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約束)
① 장래의 일을 상대방과 미리 정하여 어기지 않을 것을 다짐함
② 미리 정하여 어기지 않고 함께 하기로 다짐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너희들, 손님이 찾아올 것이다!
영화 포스터에도 삽입되어 있는 문구처럼, 영화 <손님>은 '약속'에 관한 영화다. 상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약속이 깨졌을 때, 다시 말해 누군가가 서로에게 주어진 약속을 어겼을 때 어떤 일이 닥치는지를 매우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모티브는 우리기 익히 알고 있는 독일의 동화인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로부터 차용(借用)했다.
마을의 골칫거리인 쥐떼를 피리를 부는 악사가 나타나 해결한다는 기본적인 스토리 구조는 그대로지만, 시대적 배경(한국전쟁이 막 끝난1950년대)과 장소적 배경(대한민국의 고립된 어느 산골 마을)은 달라졌다. 그에 따라 다양한 요소들이 추가됐는데, 예를 들면 독재자의 성격이 강한 촌장의 존재라든지 전통 신앙의 역할 등이 그러하다.
또, 영화 속에는 다양한 '은유(隱喩)'가 숨겨져 있다. 감독인 김광태는 "다양한 해석은 좋지만, 너무 정치적으로만 흐르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말했지만, 결국 "영화에 대한 해석은 결국 수용자의 몫이다. 각자의 해석이 맞는 것이다. 손님을 본 관객들로부터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점은 역시나 기분 좋은 일"이라 답했다.
인터넷 등에서 얘기되고 있는 '노골적인' 해석은 차치하고라도 <손님>에는 의미심장하게 읽히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우선, 몇 가지 의문들이 스친다. 왜 굳이 시대적 배경을 한국전쟁 직후로 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살려고 죄 지은 사람들", "살려고 지은 죄는 용서 받는다"가 바로 그것이다.
살기 위해서 지은 죄는 정말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일까? 개인의 이익을 위해 '약속'을 저버리는 행위가 용납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그 상황이 극단적인 것이었다면 어떨까? 김광태 감독은 그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하기 위해 '한국전쟁 이후'라는 시간적 배경을 끌어온 것이다. 인간의 실존성에 대한 고민이 극도로 치닫는 전쟁 직후 말이다.
김광태 감독은 "한국전쟁 당시에는 살아야 하니까 옆에 뭐가 있는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야 사람들은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이 사람이 나에게 왜 이러지?' '원하는 게 있나?' '내 걸 빼앗아가지는 않을까?'라는, 전쟁통에 무너진 가치관의
변화를 겪었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집단의 광기와 이기주의가 힘을 얻은 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제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집단의 광기', 다시 말해 '집단이기주의'로 향한다. (이 즈음에서 영화 <이끼>가 오버랩되지만, 그 정도는 살짝 눈 감아주기로 하자.) 마을을 떠났던 촌장을 위시한 사람들이 다시 마을로 돌아오기 위해 저질렀던 짓과 쥐떼를 쫓은 은인인 악사와 그 아들을 어떤 식으로 해코지 하는지를 보면 실로 끔찍할 정도다. 그들은 다들 이렇게 항변할지 모른다. "살려고 지은 죄는 용서 받는다"
악사(류승룡)의 역할 못지 않게 매력적인 캐릭터가 바로 촌장(이성민)이다. 촌장은 마치 독재자를 연상케 할 정도로 강력한 카리스마로 마을을 통제한다. 이를 위해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마저 숨긴다. 마을을 유지하고, 사람들을 동요시키지 않는다는 미명 하에 말이다. 또, 사람들을 원활하게 통제하기 위해 가짜 무당 미숙(천우희)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을 우매(愚昧)함 속에 묶어두기 위함이다.
그리고 쥐떼라는 공포를 적절히 이용하는 점도 흥미롭다. 아들인 남수(이준)에게 쥐떼를 쫓는 임무를 맡기면서 헤게모니를 쥐고, 불만을 표시하는 이들을 압박하고 억누른다. "그럼 네가 해봐. 할 수 있어?"라는 식이다. 고도로 발달한 정치술을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악사의 등장으로 이러한 통치에 균열이 발생하자, 이번에는 악사를 '악'으로 만들어 집단으로부터 추방시켜버린다. 굉장히 익숙한 방식 아닌가?
<스타뉴스>의 김소연 기자는 "강한 것들이 연달아 나오니 충격은 둔해지고, 피로도 때문에 몰입도는 자연히 저하된다. 긴장을 풀기 위해 넣은 것으로 보이는 코미디도 간간히 등장하지만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내기엔 역부족"이라고 혹평하지만, 필자는 오히려 그 부분이 <손님>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긴장된 상태로 절정까지 몰아치는 그 힘이야말로 '집단이기주의'의 광기와 '약속'의 무거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무엇보다 <손님>을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은 영화를 보면서 머릿 속에 떠오른 질문들을 지금의 우리에게 던져보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과연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쓸쓸한 발걸음으로 영화관을 빠져나가는 것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만약 당신도 그러하다면, 영화 속의 이 대사를 떠올려보라. 그건 김광태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 확인해보자.
"셈은 셈"이라는 우룡의 대사가 촌장의 합리화를 깨는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촌장에게 우룡은 "셈이 덜 끝났다"고 말한다. 현실 사회에서도 권선징악이 실현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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