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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혀버린 법인세 인상 논의, 전경련의 앵무새가 된 정부

너의길을가라 2015. 3. 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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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소동에 불과했을까? 2월 초만 해도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면서 발생한 연말정산 파동으로 민심은 들끓었다. 유리지갑의 월급쟁이들은 분노했고, 눈치 빠른 정치인들은 법인세 인상 등을 주장하며 보조를 맞춰나갔다. 성역처럼 여겨졌던 법인세를 인상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는 것일까? 약간의 기대는 빠르게 식어버린 유리지갑의 분노만큼이나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늘상 있는 일이지만, 이토록 급격히 사그라지는 변화에 대한 열망이 안타깝기만 하다. 거품처럼 사라진 사회적 분노가 야속하기만 하다. 뒷북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욱 떠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시 한번 여론을 환기할 수 있다면 더없이 반가운 일이리라. 자, 이제부터 법인세 인상을 둘러싼 진실에 대해 제대로 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 경향신문



우선, 명백한 팩트부터 정리해보도록 하자. 지난해(2014년) 세목별 세수 실적을 들여다보면, 월급쟁이가 내는 근로소득세는 증가했고, 법인세는 감소했다. 정확한 수치를 살펴보자. 소득세는 45조 8,000억 원에서 53조 3,000억 원으로 7조 5,000억 원(16.4%)이 늘었고, 법인세는 43조 900억 원에서 42조 7,000억 원으로  3,900억 원이 줄었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소득세는 2009년 이후 가파르게 오르고 있고, 법인세는 2012년 정점을 찍은 이후 감소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


또 하나의 충격적인 팩트가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원석 의원(정의당)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09~2013년 법인세 신고현황'을 토대로 기업들의 법인세 감면액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그 금액이 총 38조 7,327억 원에 달했다. 제대로 거둬들였다면 복지 정책 등에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었을 엄청나게 큰 금액이다.



물론 이 정도를 가지고 '충격적인'이라는 표현을 쓰진 않았다. 법인세 감면액을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눠서 좀더 세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이 12조 2,040억 원을 감면받은 데 반해 대기업은 26조 5,287억 원을 면제받았다. 특히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재벌)이 감면받은 액수는 13조 766억 원으로 25만 개에 달하는 중소기업 전체보다 큰 액수를 차지했다. 


정부가 기업들의 법인세를 감면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투자의 활성화다. 기업들이 앓는 소리를 하면 그 장단에 맞춰 법인세 인하라는 선물을 듬뿍 안기는 꼴이다. 분명 법인세 감세 규모는 매년 증가(2009년 5조 8,710억원, 2010년 6조1,694억원, 2011년 7조 7,357억원, 2012년 9조 5,977억원, 2013년 9조 3,589억원)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투자는 그에 맞춰 늘어났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기업들은 588조 9천 500억(2003년 기준)에 달하는 사내 유보금을 쌓아두기만 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는 손사래를 치고 나선다. 지난 10일, 허창수 전경련 회장(GS 회장)은 "최근 정치권 일각 등에서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는 흐름이 우려스럽다"면서 "재계 대표로 당연히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세계적으로 (기업들에게 부과하는 법인세 등의) 세금을 낮추는 것이 추세"라며 "기업에 대한 증세는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인세와 관련한 논의가 순간적으로 사라진 것과 허 회장의 발언은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을까? 엄청난 연관성을 지니고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세계적으로 (기업들에게 부과하는 법인세 등의) 세금을 낮추는 것이 추세'라는 허 회장의 말은 사실일까? 전경련 회장쯤 되는 사람이 허언(虛言)을 할 리는 없을 테고, 뭔가 자신이 있으니까 그토록 자신있게 말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OECD 주요 회원국의 법인세율 변화를 정리한 그래프를 살펴보도록 하자.


ⓒ 경향신문


2008년 금융위기 이후 OECE 회원 34개국의 법인세율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미국, 영국, 일본 등 16개(대한민국 제외)의 나라가 법인세율을 낮췄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11개 나라가 법인세를 동결했고, 칠레, 그리스, 멕시코 등 6개 나라는 오히려 법인세율을 높였다. 많은 나라들이 법인세를 낮춘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로 법인세를 낮추지 않은 나라도 17개 국이나 되는 만큼 이를 '추세'로 정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시 말해서 '세계적으로 (기업들에게 부과하는 법인세 등의) 세금을 낮추는 것이 추세'라는 허 회장의 말은 해석하기에 따라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한 셈이다. 부분의 진실과 부분의 거짓이 포함된 애매모호한 주장인 셈이다. 역시 경제인스럽다고 할까? 허 회장이 법인세 인상에 반대하는 이유는 지금의 법인세도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법인세는 고작 24.2%로 미국이나 일본, 프랑스, 독일 등에 비해 많이 낮은 수준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법인세가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다. 미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이 39%까지이고 독일 30%, 중국이 25% 정도이다. 우리나라는 25%에서 22%로 깎았다. 기업 활동을 장려한다면서 깎았지만 사실 기업 활동 장려에 법인세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불가리아, 파라과이 등 법인세가 10%짜리인 나라들도 있지만 기업들이 가서 투자를 안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허 회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앞서 살펴봤듯이 법인세 감면 등을 통해 정부가 열심히 D.C를 해준 결과 법인세 실효세율은 15.99%에 불과하다. 시가총액 상위 20개사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대부분 감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계는 연방(連方) 엄살을 피우고 있다. 그 우는 소리 한 번에 정부는 호들갑을 떨며 친기업적인 정책들을 쏟아낸다. 잘 짜여진 시트콤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법인세든 부가가치세든 백지에서 다 검토할 수 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법인세를 전혀 건드리지 않겠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중부담-중복지로 가기 위해 법인세를 좀 더 인상할 수도 있다" (나성린 정책위 수석부의장)


경제인의 언어만큼이나 정치인의 언어도 애매모호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친기업적인 새누리당에서 '법인세 인상'이 언급된 것만으로도 반가워해야 할까? 물론 이제 그마저도 들을 수 없게 됐다. 유리지갑이 털린 데 분노했던 월급쟁이들의 관심이 분산됐기 때문이다. 너무 쉽게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정부는 또 다시 서민들의 지갑을 쥐어짜는 것으로 세수 부족분을 채우려고 할 것이다. 법인세를 올리지 않는 이상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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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가 깎아줬던 3%의 법인세율을 되돌리든지, 최고세율 구간을 신설하는 방안 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도 아니라면 법인세 실효세율을 정상화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복지 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다만, 그에 앞서 법인세율 인상을 통해 세금을 더 낼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한 재벌 등 대기업들으로부터 조세정의를 이뤄내야만 한다. 


그 첫 번째 단추를 채우는 동시에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 인상, 주식양도차익 과세, 임대소득 등에 대한 과세 등을 통해 공평한 조세를 실현하고, 조세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선결조건들이 충족되면 국민들도 자신들에게 돌아올 고통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어쩌랴. 지난 26일 이완구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에서 "법인세 인상은 기업 투자위축 등 여러 문제가 있고 세계적으로 법인세율이 낮아지는 추세다"라는 전경련의 입장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옮기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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