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관계도가 급하게 수정됐다. '애정'을 뜻하는 빨간색이 몽땅 사라졌다. 논란의 남녀 주인공 박동훈(이선균)과 이지안(아이유/이지은)의 것만 지우기 민망했을까. 도준영(김영민)과 강윤희(이지아), 박기훈(송새벽)과 최유라(나라)의 관계에서도 빨간색이 사라졌다. 그래서 놀랍게도 tvN <나의 아저씨>에는 (적어도 관계도에서 만큼은) 애정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들은 도대체 무슨 관계란 말인가.
<나의 아저씨> 제작진은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설정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라고 해명했다.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솔직하게 들리진 않는다. 정확히는 '사랑은 나누는 설정이었는데 이젠 아닙니다'라고 해명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애시당초 그럴 의도가 추호도 없었다면, 인물 관계도에서 그들 사이를 빨간색으로 엮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뒤늦게 없앨 까닭은 또 무엇인가.
관형격 조사 '의'에는 수많은 의미가 있지만, '나의 아저씨'라는 제목에서 '의'가 '선행하는 체언이 사물에 대한 소유의 주체임을 나타내는' 뜻으로 쓰였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쉽게 말하면 '아저씨는 내 거야'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애정 관계, 즉 멜로가 잔뜩 깔려 있다. 차라리 제목이 '나와 아저씨'였다면 '서로의 삶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라는 제작진의 해명이 설득력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동생아, 난 이 세상에서 네가 제일 부럽다. 대기업 부장, 아침에 일어나 갈 데가 있는 놈. 그런데 그곳엔 자길 사모하는 어린 여직원도 있고. 내가 다 눈물나게 설레서 아침부터 눈이 일찍 떠졌다."
첫째 형 상훈(박호산)을 보라. 그는 끊임없이 '영포티(Young Forty)'의 판타지를 상기시킨다. 사회적 지위, 경제적 안정을 손에 얻은 중년 남성은 언제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어린 여직원'과 사귈 수도 있다는 '아재'들의 환상을 말이다. 최대한 선의를 발휘해서 <나의 아저씨>에서 멜로가 없(어졌)다고 믿어보자. 유력한 용의자인 박동훈이 계속해서 지안을 애 취급하며 부인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제 그마저도 마냥 신뢰하긴 어렵다. 박동훈은 "내가 유혹에 강한 인간이라 여태 사고 안 친 거 같아? 유혹이 없었던 거야. 그러니까 모른 거야. 내가 유혹에 강한 인간인지 아닌지."라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 <나의 아저씨>는 이지안이 박동훈에게 기습 키스를 시도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제 분명해졌다. 45세 박동훈에게 21세 이지안의 존재는 명백한 '유혹'이다.
워낙 거센 비판에 직면했던 터라 <나의 아저씨>가 드러내 놓고 두 주인공을 멜로로 엮는 어리석은 짓을 하진 않을 것이다. 드라마는 어떻게든 동훈과 지안의 관계를 '사람 대 사람'으로 이끌어 가려 애쓸 테고, 그들을 나이를 뛰어넘은 친구처럼 포장해 낼 것이다. 마음씨 넉넉한 어떤 칼럼리스트(정덕현)가 이 음흉한 드라마를 '어쩌다 현실의 양 끝에 서게 된 중년 세대와 청춘 세대의 생존스릴러'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의 아저씨>는 이미 중년 세대의 힐링에는 성공한 듯 보인다. 끊임없이 아저씨들의 시선에서, 아저씨들의 처지를 '변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들을 처량한 존재로 그려내고, 이해받아야 할 존재들로 표현한다. 또, 그 아저씨들은 어쩜 그리도 착하고 선량한지. 마치 평소에 아저씨들의 따뜻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오해했던 우리들의 속좁음을 꾸짖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청춘 세대를 중년 세대를 위한 힐링 도구로 쓸 필요가 있을까 싶다. <나의 아저씨>는 동훈과 지안의 관계를 '약자들의 연대'로 끌고 갈 가능성이 높다. 그리하여 자신들을 억압하는 '시스템'과 맞서 싸우게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이'를 지우고, '계급'을 덮어 씌운다고 할까. 그런데 '우린 다 똑같은 처지야'라는 그 얼버무림은 '여성'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계급을 말살시킨다.
여전히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굳이 45세 남성 박동훈과 21세 여성 이지안이 서로의 삶을 치유해야 한단 말인가. SBS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손무한(감우성)과 안순진(김선아), 두 중년 남녀의 관계가 훨씬 더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지 않은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나의 아저씨>는 이 관계가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다. 칼럼리스트 이승한의 '니 아저씨 너나 귀엽지'라는 일갈만 자꾸 떠오른다.
모르는 것도 잘못이지만, 알면서도 외면하는 건 최악이다. 적어도 시청자들은 <나의 아저씨>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3회 시청률은 3.373%로 2회(4.133%)에 비해 꽤나 많이 떨어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성공을 바라는 아이유의 팬들에게 미안하지만, <나의 아저씨>라는 시대착오적인 드라마가 보여주는 기만을 받아주기엔 우리 사회가 많이 진일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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