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 출연한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여권 일각에서 문창극 총리 후보자를 옹호하면서 '부분이 발췌돼서 전체를 왜곡시켰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온누리 교회 영상 전체 풀버전을 대충 봤거든요. 보니까 더 확실해지는 것 같아가지고(웃음) 뭘 보라는 건지 다시 한 번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다 보래요, 그래서 다 봤는데, 그랬더니만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드냐고 그래서 네, 이랬어요. 오히려 맥락이 완성되면서 약간 곤란하게 되더라고요."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발췌된 부분이 전체적 맥락과 맞닿아 있는지, 아니면 발췌로 인한 생겨난 오해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선 '전체'를 봐야만 한다. 문창극 총리 지명자의 경우에는 1시간이 조금 넘는 '온누리 교회 영상 풀버전'이 그 전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문 후보자의 경우에는 전체를 확인하고서 부분이 보다 명확해진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케이스가 위의 사례처럼 '아름다운(?)' 결말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발췌된 부분이 전체를 왜곡시켜 심각한 오해와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 중의 하나인 '박유하 교수'를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을 통해 떠돌아다니는 『제국의 위안부』의 '발췌된 일부'가 전체적 맥락과 일치하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선 당연히『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을 읽어봐야 한다. 그런 노력 없이 인터넷에 발췌된 내용들만 퍼나르며 박유하 교수를 친일파로 규정하고 마녀사냥을 하는 것은 다소 지나친 면이 있다.
"'제국의 위안부'에서는 '한일 간의 화해를 위해 자신들의 행위가 매춘이며, 일본군의 동지였던 자신들의 모습을 인정함으로써 대중들에게 피해자로서의 이미지만 전달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허위사실을 기술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정신적 고통을 줘 배상 책임이 있다"
우선, 사건의 개요부터 파악해보자. 지난 16일, 이옥선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9명은 서울 동부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책인『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출판 · 판매 · 발행 · 복제 · 광고 등을 금지해달라는 내용의 가처분 신청을 했다. 또, 저자인 박 교수와 출판사 대표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면서 손해배상청구소송도 냈다.
이에 대해 박유하 교수는 "어떤 의도건 간에 할머니들이 상처를 받았다면 죄송한 마음은 있지만, 내가 글을 쓴 의도는 나중이라도 이해주리라 믿는다"면서도 "책에 썼다고 소송주체들이 말했다는 내용은 대부분 왜곡되어 있다"며 "이런 식의 왜곡 자체가 저에 대한 '중상'이자 '명예훼손'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사과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그렇다면 질문을 던져보자. 박유하는 어떤 의도로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을 쓴 것일까? 단지, 허위사실을 기술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정신적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었을까? 그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그가 『제국의 위안부』를 쓰게 된 문제의식부터 짚어보도록 하자.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의해 지탱되어온 근대 국민국가 체제는, 국가세력을 확장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군대를 조직했고 고향을 떠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그들을 '위안'할 여성들의 조직을 유지해왔다. 그런 의미에서는 러일전쟁 시대의 일본인 위안부도, 태평양전쟁 시대의 조선인 위안부도, 해방 후 한국에 주둔하게 된 미군을 위한 위안소도, 기본적으로는 모두 똑같이 국가(안보 혹은 경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동원된 피해자들이다. (p. 287)
책의 제목이 '일본의 위안부'가 아니라 '제국의 위안부'가 된 것은 그가 이 문제를 단순히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의 문제로 확장시키고자 했던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고자 했던 저자의 고민이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박유하는 후기에서 "정대협의 '운동'을 거대한 '국가적 소모'라고까지 느끼는 내 감성을 그저 '친일파'로 간주하려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빨갱이'나 '친일파'라는 명칭이 그저 개인에 대한 공격 자체를 목표로 하는 세월이 이어지는 한 제국과 냉전으로부터의 '해방'은 오지 않는다."라고 쓰고 있는데, 이는 자신의 공격 대상이 '위안부 할머니'가 아니라 '정대협'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또, '빨갱이'나 '친일파'라고 불릴지 모른다는 걱정도 하고 있지만, 그보다 제국과 냉전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감수'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하고 있다. 지금 그는 자신이 예견(?) 했던 상황에 봉착한 듯 하다.
조선인 여성들이 '일본인 위안부'가 된 것이 '식민지'에 대한 일본 제국권력의 결과인 이상 일본에 그 고통의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p.49)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것은, 조선이 받았던 고통에 대해, 당한 당신한테 잘못이 있다고 가해자가 말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기 책임'은 어디까지나 '자기 책임'의 주체가 생각해야 할 문제다. '조선은 멸망 직전'이었는데 일본이 구해준 것이라며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발언은 강한 자의 논리일 뿐이다. (p.164)
위와 같은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박유하는 '위안부' 문제를 '일본의 책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언론에서『제국의 위안부』의 일부분만 발췌해서 그것이 그 책의 전부인양 보도하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오버'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 기사를 기자가 『제국의 위안부』를 구입하거나 빌려서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을 투자했다면, 그와 같은 기사를 쓰진 않았을 것이다.
박유하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위안부는 전부가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조금 자세히 들어보도록 하자.
물론 이런 사실들을 직시하는 일은 불편한 일이지만, '위안부'의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조선인 위안부'의 고통이 일본인 창기의 고통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그 안에서 차별이 존재한 것은 사실이지만, 위안부의 불행을 만든 것은 민족 요인보다도 먼저, 가난과 남성우월주의적 가부장제와 국가주의였다. 그리고 '조선인 위안부'라는 존재가 생기가 된 것은 이들의 위치를 조선인 여성들이 대체한 결과였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한국의 식민지화와 식민지로 이식된 공창제도가 있었고, 중간매개자들은 그런 과정에서 생겨난 존재였다. (p.33)
그는 '조선인 위안부'를 만든 요인을 '민족'이 아니라 '가난과 남성우월주의적 가부자제와 국가주의'에서 찾고 있다. 실제로 그가 다양한 자료와 많은 증언들을 토대로 확인한 것처럼, 일본(혹은 일본군)과 조선인 위안부 사이에는 '중간매개자'들이 존재했다. 이러한 서술은 일본을 악으로 규정해야하는 민족주의적 시각에 비추어 볼 때 다소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박유하는『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 를 인용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일본도 나쁘지만 그 앞잡이 노릇을 한 조선이들이 더 밉다", "일본뿐만 아니라 조선인도 자기 살려고 남을 죽을 곳에 넣었으니 마찬가지로 나쁘다"는 위안부의 증언이 담겨 있다. 이처럼 '우리 안의 협력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걸끄러운 사실이지만, 수용해야 할 불편한 진실이기도 하다.
또, 박유하는 '정신대'와 '위안부'를 구분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두 가지 개념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명확한 사실관계 파악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여성을 공장 등의 일반 노동력으로 동원하기 위해 만든 '정신대'와 '위안부'는 다른 개념이고, 모집 시기와 연령대도 차이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위안부'들이 위안부가 되기까지의 정황은 이렇게 하나가 아니었다. '강제로 끌려간 20만 명의 소녀'라는 인식은 정신대와 위안부의 혼동, 업자 등 주변 가담자의 소거, 예외적인 사례를 일반화한 수용이 만든 상이었다. (p.54)
정대협이 한국 사회에 내보낸 정보들은 '위안부'를 둘러싼 상황을 '강제 연행'과 '반복적 무상 성폭행'으로만 상상하도록 만들면서 '성노예'라는 단어를 정착시켰다. 물론 위안부들이 자신의 몸의 주인일 수 없었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위안부란 '성노예'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주인이 군대라기보다는 업자였다는 점이다. (p.116)
문제는 그의 책이 '민족주의'적 서술을 비판하는 것에 집중되다보니 애초의 문제제기와 '그녀들을 만든 것이 식민지지배 구조라는 것'이라는 기본적 서술 태도와는 어긋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중간 매개자', '업자'로 표현되는 조선인 브로커를 강조하다보니 일본(군)의 책임은 사라지고, 조선인 브로커와 자발적 협력에 나섰던 일부 위안부들의 문제로 국한되어 버렸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위안소' 내에서의 '사랑과 평화'를 서술하는 데 집중한 부분들(조선인 위안부와 일본인의 관계가 기본적으로는 동지적인 관계(p. 67))은 위안부 자체에 대한 이미지를 분명 왜곡한 것이었다.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는 우리가 피상적으로만 알아왔던 '위안부'에 대한 새로운 문제제기라고 볼 수 있다. '정신대와 위안부의 혼재된 개념'이나 '업자의 재발견' 등은 우리에게 위안부에 대해 보다 세밀하고 정확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에서 위안부에 접근해보는 시도도 (현재 단계에서는 어려운 일이 분명하지만) 새로운 논의 차원에서 언젠가는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물론 글에서 자신의 논리를 관철시키기 위해 다소 과도하게 쓰여진 부분들이 없진 않지만, 그 전체적인 맥락에 비춰볼 때 단순히 '박유하=친일파'라는 공식으로 그를 매도하는 것은 지나친 마녀사냥이라는 생각이다. <서울신문>은 박유하 교수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맞고소 할 예정이라는 보도를 해서 박유하 교수를 '죽일 년'으로 만들어 버렸지만, <경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가 조금은 차분하게 박유하 교수와 『제국의 위안부』를 생각해봤으면 한다.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은 매도의 대상이 아니라 토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택광 교수의 말처럼, 더 이상 '같은 이야기만 반복 재생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앞으로 『제국의 위안부』에서 다루지 못했던 부분들, 혹은 과장했거나 과소했던 부분들에 대해 진지한 토론이 이뤄진다면, 그로부터 '위안부'에 대한 진정한 이해의 토대가 마련되는 것 아닐까?
다만, 박유하 교수에게 감히 당부하고 싶은 것은 지금의 논란들이 왜곡과 곡해의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논란을 초래한 것은 분명 박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의 책임이라는 것을 통감했으면 한다는 점이다. 의도를 그러하지 않았지만, 책 속에는 오해의 여지가 충분한 내용들이 왜곡의 여지가 다분한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당장 할머니를 찾아 뵙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 논란이 조금 사그라지면 책을 쓴 목적과 취지가 왜곡됐었다는 점을 밝히고 오해를 풀었으면 한다.
'버락킴의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BS 다큐프라임 죽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5) | 2015.03.18 |
---|---|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애덤 스미스와 조지프 슘페터를 오해하고 있나요? (4) | 2015.03.06 |
독한 혀들의 전쟁 『썰전』, 책은 어떨까? (1) | 2014.04.20 |
『심야 라디오』, 좀 가볍고 너무 착한 철학 에세이 (0) | 2014.01.05 |
『뻐꾸기의 알은 누구의 것인가』, 인생은 유전자에 각인된 것일까? (0) | 2013.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