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또 다시 중국동포? 박춘봉 사건이 대한민국 사회에 던진 숙제

너의길을가라 2014. 12.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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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수원시 팔달산 등산로에서 검정색 비닐봉지에 담긴 토막시신이 등산객에 의해 발견됐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을 통해 토막시신이 팔, 다리, 머리, 일부 장기가 없는 (혈액형) A형 여성의 몸통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사건의 단서와 나머지 시신을 찾기 위해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지만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다.



답답하던 상황이 급반전 된 건, 경찰이 공개수사로 전환(8일)한 시점부터였다. 시민들의 제보가 쏟아졌고, 월세방을 가계약해 놓고 나타나지 않은 박 씨가 유력한 용의자 선상에 올랐다. 박 씨가 며칠 동안 머물렀다는 월세방에서 사람의 혈흔이 발견됐고, 이는 처음 발견된 토막시산과 일치했다. 처음에 박 씨는 "다투다 홧김에 밀쳤는데 숨졌다"면서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했지만, 국과수 부검 결과 피해자가 목이 졸려 숨졌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결국 박 씨는 계획된 범행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피해자 김씨가 노모를 집으로 데려오자 박씨와 불화를 겪었고 이과정에서 김씨가 가출해 언니 집으로 간 뒤 더이상 만나주지 않자 김씨를 살해했다"며 최종 수삭 결과를 발표했고, 19일 피의자 박춘봉의 신병과 사건기록은 검찰로 모두 송치됐다. 사건은 일단락 됐지만, 만에 하나라도 의문이 남아 있다면 이를 깔끔하게 해결하고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 출연한 표창원 소장(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은 "추가범행 여부, 공범여부, 범행동기 등 의문이 남"는다면서 "피의자 박 씨가 3-4백 미터 떨어진 두 웰세 방 사이에 시신을 옮겨가며 훼손했다는 점, 과연 혼자 힘으로 가능한 일인가? 팔달산에 시신 일부를 유기할 때 50cm 깊이로 파묻은 점, 과연 혼자 할 수 있었을까?"라는 물음을 던졌다.


표 소장은 그 질문들에 대해 깔끔하게 답변을 내놓았다. 우선, 추가범행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추가범행에 대한 단서는 없"다면서 "범행 수법이 잔혹하기는 하지만 능숙하거나 숙련된 행태는 아니라서 추가범행의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다고 대답했다. 다음으로 공범 여부에 대해서는 "금전 등 이익이 동반되지 않는 범죄, 평소 가까이 지내는 조력자가 없는 외톨이 박 씨의 특성 등을 감안하면 공범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답했다.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미리 휴가를 내고 작정해서 피해자를 찾아간 점"과 "시신에서 목 졸린 흔적이 확인되었다는 점, 이틀에 걸쳐 시신을 훼손하고 시신 훼손만을 위해 별도로 월세 방을 얻은 점 등을 고려하면, 살인의 고의와 계획성을 추정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계획적 살인의 가능성이 높아 보이고, 이것이 재판 과정에서 인정된다면 박춘봉의 형량은 대폭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여기까지가 사건 자체에 대한 설명이다. 이미 기사를 통해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내용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한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박춘봉 사건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고,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들이 있다. 첫 번째는 어째서 박춘봉의 이름과 얼굴, 다시 말해서 피의자의 신상이 일찌감치 공개된 것일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2[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

①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갖춘 특정강력범죄사건의 피의자의 얼굴, 성명 및 나이 등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1.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일 것

2.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3.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것

4. 피의자가 「청소년 보호법」 제2조제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아니할 것

② 제1항에 따라 공개를 할 때에는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하고 이를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물론 박춘봉은 매우 끔찍한 사건의 범인이고, 범행을 시인했기 때문에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 2[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에 따라 신상 공개가 가능하다. 경찰은 박춘봉이 4가지 요건을 모두 갖췄다고 판단하고, 그의 얼굴과 이름을 비롯한 신상을 모두 공개했다. 이는 분명 흔한 일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와 관련한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연일 터지고 있는 터라 여론을 환기할 필요가 있었고, 박춘봉의 신상공개는 그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렇게 볼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경찰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다. 그만큼 박춘봉의 범행수법은 경악스러울 만큼 잔인했다. 또, 범행을 시인한 상황이기 때문에 신상 공개 판단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는 아직 피의자 신분이고, 아무리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인권은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가치라는 점에서 아쉬운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어찌됐든 간에 언론에 제대로 '떡밥'을 던져준 꼴이 된 것은 사실 아닌가?



그 다음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은 박춘봉 사건으로 인해 중국동포 사회가 겪을 고통과 중국동포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차가운 시선이 낳을 또 다른 비극에 대한 우려다. 오원춘에 이어 또 다시 중국동포(조선족)의 이름 박춘봉이 온 국민의 뇌리 속에 각인됐다. 이로써 중국동포에 대한 경계심은 더욱 높아졌고, 74만 중국동포 사회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술렁이고 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좋을 일이 있겠어요. 2년 전 오원춘 사건 때도 안 좋았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느라 뉴스를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그건 그 사람의 일"

"나만 옳게 살면 되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오."

"오원춘 사건 때도 우리 동포들이 얼마나 어려움을 많이 겪었느냐. 동포 얼굴에 X칠을 한 그런 놈은 아예 없애 버려야 한다"

"현실적으로 불법체류 동포를 중심으로 사고가 많이 난다. 중국에서도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쳐온 사람들은 내보내야지 한국 내 동포사회가 건전해진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중국동포들은 다양한 생각들을 표출했다. 가급적 말을 아끼는 듯한 태도를 취했지만, 전전긍긍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중국동포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냉담해질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중국동포들은 더욱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삶이 부정적인 여론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는 것이다.


김해성 지구촌사랑나둠 대표는 "가슴 아픈 일이 벌어졌지만 특정 범죄자 하나 때문에 대다수 중국동포, 나아가 180만 이주민들을 혐오하고 나아가 추방하자는 말까지 나오니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은 이미 여기 와 있는 외국인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여론을 환기시키고자 애를 썼다.


ⓒ 한국경제


표창원 소장은 호주에서 발생했던 이란계 이슬람 이민자의 인질테러 사건을 예로 들면서 호주 사회가 이들을 박해하지 않고 보호하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일부 강력범죄자 때문에 전체 이민자나 외국인에 대해 반감이나 혐오, 경계심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박춘봉 사건은 우리에게 개인과 그 개인이 속한 집단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가 박춘봉 사건을 통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중국동포 전체를 백안시(白眼視)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동포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또, 출입국 관리와 불법 체류자 관리에 만전을 기해 박춘봉처럼 위조 여권으로 국내에 들어올 수 있는 루트를 원천 봉쇄해야 한다. 중국동포를 비롯한 외국인들을 계속적으로 관리(라는 표현이 달갑지 않겠지만)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제2의 박춘봉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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