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간통죄 폐지를 바라보는 우리 안의 보수적 시각

너의길을가라 2015. 2. 2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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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罪 사라지던 날, 나이트클럽에선 '축배' <조선일보>

한 언론에서는 '간통죄가 폐지 됐다'는 뉴스를 다루면서 '나이트클럽의 풍경은 이러했다'는 기사를 썼다. 한심한 노릇이지만, 이것이 바로 간통죄 폐지를 바라보는 보수적 시각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소위 '진보적인 네티즌'들로 가득한 포털 사이트 다음(DAUM)에 올라온 간통죄 폐지 기사에도 '우려'를 넘어 위헌 판결을 질타하는 댓글들로 가득하다. 


기본적으로 '간통죄 폐지는 불륜을 조장한다'는 보수적 시각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고, 사회적 변화를 두려워하는 보수적 습성에서 일치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서로 척(隻)을 치고 으르렁거리고 있지만, 사회 · 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이 둘은 '같은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심(?)이 보다 뚜렷해지는 순간이었다.


ⓒ 한국경제


헌법재판소는 지난 26일 재판관 7(위헌) : 2(합헌) 의견으로 간통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간통죄는 처벌 규정이 제정된 지 6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어느 정도 예상이 됐던 결과였다. 지난 2008년 10월,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이 5명으로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4명)보다 많았지만, 위헌 결정을 내리기 위한 정족수 6명에 미달해 합헌을 유지했던 만큼 이번에는 위헌 결정이 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두 번의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구성이 이전보다 보수적으로 바뀌었다는 점 때문에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그러나 간통죄를 바라보는 사회적 관점이 많이 달라졌던 만큼 보수적이라 규정됐던 재판관들로서도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순 없었던 모양이다. 그만큼 세상이 많이 달라졌고, 흐름을 되돌리기엔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


ⓒ 동아일보


지금부터는 간통죄 위헌 결정의 논리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이 부분은 많은 기사를 통해 거듭해서 언급이 되었던 부분인 만큼 살짝 짚고 넘어가는 정도로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된다. 간통죄 위헌 의견의 뼈대를 구성하고 있는 논리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간통죄의 본질적 위헌성'이고, 두 번째는 '간통죄의 실효성 등 사회인식의 변화'이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이진성 · 김창종 · 서기석 · 조용호 재판관은 "사회구조 및 결혼과 성에 관한 국민의 의식이 변화되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다 중시하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간통행위에 대해 국가가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해 이제 더 이상 국민 인식이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는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에 속하는 성(性)에 개입하는 것, 다시 말해서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 적정한가에 대한 의문에 대해 명쾌한 답을 제시한 것이다. '간통죄'라는 명목 하에 국가가 시민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은 자유주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에겐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한마디로 국가의 과도한 개입인 것이다.


논리적으로 볼 때, 공권력의 무분별한 팽창과 무절제한 개입을 우려하는 다수의 시민들은 국가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터치하는 간통죄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취해야 옳다. 하지만 성적으로 매우 폐쇄적인 사회인 대한민국에선 오히려 국가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형법 제241조(간통)
① 배우자있는 자가 간통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그와 상간한 자도 같다.
② 전항의 죄는 배우자의 고소가 있어야 논한다. 단, 배우자가 간통을 종용 또는 유서한 때에는 고소할 수 없다.
[단순위헌, 2009헌바17, 2015.2.26. 형법(1953. 9. 18. 법률 제293호로 제정된 것) 제241조는 헌법에 위반된다.]


형사소송법 제229조(배우자의 고소)

① 「형법」 제241조의 경우에는 혼인이 해소되거나 이혼소송을 제기한 후가 아니면 고소할 수 없다.

② 전항의 경우에 다시 혼인을 하거나 이혼소송을 취하한 때에는 고소는 취소된 것으로 간주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간통죄가 사라지면 불륜이 조장된다는 것이다. 형법적으로 처벌한 근거가 사라졌기 때문에 '족쇄'가 풀렸다고 생각하고, 마음껏 바람을 피우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다. 간통죄가 폐지되자마자 나이트클럽을 취재하러 나선 <조선일보>의 생각과 다를 바가 없다. 사람들은 과연 '간통죄'가 있기 때문에 바람을 피우지 않고 지냈던 것일까? 그렇다면 간통죄가 폐지됐기 때문에 '떳떳하게' 나는 바람을 피운다고 말하고 다닐까?


생각을 해보면, '간통'을 막고 있었던 것은 형법에 규정된 간통죄라는 법조항이 아니라 도덕과 윤리가 아니었을까? '간통은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시선이 아니었을까? 간통죄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과는 달리 실제로 간통죄가 간통 억제에 얼마나 효율적이었는지는 의문스럽다. 위헌 의견을 낸 5명의 재판관이 "간통행위의 처벌비율, 사회적 비난 정도에 비추어 형사정책상 예방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게 됐다"고 밝힌 것처럼 말이다.


- SBS 드라마 '결혼의 여신'의 한 장면 -


간통죄는 사실상 "배우자의 이혼수단으로 활용되거나 일시 탈선한 가정주부 등을 공갈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는 형사소송법 제229조(배우자의 고소)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형소법 제229조 제1항은 '「형법」 제241조의 경우에는 혼인이 해소되거나 이혼소송을 제기한 후가 아니면 고소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간통죄로 고소를 하기 위해서는 혼인이 해소(이혼)되거나 이혼소송을 제기해야만 한다. 간통죄가 있음으로써 가정이 지켜진다는 논리는 애초부터 성립이 불가능한 셈이다.


본질적으로 위헌적이고 실효성도 없는 간통죄를 존속시키는 것은 시대적 흐름상 무의미한 일이다. 이진성 재판관의 말처럼 "실질적 위하력(威嚇力)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간통죄를 폐지하는 한편, 간통행위로 인한 가족의 해체 사태에서 손해배상, 재산분할청구, 자녀양육, 면접 등에 관한 재판실무관행을 개선하고 배우자와 자녀를 위해 필요한 제도를 새로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해보인다. 우리는 변화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 한겨레


간통이 형법의 영역에서 빠지게 됨에 따라서 앞으로는 간통을 바라보는 시각이 '혼인 파탄의 과정이나 결과'로 바뀌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부부라는 계약관계에 있어서 불륜을 저지르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지만, 그 불륜이 왜 발생했는지를 따져보는 것도 충분히 필요한 일이다. 단순히 육체적 유혹을 못 이겨서 저지르는 것도 있지만, 오히려 이미 부부 관계가 악화된 이후 벌어지는 불륜의 경우가 훨씬 많다. 이에 대한 책임은 일방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부에게 공히 있는 것 아니겠는가?


간통죄 폐지로 인한 일정한 사회적 혼란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헌법에도 반(反)하고, 실효성마저도 없는 간통죄를 폐지하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고,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면 굳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더욱 존중받고, 국가가 개인의 삶에 개입할 수 있는 선을 더욱 분명히 그었다는 점에서 간통죄 위헌 결정은 반길 만한 일이다.


앞으로 대한민국 사회가 고민해야 할 내용은 혼인 관계에 대한 보다 성숙한 사고를 고양해나가는 동시에 간통행위로 인한 가족 해체에서 발생하는 손해배상, 재산분할청구, 자녀양육 등의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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