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음주운전에 이은 뺑소니, 크림빵 아빠의 안타까운 죽음

너의길을가라 2015. 1. 3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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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떨어져 쌀쌀했고, 몸은 파김치가 다 됐지만, 무심서로에서 율량동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오는 4월이면 태어날 딸 아이를 생각하니 없던 힘이 절로 솟았다. 손에 든 크림빵을 보고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임신 7개월째를 맞은 아내가 좋아하는 빵이었다. 아내는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자신도 사범대 출신이지만, 가족 부양이 먼저였다.


한적한 곳이어서 택시도 없었지만, 택시를 탈 생각도 없었다.그 순간이었다. 새벽의 적막을 깨는 굉음이 난데없이 들려 왔다. 몸이 공중에 붕 떴고, 크림빵도 포물선을 그리며 땅에 뚝 떨어졌다. 20분만 부지런히 걸으면 아내가 기다리는 아늑한 집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그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영하의 차가운 날씨에 꽁꽁 얼어붙은 아스팔트 바닥에 크림빵 조각들이 눈처럼 산산히 흩어져 내렸다.


그날 새벽 '크림빵 아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연합뉴스>



지난 10일 새벽, 이른바 '크림빵 아빠'라고 이름 붙여진 강모 씨에게 일어났던 끔찍한 뺑소니 사고를 '재구성'한 <연합뉴스>의 기사의 일부이다. 팩트를 전달하는 것이 기본인 언론의 역할을 고려해볼 때, 위와 같은 기사는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확인할 수 없는 사실들, 가령 피해자 강씨의 심정을 빙의한 듯한 내용 및 묘사들과 아직은 확인할 수 없는 피의자 허 씨의 생각들을 마치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마치 소설처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족·경찰·피의자 진술 토대로' 했다지만, 다소 과하다는 인상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명백한 '음주' 뺑소니 사건이고, 그로 인한 피해자와 그 유족들의 고통과 아픔이 큰 것은 사실이다. 뭐라 위로를 건네야 할지 알 수 없을 만큼 너무도 안타까운 일인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팩트와 허구, 대중의 감정이입을 강제하는 감정적 요소들을 듬뿍 집어넣음으로써 판단 자체를 흐리게 만드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이제부터 최대한 간결하게 '크림빵 아빠' 사건을 이해해보도록 하자.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크림빵 아빠' 사건에 국민적 공분(公憤)과 관심이 이어졌던 것은 죽음을 맞은 강 씨의 안타까운 사연 때문이었다. 어떤 죽음인들 사연이 없겠냐마는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임신 7개월 째의 아내를 위해서 새벽일을 마친 늦은 시각에 크림빵을 사들고 귀가하던 강 씨가 '뺑소니'에 의해 사망한 사연은 평범하고 소박했던 가정의 파괴라는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네티즌들은 강 씨를 '크림빵 아빠'라고 부르며, 그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고 함께 아파했다. 문제는 뺑소니 범인을 잡을 단서가 전무(全無)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사고 현장에 떨어져 있기 마련인 자동차 부품 조각도 발견되지 않았고, CCTV를 분석했지만 화질이 나빠 정확한 판독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사건은 이렇게 미궁 속으로 빠지는 듯 했다.



답답했던 상황을 타개한 것은 사건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던 한 시민의 댓글이었다. 청주시 차량등록사업소(사고 지점에서 170m 떨어진 곳에 위치)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A씨는 한 중고차 거래 사이트에 "우리도 도로변을 촬영하는 CCTV가 있다"는 댓글을 달았다. 경찰은 27일 차량등록사업소의 CCTV를 확보해 29일 강 씨를 치고 달아난 차량은 윈스톰이라고 발표(애초의 경찰 발표는 BMW)했다.


경찰의 발표가 있은 후, 2~3시간 지난 시점(오후 7시)에서 허 씨의 아내로부터 "남편을 설득 중인데 경찰이 출동해 도와 달라"는 전화가 경찰에 걸려왔다. 이내 경찰이 출동했지만, 허 씨는 자취를 감춰 검거에 실패했다. 종적을 감췄던 허 씨는 오후 11시 무렵 제발로 경찰서를 찾아 자수를 했다. 강 씨의 아버지(이하 강태호 씨)는 "자수해서 고맙다. 원망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그 사람도 한 가정의 가장이고 지금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일텐데…"라며 자수한 허 씨를 용서했다. 이른바 '크림빵 아빠' 사건은 이렇게 막을 내리는 것만 같았다.



자수와 용서로 마무리 될 것처럼 보였던 '크림빵 아빠' 사건은 급반전의 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허 씨가 자수한 29일 밤 흥덕경찰서를 찾아 용서의 메시지를 보냈던 강태호 씨는 "피의자가 진정으로 반성하고, 자수한 것 같지 않다"며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혼자 소주 4병 이상을 마셨다"고 진술한 허 씨는 "사고 직후에는 조형물이나 자루를 친 줄 알았다"고 말했고, 이에 강태호 씨는 "진짜 잘못했다면 솔직했으면 좋겠다"며 분노를 터뜨렸다.


강태호 씨는 "1m77㎝의 거구(강씨를 지칭)가 빵 봉지를 들고 걸어가는데 치었다고 가정할 때 사람이라고 보겠습니까, 강아지로 보겠습니까"라며 허 씨가 범행을 은폐한다고 여긴 것이다. 물론 허 씨가 당시 소주 4병 이상을 마신 점을 미뤄보면 사리분별을 할 수 없을 정도의 만취 상태였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사고를 낸 날 하루를 꼬박 자고 다음날 차가 부서진 것을 알았다"는 진술이 단순히 사건 은폐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둘 필요가 있다.


-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강태호 씨는 "많은 사람이 건너는 도로에 변변한 횡단보도를 설치하지 않은 것은 반성해야 한다"면서 교통 안전에 소홀했던 청주 시를 비판했다. 물론 횡단보도의 설치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지만, 이 사건이 '음주운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이다. 횡단보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인사불성의 만취상태였던 허 씨가 이를 인지했을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 보이기 때문이다.


도로교통공단이 최근 5년간(09~13) 발생한 음주운전 사고의 특성을 분석한 결과, 전체 교통사고의 12.6%가 음주운전사고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또, 전체사고 사망자의 14.6%(3,954명)이 음주운전에 의한 것이었다. '크림빵 아빠' 사건과 같은 뺑소니의 경우도 음주운전에 의한 경우가 30.5%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소박한 희망을 품고 착실히 살아가던 가정이 한 순간에 파괴됐다. 음주운전에 의한 뺑소니 사고에 의해서 말이다.


피해자의 가정은 말할 것도 없고, 피의자인 허 씨(는 응당 죗값을 치러야겠지만)의 가정도 파탄을 맞이했다. 이 참혹한 결과는 술을 마시고도 운전대를 잡는 '미친 짓'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음주단속에 걸리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한 잔으로부터 시작된, 한 번으로부터 시작된 음주운전은 끝내 참담한 결말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크림빵 아빠'의 가슴 시린, 그 안타까운 죽음이 대한민국에 음주운전을 완전히 뿌리뽑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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