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판교 환풍구 붕괴 참사, 관람객의 과실? 주최 측의 안일한 관리?

너의길을가라 2014. 10. 18.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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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사고가 유독 많은 2014년, 또 다시 가슴이 무너지는 사고가 터졌다. 이번에도 후진국형 참사다. 지난 17일 오후 5시 45분경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판교테크노밸리 축제의 사전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환풍구 철제 덮개 위에 올라갔던 관람객 27명이 환풍기 덮개가 무너지면서 10여m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재까지 사망자는 16명, 부상자는 11명으로 확인됐다.



풍기 덮개 붕괴. 이번 사고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소 극명하게 갈리는 것 같다. 첫 번째 시각은 환풍구 철제 덮개 위로 올라간 관람객의 부주의를 탓하는 피해자 과실론이다. 두 번째는 '그럼에도' 공연 주최 측이 환풍구 주변에 안전 요원을 배치하거나 울타리를 쳐서 관람객의 접근을 막았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인재론이다.


두 가지 의견 모두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고의 피해자들이 미성년자인 학생이 아니라 모두 성인이었다는 점에서 피해자 과실론에 일정한 무게가 실리는 것도 사실이다. 피해자의 과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가장 무거운 책임은 주최(이데일리) 측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공연 중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주최 측은 관리 · 감독을 해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우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환풍기 위해 수십 명이 올라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평소라면 그 누구도 그런 위태로운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17일)의 사고 현장은 걸그룹의 공연이라고 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포미닛 등 인기 걸그룹이 펼치는 화려한 무대에 관객들은 열광적으로 호응했고, 다수의 사람들이 그 분위기에 취해 (약간의) 흥분 상태에 있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고가 발생한 후에 상황을 반추하는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거길 왜 올라간 거야?'라고 의아해 하거나 타박을 할 수 있지만, 눈앞에서 공연이 펼쳐지고 있는 현장에서는 그러한 판단 능력이 평소와 달리 다소 떨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예측하고, 이를 미연에 방지해야 하는 것은 마땅히 주최측의 몫이다.



목격자들의 진술로 미루어보건대, 당시 안전요원은 무대 앞 쪽에만 3~4명 배치됐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공연 시작 전에 주최 측에서 "위험하니 올라가지 말라" 는 방송을 했다는 진술도 있지만, 환풍기 덮개에 올라간 사람들은 대체로 늦게 도착한 사람들 아니겠는가? 또, 그러한 방송 내용을 모든 사람들이 들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 이후에 아무런 통제가 없었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환풍구의 위치는 무대를 좀더 잘 보기 위해 올라가고 싶은 유혹이 들 만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위험하니 올라가지 말라"고 주최 측이 방송을 했다는 진술이 사실이라면, 주최 측은 '환풍기 위로 사람들이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던 것이고, 위험성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더욱 철저하게 관리를 했어야 하는 것이 맞다.



난 2월 27일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 사고로부터 시작된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사고는 4월 16일 세월호 참사, 5월 26일 경기도 고양터미널 화재사건, 5월 28일 전남 장성 요양병원 화재사건을 비롯해서 각종 지하철 사고 등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안전불감증'에 대한 지적과 반성이 계속되고 있지만 달라지는 것이 없다. 끔찍한 사고는 쉴틈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번에 발생한 판교 환풍구 붕괴 참사도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후진국형 참사이다. 경찰 관계자는 "철저한 사고원인 규명에 나설 계획"이라면서 "사고 경위를 수사한 뒤 안전규정 등을 위반한 사항이 있을 경우 관련자를 형사처벌하겠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안전요원 미배치 등 안전 관리에 소홀했던 것은 분명 주최 측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부분이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참담한 사고들이 반복되어야 하는 것일까? 이번에도 결국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비롯된 끔찍한 참사가 아닌가? '에이, 괜찮겠지', '설마, 내가?'와 같은 '안전불감증'이 바꾸지 않는 한, 안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변화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또 다시 끔찍한 소식들을 전해들어야만 할 것이다. 아니, 다음에는 내가 그 끔찍한 일의 '주인공'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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