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어린이집 CCTV 설치를 둘러싼 논란, <무한도전>이 들려준 이야기는?

너의길을가라 2015. 3. 8.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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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인천 송도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폭행 사건은 전국민을 충격의 도가니로 빠뜨렸다. 학부모들은 '혹시 내 아이도?'라는 불안감에 휩싸였고, 의혹의 눈초리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던 교사들도 불신과 오해로 인해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잃는 등 큰 상처를 입었다. 신뢰로 묶여 있어야 할 학부모와 보육교사의 관계가 불편하고 껄끄러운 사이로 변해갔다. 누구에게도 득이 안 되는 상황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폭행이나 학대를 저지르는 보육교사는 극히 일부일 것이다. 대다수의, 거의 압도적인 수의 보육교사들은 적은 임금과 고된 업무 속에서도 아이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보듬는다. 하지만 간헐적으로 터져나오는 '만연한 어린이집 학대 실태'라는 타이틀의 사건들은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키고 만다. 우리 주위에서 실제로 어린이집 학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나의 아이가 그로부터 100% 안전하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논의는 자연스럽게 '어린이집 CCTV 의무화'로 나아가게 된다.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보육교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녹화된 CCTV를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안심이 될 것이다. 또,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CCTV를 통해 증거 자료를 확보하는 등 '따질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닐 뿐더러 실효성도 없다는 주장이다.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폭행 · 학대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폭행을 할 보육교사라면 카메라가 없는 곳을 찾아서 아이들을 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근본적인 주장은 아동보육현장이 보육교사의 사생활 공간이므로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일, 정치권이 어린이집 CCTV 의무화법(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부결시키면서 내세운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비용'이겠지만.




어린이집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기 위한 움직임은 지난 2005년부터 시작됐다. 대구 어린이집 원장이 8,9세 자매를 상습적으로 폭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련법안이 발의됐지만 상임위원회였던 여성가족위에서 부결됐다.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CCTV 설치 의무화는 매번 쟁점화 됐지만 결국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좌절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물론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CCTV 설치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지적과 과도한 사생활 침해 우려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한민련)의 존재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논의를 복잡하게 할 수 있지만, 불편한 부분일수록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KBS의 단독 기사(무산된 'CCTV법'..로비 단초가 된 2개 문건 입수)에는 한민련 측의 '조직적 로비' 가능성이 제기되어 있다. 의견을 제기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정도가 지나쳤다는 것이다.



민간어린이집연회회 장진환 회장은 "수시로 국회에 가서 의견을 개진한 것은 사실"이라고 대답했지만, "입법을 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린이집에 대해서만 유독 과잉규제를 답은 법안의 내용을 바로잡고 보육료 지원액 현실화 등을 통해 바람직한 보육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조직적 로비는 아니라고 못박았다. 


"선거 때면 어린이집 원장들이 조직력을 앞세워 여론을 주도하기 때문에 그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한 중진 의원의 변명으로 미뤄보건대, 국회가 이익단체의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또, 선거 국면에서 가공할 위력을 자랑하는 한민련이 어린이집 CCTV 의무화법 부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도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다.




이익단체 이야기가 나오는 바람에 CCTV 설치 의무화가 마치 선(善)인 것처럼 여겨질 수 있겠지만, 이 문제는 차분하게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 CCTV가 최소한의 물리적 · 심리적 안전장치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한지는 다시 생각해야 할 문제다. 다시 말해서 CCTV만 설치한다고 해서 모두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들에 대해 따져봐야 한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대다수의 보육교사들은 사랑과 정성으로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다. 이들의 사기를 꺾고, 직업적 자긍심을 뭉개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이로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보육교사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보육의 질이 보육교사의 질을 넘지 못하듯, 어린이집 원장의 질은 보육교사의 질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심선혜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 의장의 말을 되새결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보육 교사의 질을 향상시키는 제도적 변화도 병행되어야 한다. 보육교사 양성 과정이 너무 쉽게 이뤄져 있다는 비판은 수용되어야 하며 부실한 재교육도 바꿔야 할 부분이다. 이처럼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문제를 'CCTV를 설치해서 모조리 들여다보자'는 식으로 풀어나가는 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차라리 CCTV를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을 보육 교사의 열악환 환경을 개선하는 데 할애한다면 현장에서는 훨씬 더 큰 변화가 생겨날 것이다.



지난 7일 MBC 예능 <무한도전>에서는 '무도 어린이집' 특집이 방송됐는데, 멤버들이 일일교사로 변신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번 특집은 어린이집 폭행 · 학대 사건들로 인해 큰 상처를 받은 학부모와 아이들, 그리고 보육교사들을 위로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일부의 잘못으로 전체가 상처 받지 않기를'이라는 자막은 <무한도전>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함축적으로 보여줬다.


방송을 지켜본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아이들과 하루종일 있으면서, 우리 아이도 이렇게 보내는구나 알게 되(유재석)"는 한편 "선생님 아무나 못한다(정형돈)", "선생님들을 존경한다(하하)"는 생각을 하면서 보육교사들의 노고를 이해하게 됐을 것이다. 보육 교사들의 입장에서는 직업적 자긍심을 회복하는 동시에 더욱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결국 핵심은 이해와 신뢰이다. 학부모와 보육 교사 간의 열린 소통을 통해 아이들을 위한 마음들이 전달된다면 굳이 CCTV를 통해 감시해야 마음이 든든한 상황까지 치닫진 않을 것이다. 서로에 대한 작은 관심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더 좋은 세상,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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