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서재

『독선사회』, 우리의 진정한 적은 그 무엇도 아닌 독선

너의길을가라 2016. 5. 2.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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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선사회』는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시리즈의 4번째 책이다. 강준만은 2013년부터 『감정 독재』,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생각의 문법』을 연속으로 출간하며 대한민국 사회를 심층적으로 탐색했다. 한 사회를 수박 겉핥기 식이 아니라 '제대로'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강준만은 해내고 있는 듯 하다. 아니, 강준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걸까?



엄청난 독서량과 방대한 데이터,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다작(多作) 능력이다. 혹자는 강준만의 글쓰기는 '자기 복제'라고 비꼬기도 하지만, 그것이 '강준만식 글쓰기'인 것을 어쩌겠는가. 어떤 글쟁이들이 '필생의 역작을 내놓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쓰겠다는 일념으로 책을 쓰지만, 강준만은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보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정치'를 다루고, 그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정치'를 이야기하고, 그 누구보다 직설적인 어조로 '정치'와 부딪쳤던 강준만이 어느 순간부터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평론을 멈췄다. 그리고 인문학의 저변을 어슬렁거리고, 사회문화적인 글쓰기에 매진했다. 고독한 싸움 속에서 내상(內傷)이 컸던 탓이겠지만, 오히려 그 노선 변경이 대한민국 사회로 봐선 '이득'이라는 생각도 든다.



직접적으로 '정치'를 다루진 않지만, 여전히 그의 글은 '정치적'이다. 협의(狹義)의 정치에 매몰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더 넓은 정치를 논한다. 물론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를 대놓고 지지하는 등 협의의 정치로 잠시 발을 들여놓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의 글은 대한민국 사회로 향해 있다. 이번에 강준만이 착안한 포인트는 '독선(獨善)'이다. 그렇다면 왜 '독선'인가? 강준만은 '머리말'에서 그에 대해 자세히 써놓았다. 


그가 보기에 대한민국 사회는 이분법의 프레임에 빠져 '독선'의 지배를 받고 있다. '증오의 언어'가 판을 치고, 언론은 '증오 상업주의'에 탐닉하고 있다. "우리의 진정한 적은 좌도 우도, 진보도 보수도 아닌, 독선"이라는 강준만의 지적은 핵심을 찌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독선에 중독된 것일까? 강준만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특유의 사회문화적 동질성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다름'의 불인정은 물질이 아닌 정신 영역에선 재앙을 몰고 왔다. 우리는 각기 다른 생각과 소통하고 타협하면서 화합하는 삶을 살아오지 못했다. 물론 독재자들의 독선만이 독야청청했던 독재정권 때문이다. 폭력적 독선에 대항하는 길은 신념적 독선 이외엔 없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온갖 갈등과 분란과 이전투구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 후유증 때문"이라 주장하는 강준만은 소통과 타협과 화합을 모색하기 위해 애를 써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나 역시 '내가 옳고 정의의 편이라는 생각'에 기반한 독선적 글쓰기를 10여 년간 해오다가 2003년 내게 일어난 엄청난 행운 덕에 더 크고 넓은 안목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또, 강준만은 자신의 '한계'를 뚜렷이 인식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독선'이라는 때가 묻은 사람으로서 '화합'을 역설하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나는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이른바 '넛지' 방식에 눈을 돌리게 되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독선사회』이고, 이 책은 여러가지 이론과 개념을 통해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방식의 접근법으로 대한민국 사회의 '독선'을 진단한다.



나의 메시지는 한결같다. 자신의 확신을 의심하라!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우리 인간이 똑똑함과는 거리가 먼 감정적 · 습관적 판단에 얼마나 취약하고 허약한가 하는 걸 말해준다. 즉, 우리가 독선을 범해선 안 될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닫자는 것이다.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이성이 마비되니, 정치 아닌 다른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한계와 모자람을 인정하자고 꼬드기는 것이다. 그런 우회적 설득 시도를 정치에 접목시킨다면,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될 것이다.


한국 정치의 개혁과 사회적 진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똑똑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똑똑함과 확신의 한계를 깨닫는 것이다.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 세력을 쓰레기로 매도하면서 면책 심리를 키우고 반대 세력을 악마화하는 '증오 마케팅'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버릇을 버리자. 정치적 판단을 할 때 인간의 뇌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 영역이 작동한다는 걸 인정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소통과 타협과 화합의 길로 갈 수 있게끔 해보자.


강준만이 전달하고 싶은 핵심적인 메시지는 위와 같다. 물론 이 메시지가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될지는 의문스럽다. 얼핏 전달이 됐다고 한들, 막상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이성이 마비되'는 사람들이 자신의 '독선'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당장 나부터 그럴 수 있다고 자신하지 못하는 걸 보면, 끊임없는 각성과 노력이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책에 담겨 있는 50가지 소주제가 모두 매력적이었고, 죄다 공부 대상이자 '인용 덩어리'였지만,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강준만이 '독선'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언급한 소주제가 아니라 뻘쭘하긴 하지만) '세월호'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책의 뒷부분에 배치된 '왜 우리는 재앙의 수많은 징후와 경고를 무시하는가?', '왜 사고는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는가?', '왜 재난은 때로 축복일 수 있는가?'는 추천하고 싶은 글이다.


애석한 것은 전국민이 함께 가슴 아파하며, 풀어나가야 할 숙제였던 세월호 참사마저도 '진영논리'에 휘말려 '진영 간 싸움'으로 비화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서도 긍정적인 변화는커녕 아무런 교훈조차 얻지 못한 채 이대로 표류해야만 하는가?"라는 강준만의 '한탄'이 뼈아프게 들린다. 세월호 2주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한걸음'도 내딛지 못한 대한민국 사회를 뒤덮고 있는 수많은 '독선'들이 하루빨리 걷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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