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家族)'이라는 말처럼 이중적(二重的)인 느낌으로 와닿는 관계가 또 있을까? 한없이 따스하고 무조건적인 위로가 되는 말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 한가운데 놓인 무거운 돌처럼 숨쉬기조차 어려울 만큼 먹먹한 말. 너무도 낯선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나의 첫 번째 관계(關係). 그래서 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아픔으로 맺히기도 하는 관계. 그것이 바로 가족이다.
때로는 가장 은밀한 관계일 수 있고, 더욱 숨기고 싶은 이야기일 수 있다. '(그래도) 가족이니까'라는 말은 '내부'에서건 '외부'에서건 당사자들에겐 커다란 폭력이 될 수 있다. 무심결에 저지르고 마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우리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날것 그대로의 사생활, 그 비밀을 타인들은 절대적으로 지켜줘야만 한다. 그것이 '가족'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의 가장 기본적인 예의이기 때문이다.
정작 욕지기가 나는 상황은 '외부'든 '내부'든 간에 비밀을 까발리는 방식을 통해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하는 그릇된 욕망이 발현될 때이다. 가령, 이런 경우는 어떠한가? 지난 21일 외동으로 알려졌던 배우 김수현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이복동생'이 나타났다. 이복동생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배 다른 동생', 즉 아버지는 같고 어머니는 다른 동생을 말하지 않던가? 그 단어만으로도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인지, 당사자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과 슬픔을 겪었을지 잘 알 수 있다.
김주나 측은 SBS 드라마 <상류사회>의 OST '너없이 어떻게' 발매와 함께 자신이 배우 김수현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다짜고짜 공개했다. '김수현에게 동생이 있었나?' 그동안 김수현이 자신을 '외동'이라고 밝혀왔던 만큼, 김수현의 동생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엄청난 주목을 끌게 됐다. 22일 김주나 측은 한 언론사에 "김수현의 이복동생이 맞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김수현의 소속사 키이스트 측도 "김주나가 김수현의 이복동생인 것이 맞다. 하지만 따로 왕래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김수현의 이복동생'이라는 타이틀은 김주나에게 엄청난 인지도를 가져다줬다. 김주나로서는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본 것이다. 물론 '홍보 의사가 없었다'고 밝혔지만, 과연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김주나뿐만 아닐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이득을 챙긴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문제는 원치 않게 개인사가 밝혀지면서 김수현이 입었을 피해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김수현의 동의가 있었는지 의문스럽다.
아무리 이복동생이라고 해도 당사자 간의 합의 없이 이 사실을 온 천하에 알린다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김주나와 관련된 보도가 나간 후에 키이스트 관계자가 "기사를 보고 알았다. 우리 입장에서 뭐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미뤄보자면, 김수현 측은 이와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엑스포츠>의 김경민 기자는 "물론, 김주나의 이 같은 행동을 욕할 수는 없다. 그만한 절박함이 있었을 수도 있다. 김수현과 김주나 사이에 또 다른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필 가수로 첫 발걸음을 옮기는 시점에 이 같은 사실을 알린 점은 이복오빠를 이용한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는 없다. '오빠' 김수현과 그의 어머니에 대한 배려가 아쉬운 부분"이라는 선에서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필자는 이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벌어지는 가장 잔혹한 폭력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혹은 용납될 수 있는 '그만한 절박함'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이제 언론들은 '김수현의 가족사'를 파고들기 시작할 게 뻔하다. 한 개인의 사생활이 유린되는 건 시간문제다. 이건 연예인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끼어들어 누군가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어차피 '오버'일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이 사건을 통해 '가족'이라는 관계의 의미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에 대해 고민을 하는 성찰의 계기로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을 상처입혔는지 말이다. '가족'은 용서의 언어이지만, 그것은 '유대'가 존재할 때 가능한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이제 그 말은 바뀔 때가 됐다. '부대낌 없는 피는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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