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새누리당의 사과와 자제령이 씁쓸하기 짝이 없는 이유

너의길을가라 2014. 4. 23. 15:36
반응형

 

지난 22일,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 지만원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인 '시스템클럽'에 '박근혜, 정신 바짝 차려야'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 <연합뉴스>에서 발췌 -

 

세월호 사건을 맞이한 박근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다른 하나는 안산과 서울을 연결하는 수도권 밴드에서 국가를 전복할 목적으로 획책할 '제2의 5·18 반란'에 지금부터 빨리 손을 써야 하는 것이다. '무능한 박근혜 퇴진'과 아울러 국가를 전복하기 위한 봉기가 바로 북한의 코앞에서 벌어질 모양이다. 시체장사에 한두 번 당해봤는가? 세월호 참사는 이를 위한 거대한 불쏘시개다. … '이판사판'의 팽팽한 긴장 상태에서 도박으로 살길을 뚫어야 하는 것이 김정은의 토정비결이다. 세월호 참사는 이런 도박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 제2의 5·18 폭동, 이것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 하에 대통령은 단단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필자도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신을 바짝 차리라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을 수도 없이 느꼈는데, 지만원 씨도 그러했던 모양이다. 물론 그 이유는 달랐다. 지 씨는 제2의 5·18 반란을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 '시체장사'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조차도 망각한 것이다. 이 정도면 그를 '정상'이라고 여기긴 어려울 것 같다.

 


한편, 지난 18일에는 새누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인 정몽준 의원의 막내아들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이 논란이 됐다. 그는 그 글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두고 '국민 정서 자체가 굉장히 미개'하다고 말했다. 아직 어린 나이와 학생이라는 신분을 감안하더라도 용납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위의 두 사람은 '개인'일 뿐이다. 추측건대, 지만원 씨와 정몽준 의원의 막내아들은 정치적 성향상 새누리당 쪽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이 새누리당과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를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고 있으며, 실종자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모두들 그 실낱 같은 희망을 안고, 걱정과 분노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문제는 지 씨와 정몽준 의원의 막내아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 새누리당의 핵심 인사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 20일, 새누리당 한기호 최고위원은 "북한의 지령에 놀아나는 좌파단체와 좌파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이 정부전복 작전을 전개할 것입니다"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의 말은 지만원 씨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지난 19대 국회의원 선거('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에서 62.2%의 득표율로 당선된 사람이라는 사실이 소름끼치도록 놀랍다. 게다가 현재는 집권여당의 최고위원의 자리에 올라있지 않은가?

 

지난 22일에는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대구 북구갑)이 한기호 최고위원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월호 실종자 가족 행세를 하며 정부를 욕하며 공무원들 뺨때리고 악을 쓰고 욕하며 선동하는 이들. 학부모 요청으로 실종자 명찰 이름표를 착용하자 잠적해버린 이들. 누구일까요? 뭘 노리고 이딴 짓을 하는 걸까요? 현장에 혼란과 불신, 극한 대립을 일으키는 전문 선동꾼은 누굴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인지?"라는 글과 함께 동영상을 게재했다. 사실 확인 결과, 권 의원이 쓴 글의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일반적인 국민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한기호 최고위원과 권은희 의원 사례를 통해 우리는 최소한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저들이 지금 이 순간 '진짜' 걱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저들의 걱정 속에는 '국민의 안전'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도 저들은 알량한 정권의 안위,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지위와 기득권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두 번째는 '저들'이 평소에 '국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정몽준 의원의 막내아들의 발언은 아직 학생의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는 소위 '가진 자'들의 기본적인 인식 체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생각이 어떤 방식으로 형성이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자라온 환경과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으로부터의 영향이 컸을 것은 뻔한 것 아닌가.

 

 

- <연합뉴스>에서 발췌 -

 

한기호 최고위원과 권은희 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세월호 참사에 슬퍼하고 분노하는 사람들, 실종자들이 '생존'해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 정부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구조 대책에 분노하는 사람들은 '테러리스트'이고, '선동꾼'이었다.

 

정몽준 의원은 "제 막내아들의 철없는 짓에 아버지로서 죄송하기 그지없다. 우리 아이도 반성하고 근신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저의 불찰"이라며 대신해서 사과했다. 권은희 의원도 "동영상과 사진 속의 학부모를 찾아뵙고 별도의 사죄를 드리겠다. 하지만 지금은 이분들에 심적 부담을 드리지 않았으면 한다"며 사과했다. 필자에게도 와닿지 않는 '형식뿐인 사과'가 마음을 크게 다친 실종자 가족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됐을지 의문스럽다.

 


- <노컷뉴스>에서 발췌 -


연달아 '사고'가 터지자,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의 고통과 슬픔을 온 국민이 함께하고 있다. 의원들께서는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 SNS 등의 활동으로 인한 불필요한 오해가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 주시고, 음주·골프 등도 일절 자제해 주기 바란다"는 메시지를 소속 의원들에게 보냈다고 한다.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국민의 대표랍시고 선출된 국회의원들에게 '자제령'을 내리는 꼴이 우습기만 하다. 새누리당은 그 정도의 판단력도 없는 자들이 모인 집단이란 말인가? 저들의 사과와 당부에서 필자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저들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단지 실수였다고 말하고, 오해가 없도록 유의하라고 말하는 저들은 '감췄어야 할 속내'를 드러낸 것에 대한 아쉬움과 질책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