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잇따르는 군 성범죄? 남성중심적 조직 자체가 변해야 한다

너의길을가라 2015. 2.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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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군대 내에서 성범죄가 잇따르고 있다(는 뉴스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번에는 부하 하사관을 성폭행한 혐의로 28일 긴급체포된 현역 육군 여단장 A 대령이 30일 구속됐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A 대령은 지난 달부터 이달 초까지 부하 여군인 B 하사를 자신의 관사로 불러 두 차례에 걸쳐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물론' A 대령은 상호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면서 성폭행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서두를 시작하면서 '최근 군대 내에서 성범죄가 잇따르고 있다(는 뉴스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라는 괄호 문장을 쓴 까닭은 '최근 군대 내에서 성범죄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그러한 '뉴스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는 군대 내에서 '생각보다 훨씬 빈번하고 아무렇지 않게' 발생하고 있는 성범죄가 최근 들어서 세상에 보다 많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오랫동안 '남자'들에 의해 운영되어 왔던 조직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치명적인 한계는 '남성주의적인 사고방식'이 뼛속 깊이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 여군의 효시는 6 · 25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그 역사가 무려 65년이나 되지만, 군대가 '남자'들의 조직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사회의 일반적인 조직조차도 그러한데, 하물며 군대는 어떠하겠는가?


기존의 군가만 봐도 그렇다. '멋진 사나이'는 "멋있는 사나이 많고 많지만 바로 내가 사나이, 멋진 사나이"로 시작되고, '전우'는 "겨레의 늠름한 아들로 태어나 조국을 지키는 보람찬 길에서"라며 조직의 구성원을 '아들'로 설정하고 있다. 국방부는 여군 1만 명 시대(2014년 기준 8천 3백여 명)를 맞아서 '아들'이나 '사나이' 같은 표현을 넣지 않는 방향으로 군가를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남성주의적인 사고방식'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군대라는 조직에 여성들의 비율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성과 관련한 각종 문제들(성범죄)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여성들의 비율이 늘어나면서 감춰졌던, 묵과된 채 넘어갔던 성범죄들이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게다가 군대가 구조적으로 '윗사람'에게 잘 보여야만 살아남을 수 없는 계급 사회라는 건 이러한 범죄가 '성행'하도록 만드는 주요 요인이다. 



현역 육군 여단장 A 대령에게 성폭행을 당한 B 하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안정적인 신분이 보장되는 장기복무자로 선발되기 위해서는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때 성범죄를 비롯한 여러가지 피해를 보더라도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사정을 노리고 갑(甲)질을 하는 A 대령과 같은 군인이 수도 없이 있기 마련이다. 언론은 장기복무 선발제도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방안이 근절책의 하나라고 말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군대 내의 남성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걷어내지 않으면 결코 바뀌지 않을 일이다.


그것은 지난 29일 육군이 내놓은 성군기 대책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른바 '성군기 개선을 위한 행동수책'을 보면, 여군 또는 남자 군인 혼자서 이성의 관사 출입 금지, 여군이 부득이하게 신체 접촉시 한 손 악수만 허용, 지휘관계에 있는 이성 상하 간 교제 금지, 남자 군인과 여군이 단 둘이서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 금지 등이 포함되어 있고 한다.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들의 수준이 정말 한심할 따름이다. 이런 대책들은 오히려 여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만 키울 뿐이고, 위화감만 조성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지난 2011년 국방부가 펴낸 '초임 여군 군생활 안내서'에는 상관의 성추행에 대처하는 방법이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이 참으로 충격적이다. 이 안내서에는 만약 성추행을 당하더라도 이를 단호히 뿌리치지 말고 넌지시 불편한 마음을 전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예를 들면, "혹시 제가 오해를 한 것 때문에 기분 나빠하실까 걱정이 되지만", "물론 저를 아끼시는 마음에 나쁜 의도가 전혀 없으셨겠지만" 같은 식이다.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운영하는 채용정보 사이트 '워크넷'이 '면접 모범답안'으로 제시했던 "성에 대한 가벼운 말 정도라면 신경을 쓰지 않겠고, 농담으로 잘 받아칠 정도의 여유도 필요하다"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결국 이 문제는 단순히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중심적인 사고방식'이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모든 조직들의 문제다. 이는 남군과 여군이 단 둘이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을 금지하는 우스꽝스러운 대책 따위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더욱 아니다.



앞으로 여군의 수가 늘어날수록 이런 문제들은 더욱 자주 노출될 것이다. 그때마다 허겁지겁 주먹구구식의 대책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군이라는 조직을 더욱 투명하게 바꾸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을 해야한다. 그들만의 리그로 존재하는 군을 외부에 공개하고, 독립적인 외부에 의한 감시를 시스템화하는 것은 피해갈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자 요구다. 물론 성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사회적 노력, 교육적인 접근도 필수적이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이뤄져야만 한다.


그런데 지난 2010년부터 5년동안 발생했던 여군 대상 성범죄 83건 가운데 실형을 받은 사건은 몇 건이나 될까? 고작 3건뿐이다. 영관급 장교 8명 중에서는 단지 1명만 벌금형을 선고받았을 뿐, 나머지 7명에 대해서는 재판조차 열리지 않았다. 만약 대한민국 군(軍)이 '성관련 사고예방 종합대책'을 마련하고자 한다면, 그런 시늉을 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성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을 과감하게 처벌하는 것부터 시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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