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선내 대기 명령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대기하던 어린 학생 등 304명을 방치하고 이른바 골든 타임에 선장으로서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아 승객들을 끔찍한 고통 끝에 죽음에 이르게 하고 먼저 탈출했다. 선장의 무책임한 행위로 꽃다운 나이에 꿈도 펼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 학생들, 생때같은 아이들을 가슴에 품고 분노에 신음하는 부모들,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팽목항을 맴도는 실종자 가족,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생존자에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줬다. 언론을 통해 지켜본 국민에게는 크나큰 공포와 슬픔, 집단적 우울증을 안겼고 국가기관과 사회질서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고,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보도되면서 대한민국의 국격은 곤두박질쳤다. 선장의 행위는 어떤 명분으로도 용서받기 어렵고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엄중한 형사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어 우리 사회와 영원히 격리시키기로 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판결문을 낭독하던 법관(서경환 부장판사)은 북받치는 감정을 감추지 못했고, 모든 신경을 집중해 판결을 듣고 있던 유가족은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지난 28일, 광주고법 형사5부는 세월호 승무원 15명에 대한 항소심에서 이 선장에 대해 징역 36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심에서는 외면됐던 살인의 고의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지난해(2014년) 11월 11일 열렸던 1심 재판에서 재판부(광주지법 형사 11부, 부장판사 임정엽)는 이 선장에 대해 유기치사·상, 선원법
위반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36년을 선고했다.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던 살인에 대해서는 고의가 없다고 판단해 무죄로 결론을 내렸다. 맙소사! 고의가 없다고? 유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여론은 성토(聲討)와 원성(怨聲)으로 들끓었다. 살인을 적용할 수 없는 이 선장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 처단형인 36년이 선고됐지만, 그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살인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 선장이 해경 경비정이 도착할 무렵 2등 항해사에게 '승객들을 퇴선시키라'는 지시를 했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선장의 행위로 승객들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인식을 넘어 이를 용인하는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과연 2등 항해사에게 퇴선 명령을 내릴 것만으로 모든 책임이 해소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 법원이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퇴선명령을 했다고 하더라도 사망의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작위의무를 다하지 못했(임내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뿐더러 '선장이 직접 마이크라도 잡고 퇴선명령(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내리지 않은 것도 지적할 만한 부분이었다. 설령 이 선장이 2등 항해사에게 지시를 했다고 하더라도, '퇴선하라는 말 한마디를 한다고 퇴선의 의무를 다한 것이 아니(서기호 정의당 의원)'다. 실질적인 지시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비판을 법원이 수용한 것일까? 앞서 확인한 것처럼 2심 재판부는 사고 전후 정황과 피고인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고, 결국 퇴선명령 지시가 없었다고 보고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했다. 그리고 무기징역을 선고함으로써 그를 '우리 사회와 영원히 격리시'켰다. 이번 판결은 대형 인명사고와 관련해 '부작위 살인'을 인정된 첫 사례(1978년 이리역 폭발사고와 1970년 남영호 침몰 사건에선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인정되지 않았다)로 기록됐다.
이 선장에게 살인의 고의가 인정되긴 했지만, (유가족의 입장에서) 아쉬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머지 승무원 14명의 형량이 대폭 감형된 것 때문이다. 1심에서는 징역 5~30년이었던 형량이 1년 6개월~12년으로 대폭 줄었다. 재판부에 따르면, 선장에게 책임을 엄하게 묻는 대신 그의 지휘감독을 받는 위치에 있는 승무원들의 그것은 덜어낸 것이다.
전명선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1심에 비해 형이 2분의 1, 3분의 1로 축소됐다. 재판부의 판단은 안전과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올리는 일을 가로막는 것"이라 평하며 재판부를 비판했다. 하지만 근로계약서조차 작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월호에 처음 올랐던 승무원 2명이 감형된 것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각각 징역 7년과 징역 5년에서 1년 6개월로 감형됐다)
ⓒ 경향신문
4·16가족협의회는 "재판부의 판결을 받아 들일 수 없다"며 상고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 이유는 "피고인 이준석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그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세월호 선체 인양에 대한 부분, 제대로 인양이 되고 증거 부분이 명확히 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재판에 반영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 때문이다.
"정부가, 재판부까지도 세월호 선체 인양을 지금까지 가로막고 진실을 은폐하는 등 다분한 목적을 가지고 진행했던 것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대목에선 유가족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큰지 여실히 드러났다. 물론 세월호 참사는 이준석 선장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묻고 마무리 할 사안은 결코 아니다. 부패와 비리의 만연함, 정부의 위기관리 시스템의 붕괴 등 따져 물어야 할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쯤에서 주목해야 할 하나의 관건은 세월호 유가족의 고립이다. 여론의 분위기가 이들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 건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럴수록 정부의 역할과 책임이 더욱 크다. 더 이상 세월호 유가족들의 눈에서 눈물이 흐리지 않도록, 이들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앞장서서 고립의 벽을 열어줘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책무이고,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 아닐까?
도대체 왜 이준석 선장은 승객들을 대피시키지 않았던 것일까? 2014년 4월 16일 이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풀리지 않는 질문이다. 여러가지 가설은 계속해서 제기됐지만,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당사자인 이준석 선장의 입을 통해 물음표가 제거되길 기대했지만,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에게 부작위 살인이 적용됐다고 해서, 무기징역이 내려졌다고 해서 세월호 참사가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마지막 물음표까지 풀어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살아남은, 우리들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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