 '알 권리'라는 말로 유족들의 호소도 외면했다"는 <경항신문>의 지적은 적절했다. 또, "이미 당사자가 자백한 녹음파일 절취 및 입수 · 보도 경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고 사과도 없었다"는 반박처럼 손 앵커의 해명은 '폼'에 비해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만약 <경향신문>이 사건 자체를 은폐하려 했거나 축소하려고 했다면, 성 전 회장의 육성 파일을 공개한 JTBC의 보도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알 권리'는 바로 그럴 때 허용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정황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향신문>은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해 공정한 언론의 책무를 다하고 있었다. 몇 시간 뒤면 보도내용 전문이 나가기로 예정되어 있었지 않았던가?


따라서 JTBC의 보도는 명백히 특종을 가로챈 비윤리적 행위에 해당한다. 손석희 앵커가 해야 할 일은 '해명'이 아니라 '사과'였을 것이다. '손석희'에 대한 환상 때문에 그의 잘못까지도 덮어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는 진영 논리에만 빠져 옳고 그름마저 놓치는 것은 더욱 나쁘다. 당연히 손 앵커도 그런 감싸기를 바라진 않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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