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우리에겐 밉기만 한 아베, 일본 국민들에겐 어떤 정치인일까?

너의길을가라 2015. 2. 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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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라는 국가 이름만 들으면 다짜고짜 다량의 질펀한 욕설과 함께 극도의 흥분 상태에 돌입하는 사람들이 많다. 역사적 관계를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태풍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와 관련해서까지 저주에 가까운(혹은 그보다 심한) 폭언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만나면 정말이지 난감하다. '일본의 정치가'와 '일본'을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겨우 입밖으로 꺼내보지만, 이내 높은 데시벨의 고함에 파묻혀버리기 일쑤다.


"일본 사람들도 다 같은 '사람'이야. 직접 만나보면 생각이 바뀔 거야"라는 말에 '웬 헛소리냐'는 경멸에 가까운 눈빛을 보내던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어깨에 힘을 줄 수 있을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지난 14~15일 이틀동안 전국의 유권자 3,932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응답률 47%)를 실시했는데, 그 중 52%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발표할 전후(패전) 70주년 담화에 '식민지배와 침략', '통절한 반성',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라는 단어를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에 국가의 정책을 잘못 세우고 전쟁의 길을 걸어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트리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인하여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겼습니다. 나는 미래에는 이런 잘못이 없도록 의심할 수 없는 이 역사의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과의 뜻을 표합니다. 그리고 이 역사가 초래한 국내외의 모든 희생자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드립니다.


-무라야마 담화(전후 50주년의 종전기념일에 부쳐), 1995년 8월 15일-


일본 국민의 다수는 자신들의 조상들이 저질렀던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반성을 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아베 내각의 지지층 중에서도 50%가 위의 핵심 키워드를 담화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필요 없다'는 의견은 35%에 불과했다. 또, 전후 50주년을 맞아 일본의 식민 지배와 아시아인들에게 손해와 고통을 안긴 것을 반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무라야마 담화와 이를 계승한 고이즈미 담화에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응답도 62%나 됐다.


이러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는 "지난 전쟁에 대한 반성과 전후 평화국가로서 걸어온 행보, 앞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세계를 위해 어떤 공헌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지혜를 모아 작성할 것"이라는 기존의 입장만 반복했고, 집권당인 자민당은 "다시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은 헌법 개정을 당시(黨是·정당의 기본 방침)로 삼아 출발한 보수 정당의 긍지"라며 개헌을 창당 60주년의 주요 활동 목표로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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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 결과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긴 하지만, 아베 총리의 기존 행보에 별다른 영향을 주진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현재 아베 총리와 자민당을 거스를 수 있는 세력이 일본 내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12월 14일, 일본에서는 중의원 선거가 열렸다. 당시 자민당은 전체 475석 중 과반을 훌쩍 넘는 291석을 차지했다. 연립여당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의 의석(35석)까지 합치면 326석으로 전체 의석의 2/3 이상이다. 이는 개헌을 발의할 수 있는 의석(317석)을 넘어선 것이다.


이로써 아베 총리와 자민당은 2018년까지 장기집권 체제의 기반을 다졌다. 게다가 지난 2월 9일 일본 공영방송 NHK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자민당의 지지율은 41.2%로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10.3%)를 압도했고,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54%로 자민당의 지지율보다도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쯤되면 아베 총리의 정치적 입지가 얼마나 탄탄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큰 변수(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가 없는 한 아베는 2018년까지 일본을 이끌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아베 총리가 일본인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베 총리를 향한 욕과 비난은 끝도 없이 많지만, 정작 그가 어떤 인물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물론 알고 싶지조차 않다고 말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적인 대화는 불가능하다. 비판을 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비판을 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기본적인 정보들은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 짧은 글에서 아베 총리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심도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노다니엘이 쓴 『아베 신조의 일본』이라는 책에서 포인트가 될 만한 내용을 부분적으로 인용하는 것으로 갈무리하고자 한다. 우선, '정치가'로서 아베가 어떤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어떤 정치가가 되고자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시대가 바뀌었지만 나는 정치가를 이렇게 나누어 본다. '투쟁하는 정치가'와 '투쟁하지 않는 정치가'이다. '투쟁하는 정치가'란 우선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면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동하는 정치가이다. '투쟁하지 않는 정치가'란 '당신이 말하는 것이 맞아요.'라고 동조하면서 결코 비판의 화살에 맞서려고 하지 않는 정치가이다."


아베 신조가 쓴 『새로운 나라에』의 일부분이다.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서 아베 총리가 한 말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상당히 멋진 생각이라고 여긴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아베 총리를 필두로 한 자민당의 우경화가 염려되지만, 일본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아베 총리의 모습에서 '투쟁하는 정치가'를 떠올리지 않을까? 적어도 일본 국민들이 느끼기에 아베 총리는 국가(일본)와 (일본) 국민을 위해서라면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동하는 정치가로 여겨지지 않을까?



한편, 노다니엘은 일본 국민들이 아베 총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의 원천을 '부레나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아베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그를 칭송하며 잘 쓰는 수식어로서 '부레나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인데, '부레나이'는 "우리말로 뚝심과 강단이 있어 웬만한 일에 입장이나 의견을 바꾸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뚝심과 강단? 노다니엘의 설명을 조금 더 들어보자. "내각책임제에서 수상이 수시로 바뀌고 정치가들이 인기에 영합하거나 외국(특히 한국, 중국,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정책을 바꾸는 것에 염증을 느낀 일본인들은 아베의 강경하고도 일관된 태도에서 신뢰와 의존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아베노믹스로 대표되는 경제 정책에서부터 주변국과의 역사 문제 · 영토 문제 등에서 아베 총리의 '부레나이'가 안정감을 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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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한 보수주의를 일본의 보수층 전반에서는 '진정보수(眞正保守)'라고 한다. '진실되고 바른 보수'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진정한 보수인가? 매우 추상적인 듯한 이 표현에 관하여 일본의 (한국에서는 우익이라고 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들이대는 척도가 있다. 진정한 보수주의자인가를 가리기 위하여 '밟고 지나서 통과해야 하는 후미에'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이 감히 밟지 못하고 존중하는 그림은 무엇인가? 바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이다. 야스쿠니 참배를 주저하는 사람이라면 일본정치에서 진정한 보수가 아닌 것이다.  -노다니엘, 『아베 신조의 일본』-


민주당의 짧은 집권이 끝나고, 다시 자민당의 독주 체제가 성립된 상황에서 아베 총리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신뢰는 탄탄하기만 하다. '보통 국가'로의 전환을 위한 아베의 개헌 드라이브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물론 많은 일본 국민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반성하고, 무라야마 담화를 의미있게 받아들인다고 해도 '자민당'에 대한 지지를 접을 것 같진 않아 보인다.


설령, 아베 총리가 일본 국민들로부터 신망을 잃는다고 하더라도 자민당 내에서 또 다른 총리가 나올 것이고, 그는 '진정보수(眞正保守)'를 추구하는 인물이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자신이 진정한 보수주의자임을 증명하는 척도로 삼을 것이고, 개헌의 바통을 고스란히 이어받게 될 것이다. 지금의 일본에선 오래된 (정신적)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그 중심에 아베가 있고, 그의 정치적 입지는 그 어느 때보다 굳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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