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무상급식과 누리과정, 누가 대한민국의 복지를 흔드는가?

너의길을가라 2014. 11. 1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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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과 누리과정(만 3~5세 아동 보육비 지원사업). 보편적 복지를 상징하는 두 가지 정책이 한꺼번에 삐걱대고 있다. 왜 이런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보편적 복지라는 뿌리는 같지만, 서로 다른 줄기에서 자라난 두 가지 정책은 별개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묶어 설명하기 어렵다. 무상급식이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공약으로 선거라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안착됐다면, 누리과정은 MB정부에서 시작돼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다는 점에서 보수진영이 키워온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 한국일보


하지만 각자가 내세운 정책에 대해 책임지는 태도는 판이하게 다르다. 공교롭게도 무상급식과 누리과정 정책에 대한 보수 진영의 무책임한 '말바꾸기'는 마치 판박이처럼 똑같다. "보육은 국가의 책임"이라고 외쳤던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가자마자 '그건 지자체와 교육청이 해야지~'라며 말바꾸기에 나섰고, "복지는 이제 시대정신"이라던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무상급식 예산을 빼버렸다.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진보 진영은 무상급식을 2010년 6 · 2 지방선거의 아젠다로 설정하며 선거에서 승리했다. '친환경 무상급식 시행'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은 '사회적 합의'를 얻었다고 판단하고 무상급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나갔고, 지자체들도 이에 호응해서 무상급식을 정착시키는 데 일조했다.


ⓒ 한겨레


선거 이후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203곳(88.6%)에서 2011년부터 초 ·중 · 고교 중 일부라도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기조는 지역 별로 편차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점차 확대되는 추세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전국 광역단체와 시·도 교육청은 무상급식 대상을 확대하는 계획을 수립하면서 확대된 예산안을 편성했다. 


정부의 취득세 감면 정책에 따라 지방세수의 축소가 불가피하고, 누리 과정 및 기초연금 확대 정책에 따라 살림살이가 빠듯해진 상황에서도 '무상급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보수 진영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지난 3일,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감사 없는 예산은 없다'는 원칙에 따라 내년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에 대해 경남도교육청은 "법 규정에도 없는 월권행위"라고 맞섰지만, 어차피 홍 지사에게 필요했던 것은 '감사'가 아니라 무상급식을 사회적 이슈로 만들면서 보수 진영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극하는 것이었다. 결국 경남도는 무상급식 보조금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내년도 예산안을 11일 도의회에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무상급식 보조금 예산 257억원을 예비비로 책정됐다.


한편,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무상급식 조례를 수용하고 지원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현재까지 도에서 해온 방식이 좋다고 본다. 그대로 따라갈 것"면서 무상급식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여기에 청와대도 가세했다. 지난 9일 안종범 수석은 "누리과정은 지자체와 교육청의 법적 의무사항이고, 무상급식은 일부 지자체 재량으로 하는 것이다. 의무가 아닌 무상급식에 많은 재원을 쏟아 붓고, 누리과정에 투입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누리과정은 지자체와 교육청의 법적 의무사항'이라고 못박으며 발을 쏙 빼버렸다. 과연 청와대의 이런 태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실제로 누리과정은 2011년 MB정부에서 시작된 정책이다. 당시 소득 하위 70%인 만 5세 이하의 아동에 대한 보육비를 지원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 이 정책은 2012년 3월부터 소득 구분 없이 '보편적' 지원으로 전환됐다.


보편적 복지라고 하면 경기를 잃으키는 새누리당 정권에서 이토록 대범한 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이는 '대선 플랜'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보육은 국가의 책임"이라는 전향적인 발언까지 서슴지 않으며 누리과정 확대(국가책임무상보육제도)하겠다고 공약했다. '약속은 지켜졌을까?'라는 순진한 질문을 던지기엔 이미 너무도 많은 반복된 경험을 했다.



정부는 지난 9월 새해 예산안을 발표했지만, 그 안에 누리과정 예산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결국 지자체들은 대통령이 싼 똥을 그대로 뒤집어 쓴 꼴이 되었다. 공약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의무가 아닌 무상급식에 많은 재원을 쏟아 붓고, 누리과정에 투입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라는 '유체이탈화법'을 구사하는 정부의 정신승리는 놀랍기만 하다.


정리를 해보자. 누리과정은 MB정부가 추진해왔던 정책이자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 무상급식은 진보 진영에서 꾸준히 이끌어왔던 정책이었고, 이는 각종 선거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얻은 바 있다. 이를 두고, 누리과정과 무상급식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하라는 식으로 논란을 가중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청소년 밥그릇이냐 유아 젖병이냐'는 논쟁은 그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은 싸움이다.



"무상급식은 서울시가 얼마든지 하겠다고 해서 안착했습니다. 문제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무상보육과 기초연금 예산을 내렸습니다. 내년에만 서울시가 추가 부담해야 하는 돈이 추가 되는 돈이 4257억 원입니다. 이렇게 되니까 서울시가 하고 싶은 수많은 일들을 못하게 되는 것이죠" (박원순 서울시장)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무상급식 예산을 0원으로 책정했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은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1466억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10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2015년 서울시 예산안 기자설명회에서 박 시장은 무상급식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의 공약인 기초노령연금(2181억 원)과 누리과정(6817억 원) 예산까지 서울시 예산으로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에 대해 불만도 토로했다. 박 대통령이 인수위원회 시절 시·도지사를 접견하는 자리에서 "보편적 복지는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게 맞다"고 발언했기 때문에 "대통령께서 저희들의 어려움을 정확히 파악하고 계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또, 박 시장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조세 비율이 (현행 8대 2에서) 5대 5는 돼야 지방정부의 경쟁력이 높아진다.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면서 "이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큰 결단을 해주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중·고등학생에 대한 무상급식은 헌법이 정한 국민의 권리이고, 국가의 의무로 수업료 면제, 급식 제공 등은 무상복지 개념과는 다르다. 교육에 대한 차등은 있을 수 없다. 수업료를 면제해 주듯 급식비도 면제해주는 것이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과제다. 장기적으로는 교재비, 더 나아가 필요하다면 기숙사 마련까지 국가가 해야 할 의무고, 국민의 권리라고 본다" (이시종 충북지사)


"건설 투자 등은 상당 예산이 밖으로 빠져나가지만 무상급식 예산은 도민들이 혜택을 받고 지역에서 소비가 이뤄지는 효율성 높은 예산이다. 내년 예산 4조 5,500억원 가운데 무상급식 확대를 포함한 예산 비중은 200억원대로 그렇게 높지 않다" (최문순 강원지사)


"무상급식은 충남의 교육복지 수준을 크게 높이고, 지역 농어업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올해 전면 무상급식 실시로 이 같은 효과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되며 도는 앞으로도 교육복지 증진을 위한 시책을 적극 발굴·추진할 계획" (안희정 충남지사)


5년여간 시행되면서 대한민국 사회에 뿌리를 내려가던 무상급식 정책이 보수 진영의 몽니에 의해 다시 뿌리채 흔들리는 위기에 놓였다. 최소한 절차적 민주주의는 확보되었다고 믿었던 확신이 환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지난 정권을 경험하면서 깨달았던 것처럼, 이미 사회적 합의를 마쳤다고 생각했던 복지 정책도 이처럼 약한 토양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씁쓸하기만 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무상급식'이 헌법이 정한 국민의 권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지자체장들이 있고, 그들이 흔들림 없이 무상급식을 지켜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한 번 시행된 복지는 되돌릴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이미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은 한국형 복지의 중요한 요소로 국민적 심판이 끝났다. 무상보육을 위해 무상급식을 정치적으로 희생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말처럼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은 서로 싸움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가야할 복지의 미래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가 책임있는 자세로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한다. 잇따른 말바꾸기와 뒷짐 지고 방관하는 태도로 국민적 혼란을 가중시키고, 급기야 '청소년 밥그릇이냐 유아 젖병이냐'의 세대별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매우 나쁘고 위험하다. 누가 대한민국의 복지를 흔드는가? 그 답이 가리키는 대상이 정부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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