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장정일은 1984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 3집에 「강정간다」 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문단에 등장했다. 1987년에는 희곡 <실내극>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최연소)한다. 또, 1990년에는 『아담이 눈뜰 때』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변신해 독자들을 만났다. (물론 그는 1988년 발표한 단편소설 「펠리컨」으로 이미 소설가가 되었다.)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가인 장정일은 그의 작품들이 영화로 제작되고, 연극 무대에 올려지는 등 다뤄지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장정일 신드롬'을 일으켰다. 특히 1996년에 출간한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음란물'로 분류되고 사법적 판단에 의해 '음란죄'로 복역하는 필화(筆禍)를 겪으면서 그를 둘러싼 '논쟁'은 더욱 격화됐다. 이렇듯 그의 거침없는 글과 소신 있는 발언은 그를 문단의 '이단아(異端兒)'이자 '문제 작가'로 불리게끔 만들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그래서 충분히 변할 기회가 많았지만, 장정일은 여전히 그의 야성(野性)을 버리지 않았다. 여전히 그는 '야생의 작가'로 남아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특정한 틀 속에 갇혀 있지 않다. 길들여지지 않았다. 장정일이 '야생'스러운 또 다른 이유는 그의 '독서' 때문이다. 그의 책을 소개하는 <이데일리>의 기사에는 '생존을 위해 먹이를 찾는 야생을 닮았'다고 쓰고 있다.
소영현 문학평론가는 장정일을 '그 이름만으로 무엇에 대한 어떤 책인지 묻지도 않고 그의 신작을 덥석 집어 들게 할 만큼 그는 신망 두터운 저술가'라고 설명한다. 과거에 그의 책을 짚어들게 했던 힘이 '호기심' 같은 것이었다면, 이젠 그 힘이 '신뢰'로 바뀐 듯 하다. 지금까지 그가 써왔던 독서일기(『장정일의 독서일기』(전7권),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전3권))을 읽어왔던 터라 '장정일'에 대한 믿음, 특히 그의 '독서'에 대한 믿음은 단단하다.
그런 장정일의 '인터뷰집'이라면 좀 다르지 않을까? 인터뷰집 『장정일, 작가』를 집어들고 든 첫 생각이었다. 전문적인 인터뷰어(가령 지승호)가 유명인을 만나 그의 생각을 들어보는 류의 책이 한바탕 유행을 타면서 이번엔 유명인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유명인을 만나는 기획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여러 신문들이 그런 형식을 취했고, 그 글들은 곧 책으로 출간됐다. 물론 그 가운데 양질의 인터뷰가 담긴 것도 있었지만, 어떤 인터뷰들은 평이하고 심지어 평면적이었다.
Q. 어떤 기준으로 질문을 정하시나요? 인터뷰를 하기 전에 어떤 준비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책을 읽고 짧은 서평 형태로 감상을 먼저 정리합니다. 그 바탕 위에서 인터뷰 전체의 방향이나 질문을 정합니다. 인터뷰이가 되어 주신 저자들께는 미안하지만, 저자들은 내 서평을 완성시켜 주기 위해 동원되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매번 서평 혹은 에세이를 쓴다는 생각으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Q. 서평을 완성시키기 위해 동원되었다고요? 그럼 작가님이 특별히 이 작가들을 동원한 기준은 무엇일까요?
A. 내가 만났던 저자 전체가 나의 편견이고, 나의 존재 증명(알리바이) 입니다. 눈치채지 않게 그렇게 했습니다. 여기 초대된 저자들은 모두 제가 되고 싶었던 꿈을 이룬 사람들이거나, 제가 바라보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기대는 '역시!'로 다가왔다. 엄밀히 말한다면, 『장정일, 작가』는 '인터뷰집'을 가장한 '서평'이었다. '어떤 기준으로 질문을 정하'냐는 질문에 '저자들은 내 서평을 완성시켜 주기 위해 동원'된 것이라 말하는 그의 야심찬 대답을 보라. 일반적인 인터뷰집이 인터뷰이를 만나기 전에 간단한 소개 및 그에 대한 감상을 적고, 이어 질문과 대답이 계속 이어지는 데 반해 『장정일, 작가』는 장정일의 서평 속에 (질문은 생략된 채) 인터뷰이의 대답이 '삽입'되어 있다.
그 형식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기본적으로 인터뷰는 인터뷰어보다 인터뷰이가 돋보여야 하고, 그것이 글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장정일, 작가』은 하나의 서평(혹은 에세이) 속에 인터뷰가 '첨부'된 듯한 느낌을 줘 인터뷰어, 즉 작가(장정일)의 색깔이 도드라진다. 그렇기 때문일까? 훨씬 더 '읽기'가 수월하고 이해하기에도 편하다. 아무래도 '주체성을 획득한' 인터뷰어의 호흡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장정일, 작가』는 장정일이 여러 매체를 통해 연재했던 43명의 '작가'를 인터뷰한 것을 엮은 책이다. 2015년의 인터뷰를 담고 있는 1부는 시의성이 맞지만, 아무래도 2007년과 2009년 사이의 인터뷰인 2부와 3부는 그런 측면에선 다소 아쉽다. (예를 들면 방송인 이다 도시는 지금에 와선 생뚱맞지 않은가?) 물론 지나간 텍스트라고 할지라도 그 작가들이 갖고 있던 기존의 생각들은 뼈대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질 테니 충분히 의미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협소한 문학(소설, 시)으로 온전히 포획되지 않는 또 다른 문학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양의 세계는 '세계문학전집'보다 드넓고, 글쓰기의 종류 역시 협소한 문학의 가짓수보다 많다."
그가 '선택'한 인터뷰어들은 '작가'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다소 생경(生硬)한 이름들이 많다. 그 까닭은 이 글을 쓰는 사람이 무지(無知)한 탓이 크겠지만, 또 하나의 이유를 덧된다면 그가 이른바 '작가'로 불리는 '문학'의 범주를 벗어나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을 만났고, 그 '작가'들이 당대에 명망 높은 '화제의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장정일은 자신만의 기준(남녀 성비를 반반으로 맞춘다거나 가능한 많은 극작가를 소개한다거나)을 정해놓고, 그에 부합하는 작가들을 선정했는데, 스스로는 실패했다고 밝혔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협소한 문학으로 온전히 포획되지 않는 또 다른 문학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목표를 충분히 달성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다지 '땡기지' 않는 작가도 있었지만, 장정일이 읽어낸 시선을 따라 텍스트와 작가를 살피는 재미는 제법 쏠쏠했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 어떤 새로운 시각이나 연구도 '일본은 나쁜 놈'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역설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똑같은 진실이라 하더라도, 어떤 진실에는 값어치가 있고, 어떤 진실에는 값어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저런 사고 구조로 무장하고 이견을 틀어막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진실'에는 '진실'이라는 값어치가 있다."
특히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제국의 위안부』의 박유하 교수와의 인터뷰는 인상깊었다. 개인적으로도 발췌된 부분과 왜곡된 전체, 『제국의 위안부』를 위한 변론 라는 글을 통해 간단히 짚어보기도 했었는데,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전히 『제국의 위안부』는 '제대로' 읽히기 어려운 텍스트다. '진실에는 진실이라는 값어치가 있다'는 장정일의 일갈(一喝)은 시쳇말로 '사이다'였는데,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따로 다루고 싶은 심정이다.
그밖에도 "제가 생각하는 '연극'은 용기를 얻기 위한 모든 곳에 있습니다. '사랑'도 연국이고, '투쟁'도 연극이고 '혁명'도 연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온갖 상황의 사람들이 '한 걸음의 용기'를 얻기 위해 '연극'을 불러내는 것"이라는 희곡 작가 오세혁, "절실함이 더해지고 희생이 전제되어야 원하는 물건은 내 것이 된"다는 사진 작가 윤광준, '오르가슴 없는 자, 정치하지 마라'고 외치는 미학자 이희원 등 흥미로운 작가가 많이 담겨 있다.
인터뷰를 '명성 있는 인사를 만나, 그들을 독(讀) 선생으로 모시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던 문학청년 시절 인터뷰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그는 이제 더 이상 '인터뷰'를 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고 한다. 인터뷰가 '고역'이자, '글쓰기의 3D 직종'이기 때문이란다. 앞으로 장정일의 인터뷰를 볼 수 없다는 것은 아쉽지만, 굳이 '인터뷰'의 형식을 취하지 않더라도 그의 '서평'은 계속 될 것이기에 그저 다음 책을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