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고공농성을 바라보는 시선, 혹시 우리가 외눈박이는 아닐까?

너의길을가라 2015. 2.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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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농성(高空籠城). 이 말을 듣는 순간, 사람들의 반응은 두 부류로 나뉠 것이다. 첫 번째 반응은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라는 부정적인 시선이다. 물론 여기에는 찌푸려진 눈살과 욕설 혹은 비하(卑下)가 섞여 있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다면 두 번째 반응은 무엇일까? '저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저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아닐까?



크레인이나 굴뚝, 대형 전광판 등 어딘가 높은 곳을 향해 노동자들은 자신의 몸을 이끌고 올라간다. 그 절박한 심정에 비춰보면 '기어올라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그 이야기를 할 곳도 들어줄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내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뿐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지난 6일 새벽 서울 중구 충무로 소재 중앙우체국 인근에 위치한 대형 전광판에 올라간 장연의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지부 연대팀장의 말이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협력업체에서 인터넷 설치와 수리를 해온 비정규직 1,600여 명은 130일 넘게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주당 70시간에 가까운 고된 노동을 했지만, 추가 수당은커녕 식사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조차 보장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광판에 함께 오른 장 연대팀장과 강세웅 LG U+ 비정규직지부 조직부장은 "SK와 LG가 간접고용 통신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인권을 보장하라"고 외치면서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원청이 나와서 이 문제 타결해야 저희는 내려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 이들이 20m 높이의 전광판에 기어올라가자 그들의 목소리가 '언론'을 통해 전달되기 시작한다. 그 이전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던 처절한 외침이 말이다.


지난 2011년 부산 영도의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했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비롯해서 2012년에는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앞 고압송전탑에 최병승 씨와 천의봉 씨가 296일 동안 고독한 싸움을 벌였다. 또, 평택 쌍용차 공장 70m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진행 중인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도 여전히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앞선 세 사례는 그나마 잘 알려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그 외에도 최후의 수단으로 고공농성을 선택한 케이스는 꽤나 많다. 지난해(2014년) 12월 12일 씨앤앰(C&M) 협력업체에서 케이블 설치 · 수리를 담당한 노동자 강성덕 씨와 임정균 씨는 대형 전광판에 올라 "비정규직 109명 대량해고, 씨앤앰과 대주주 엠비케이(MBK)가 책임져라"는 문구가 담겨 있는 대형 펼침막을 내걸었다. 그제서야 그들의 목소리는 겨우 사람들의 귀에 닿기 시작한다.


'노동자'라는 말은 본래 '노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실제로 우리 모두는 '노동자'임에도, 그 의미를 매우 제한적으로 국한시켜 사용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배제의 용어'로서 '노동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마치 '남의 일'인양 살아간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배제의 논리는 고스란히 우리 자신에게 피해가 되어 돌아온다. 늘상 그렇지만, 그 고통과 아픔은 나에게 닥친 후에야 깨닫게 되곤 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해도 너무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사람의 얼굴'을 상실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럴 법도 하다. 그런데 혹시 우리도 그런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두 가지 반응 중 첫 번째 반응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은수미는 '우리들 대부분이 노동자이고 근로 빈곤 · 저임금 노동 · 양극화가 세계를 휩쓰는 것이 현실이지만 종종 노동문제는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낡은 질문이고, 노동자의 파업은 알타미라 동국 벽화처럼 오래된 유물로 취급된다'며 개탄한다. 


남재일은 자신의 책 『사람의 거짓말, 말의 거짓말』에서 '자본가도 아니면서 자본가의 눈을 가진 외눈박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띄우고 있다. 그는 "고용자도 아니면서 고용자의 눈을 가진 사람들, 어찌 보면 그들이야말로 세상의 다양한 의미와 아름다움을 다 놓쳐버리는 가장 가련한 외눈박이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혹시 우리가 바로 그 '가장 가련한 외눈박이'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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