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사이코패스적 언론의 시대, 손석희·정관용이 보여준 실낱 같은 희망

너의길을가라 2014. 4. 22.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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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더 이상 언론이 아닌 지는 한참 지났다. MB의 위대한(!) 유산인 '날치기'에 의한 종편의 등장이 결정적인 이유가 되긴 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른바 '공영방송'이라고 하는 KBS와 MBC가 무너진 것이 오히려 더욱 뼈아팠다. 이러한 추세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보다 가속화됐다. 잇따라 '낙하산'이 투하됐고, 낙하산은 권력 앞에 바짝 엎드리며 '언론 장악'이라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언론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의무와 책임을 방기(放棄)한 언론의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되돌아왔다. 그 명징(明澄)한 예가 바로 '세월호 참사'이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지금까지 공영방송을 비롯한 종편 등은 끊임없이 그리고 집중적으로 뉴스를 생산해냈다. 사건에 경중에 따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세월호 참사'는 그리 다뤄야 할 만큼 중대한 사건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그 뉴스가 과연 '사실(팩트)'에 근거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애석하게도 언론이 보여준 모습은 정확한 정보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본연의 기능에 입각한 것이 아니었다. 시청률 경쟁에 매몰된 과잉 · 왜곡 보도가 남발됐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가 쏟아졌다. 또,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뉴스를 전달하기보다 국민적 분노에 편승한 마녀사냥식 보도가 이어졌다. 특정인에게 사건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으려는 보도 행태는 섬뜩할 지경이었다. 언론은 무겁고 엄중한 책무를 버리고, 쉽고 얄팍한 길을 선택한 것이다. 


막나간 '세월호 참사' 언론보도 <경향신문>



- <경향신문>에서 발췌 - 


<경향신문>에서 잘 지적한 것처럼, 지난 18일 <MBN>은 민간 잠수부 홍가혜 씨와의 인터뷰를 방송했다. 당시 홍 씨는 "해경이 민간 잠수부들의 구조 작업을 막았고 대충 시간이나 때우라고 했다", "실제 잠수부가 배 안에서 사람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대화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등의 발언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홍 씨는 민간 잠수부가 아니었다. 경찰은 홍 씨에 대한 체포 영장이 발부했고, 지난 21일 경찰에 출두한 홍 씨는 "뜬 소문을 확인하지 않고 인터뷰에서 발언했다"고 시인했다. 또, 그는 "송사에 민간잠수사라고 말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것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간에 정확한 확인 없이 무작정 인터뷰를 시도한 <MBN> 측의 책임이 막중한 것은 틀림없다. 



- <경향신문>에서 발췌 - 


종편만 문제는 아니었다. 지난 18일, KBS1 뉴스특보는 "선내 엉켜 있는 시신 다수 확인"이라는 자막을 방송에 내보냈다. 정확한 팩트에 근거한 보도였을까? 아니었다. 해경은 KBS1의 보도에 대해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결국 KBS1의 오보였던 것이다. 오보라는 자체만으로도 심각한 문제지만, KBS1이 선택한 어휘(혹은 표현)을 보라. 무슨 생각으로 '엉켜 있는'이라는 표현을 선택한 것일까?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쩌면 지금의 언론을 '상식'으로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일지도 모르겠다.  



- <뉴스1>에서 발췌 -


"박근혜 대통령이 현장에 나가서 수습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였고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번 참사에 대한 의견이 아직 여론조사에 덜 반영됐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최병묵 조선뉴스프레스 편집장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 수많은 실종자가 여전히 바닷속에서 생사를 알 수 없는 지경에 놓여 있고, 사망자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TV조선>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을 언급했어야만 했을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이지 '상식'을 포기했단 말인가? 



한편, 뉴스를 전달하는 언론의 태도에도 심각한 문제점이 여러 번 노출됐다. 사건 직후, JTBC '뉴스특보'의 앵커는 구조된 학생에게 "한 명의 학생이 사망했다는 걸 혹시 알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비상식적인 진행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 30년 동안 갖가지 재난 보도를 진행하며 내가 배웠던 것은 재난보도일 수록 사실에 기반해 신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무엇보다 희생자와 피해자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오후 있었던 부적절한 인터뷰로 많은 분들이 노여워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어떤 변명과 해명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책임자이자 선임 앵커로서 제가 배운 것을 후배 앵커에게 전해주지 못한 것에 깊이 사과드립니다"


피해자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JTBC의 앵커의 몰지각한 진행에 대한 비난 여론은 손석희 앵커가 <뉴스9>에서 사죄의 뜻을 전하면서 조금 누그러졌다. 손석희 앵커가 배웠던 기본을 어째서 지금의 언론은 망각하고 있단 말인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자막 넣지 마시고요.


지난 17일,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의 한 학부모와의 인터뷰 도중 손석희 앵커는 제작진에게 자막을 빼줄 것을 요구했다. 바로 '사망자가 추가 발견 됐다'는 내용의 자막이었다. 인터뷰를 하고 있던 실종자 학부모가 방송 화면을 보고 있을 수도 있었기에 이를 배려한 것이었다. 물론 손석희 앵커의 '배려'가 돋보인 부분이었지만, 제작진의 '배려'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지 묻고 싶다. 



지난 20일, <SBS> 기자의 웃음도 많은 국민들을 불편하게 했다. 이 글에서 <SBS> 기자를 거칠게 탓할 생각은 없다. 사람인 이상 24시간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슬프고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순간적으로 웃음이 날 수도 있는 일이다. 이 부분은 방송 전의 개인적인 대화 내용이 그대로 전파를 타도록 한 담당자의 책임이 보다 클 수밖에 없다. 물론 방송에 앞서 보다 긴장하고 진중한 태도를 취했어야 할 기자의 잘못이 1차적인 문제였다는 점은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저 유명한 미드 <뉴스룸(The Newsroom)>은 미국의 가상 뉴스채널인 아틀란티스 케이블 뉴스(ACN)의 보도국을 배경으로 '언론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진짜 뉴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시청률의 '노예'가 된 앵커 윌과 '진짜 뉴스'를 만들고자 하는 프로듀서 맥켄지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시청률 떨어질까봐 전전긍긍하잖아.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지. 조만간 뉴스를 3D로 하겠다고 나설걸"

"여기가 무슨 비영리 극단인줄 알아? 광고로 먹고 사는 방송국이야. 당신도 잘 알잖아?"

"100만 명을 위한 엉터리 뉴스를 하느니 100명이 보더라도 좋은 뉴스를 할 거야."


<뉴스룸>은 미국 언론의 문제를 묘사하고 있지만, 이는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시청률과 광고에 지배당한 무기력한 언론 말이다. 맥켄지는 윌에게, 아니 그러한 현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언론의 자리를 되찾는 거지. 언론을 다시금 명예로운 직업으로 만드는 거야. 위대한 나라에 걸맞는 토론의 장을 탄생시킬 정보를 제공하는 저녁 뉴스를 만들고 예의를 알고, 존중하고 진정 중요한 본질로 되돌아가는 거, 천박함은 벗어던지고 가십과 관음증도 끝내고, 어리석은 대중일지언정 진실을 전달하는 거,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얘기 말고 그래서 언론이 우리 모두가 뭉칠 수 있는 구심점이 되는 거야"




지난 21일, JTBC '정관용 라이브'에서 정관용 앵커는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전달하던 도중 눈물을 흘렸다. "사고 6일째 입니다"를 말하던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토해냈다. 그 순간 패널들은 모두 침묵했고, 방송을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같은 날 손석희 앵커는 <뉴스9> 오프닝 멘트에서 "실종자 가족 대표와 전화연결을 하려 했으나 불가하게 됐다. 전화연결을 하려던 분은 김중렬 씨였으나 뉴스 시작 직전 김중렬 씨의 따님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비보를 접하게 됐다."고 설명하면서 울음을 겨우 삼키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카메라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고,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분명히 이들에게 뉴스는 기계적으로 멘트를 읊는 것이 아니었다. 


공영방송임을 망각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보도로 일관하는 언론, 시청률 지상주의에 빠진 언론,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언론. 현 시점의 대한민국 언론의 민낯은 '세월호 참사'를 통해 더욱 명확하게 국민 앞에 드러났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언론의 모습을 보면 더욱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그렇기에 정관용 앵커와 손석희 앵커의 존재는 더욱 빛난다. 이 두 사람의 모습에서 진짜 언론에 대한 실낱 같은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여전히 시청률과 광고가 장악하고 있는 언론, 그 사이코패스적 언론의 강고(强固)함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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