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소년이 있었다. 심심풀이로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을 쳐 사람들을 잔뜩 놀라게 했다. 마을은 매번 커다란 소동에 빠졌다. 하지만 거짓말이 누적되자 사람들은 더 이상 소년의 말을 믿지 않게 됐다. 신뢰도가 떨어진 셈이다. 당연한 현상이다. 거짓말쟁이의 말을 누가 믿겠는가. 그리고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양들은 희생당하고 만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 장면'을 발견할 수 없었다. 1라운드가 지나고, 2라운드도 지났다. 위기 비스무리한 만한 상황은 아예 없었다. 분명 '그 장면'이 있으니 기대하라고 예고편에 나와 있었는데 말이다. 무난하게 방송이 끝날 무렵, '아, 속았다!' 싶었다. 씁쓸한 마음이 제법 크게 생겼다. 지난 19일 방송된 JTBC <히든싱어5> 양희은 편 이야기다. 짜증스러웠다.
지난 9회(8월 12일) 방송의 예고편에는 양희은이 갑자기 무대를 떠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이를 확인한 제작진은 화들짝 놀라 "선생님!"이라 외치며 그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무사히 방송을 마칠 수 있을까?'라는 자막을 달아두었다. 아무리 봐도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던 것처럼 구성된 예고였고, 사실상 원조가수의 탈락까지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정작 10회 방송의 분위기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양희은은 1라운드('아침이슬')에서 0표를 받으며 가뿐히 통과했다. 그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았을 만큼 독보적인 음색이었다. 2라운드('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3라운드('하얀 목련')에서도 각각 2등, 1등을 기록했다. 최종 라운드('슬픔 이젠 안녕')에서는 88표로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그만큼 쉬워도 너무 쉬웠다.
무엇보다 예고편에 등장했던 양희은의 무대 이탈은 본방송에서 아예 나오지 않았다. 시청자들을 낚기 위한 <히든싱어5> 제작진의 노림수였던 셈이다. 물론 <히든싱어>를 오랫동안 시청해 왔던 사람들은 예고편의 그 장면이 생각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닐 것이라 짐작했을 것이다. 그동안 <히든싱어>가 '낚시성 예고편'을 통해 시청자들을 놀려 먹은 전력이 많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르다. 본방송의 일부를 편집해 자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방송과는 무관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 것처럼 꾸몄으니 말이다. 양희은은 무대를 벗어나지 않았고, 무대를 벗어날 만한 상황조차 벌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그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작진에게 묻고 싶을 정도다. 예고편을 위해 굳이 만들어 찍은 장면이었는지 말이다.
방송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히든싱어5> 양희은 편은 그저 감동의 연속이었다. 물론 워낙 독보적인 음색을 보유한 터라 양희은을 위협할 만한 모창 능력자는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원조 가수가 누구인지 추리하고 맞히는 쫄깃쫄깃한 재미는 없었다. 그럼에도 한국 가요계의 역사이자 산증인인 데뷔 48년차 양희은의 노래를 육성으로 직접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올랐다.
게다가 양희은이 들려주는 노래에 대한 사연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 가운데 하나인 '아침이슬'이 겪어야 했던 우여곡절과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그 노래가 자신의 운명이 될 줄 몰랐다는 고백에 객석은 숙연해졌다. 또, 난소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시절에 편지 한 통을 받고 써내려간 '하얀 목련'의 스토리는 듣는 이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불필요한 낚시가 없더라도(이전처럼 적당히만 했더라도) 충분했을 방송이었다. 가만히 뒀더라도 레전드로 남았을 방송에 오히려 흠집을 남길 꼴이 됐다. 불필요한 잡음이 생겨버렸으니 말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 통하는 모양이다. <히든싱어5> 10회 시청률은 7.537%(유료플랫폼 전국 기준)로 지난 9회(5.372%)에 비해 급등했다.
물론 이 시청률이 오로지 예고편 때문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럼에도 일단 작전이 통했으니 제작진은 양치기 소년마냥 남들을 속였다는 생각에 기뻐하고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철없는 일이다. 이런 식이 반복된다면 <히든싱어5>에 대한 신뢰도는 점차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부디 <히든싱어5>가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지금까지 쌓아올린 시청자들과의 끈끈한 관계를 상실하지 않길 바란다.
'TV + 연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끊임없이 '사건'을 만들어야 하는 관찰 예능, 시청자들은 지쳐 간다 (0) | 2018.08.27 |
---|---|
구렁이 담 넘어가는<아는 형님>, 시청률로 철퇴를 내릴 수 있을까? (0) | 2018.08.23 |
[버락킴의 맛집] 4. 코엑스몰 즉석떡볶이 '사이드쇼'를 다녀오다 (0) | 2018.08.19 |
김의성과 문성근이 악역을 맡으면 곤란한 이유는? (0) | 2018.08.17 |
지극히 교훈적인 <아는 와이프>가 욕을 먹는 이유는? (0) | 2018.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