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서재

『EBS 다큐프라임 죽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너의길을가라 2015. 3. 1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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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금기(禁忌)인 사회. 우리는 함부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한다. 심지어 '빨간 색'으로 이름을 쓰면 죽게 된다는 허무맹랑한 속설에 따라 펜 색을 고르는 데도 신경을 써야 했다. 물론 필자는 그에 게의치 않고, 보란 듯이 빨간 색으로 이름을 써왔다. 당시 기겁을 하던 아이들이 아직까지 무사히 살아있는 나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지금 죽는다고 해도 여전히 '요절(夭折)'의 범주에 들어갈 것이기에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유보적 태도를 취할까?

 

그러고 보면 필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옅었거나 오히려 죽음에 압도당한 나머지 그런 금기들에 뻗대는 행위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보다 설득력 있는 대답은, '미신'이라는 행위와 그런 행동들을 야기하는 사고방식에 대한 혐오였을 것이다. 어찌됐든,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만약 우리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면, 당장 '왜 그런 이야기를 하냐'며 타박을 당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 

 

삶은 죽음을 향한 끊임없는 시도다. 따라서 삶은 죽음이 더 이상 악으로 생각되지 않을 때 비로소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것은 대한민국 사회만의 특징은 아닌 모양이다. 2014년 올해의 방송 비평상'을 수상했던 EBS '다큐프라임-생사탐구 대기획 데스'를 책으로 엮은『EBS 다큐프라임 죽음』은 '죽음의 실체'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시도한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국내외 100여 명의 학계 권위자들이 동원됐는데, 그만큼 죽음에 관한 궁금증과 이를 해소하고자 하는 연구가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진행중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셸리 케이건 교수는 "죽음의 필연성-반드시 죽는다", "죽음의 가변성-얼마나 살지 모른다", "죽음의 예측불가능성-언제 죽을지 모른다", "죽음의 편재성-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점을 들어 죽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특히 죽음의 예측불가능성이 인간으로 하여금 죽음을 두려워하도록 만든다고 설명했다. 물론 모든 문화권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금기시 하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문화권의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 문화권에서는 죽음을 끔찍하게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멕시코에서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멕시코에서는 죽은 사람들을 기억에서 끄집어내어 그들을 반추해 보는 날이 있다. 죽은 자를 위한 날인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풍족한 설탕으로, 죽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집을 꾸미고 해골도 만든다. 집을 예쁘게 꾸미기 위해 설탕 해골들을 집안에 전시해 놓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날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산 자를 위해 이승으로 돌아온다고 믿는다. 그리고 설탕 해골로 그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EBS <데스> 제작팀, 『죽음』-

 

 

 

죽은 사람들을 위해 설탕 해골을 전시하는 등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등 죽음을 긍정적으로 반추하는 멕시코의 예는 흥미롭게 다가온다. 또, 영국의 경우에는 매년 5월마다 '죽음 알림 주간(Dying Matters Awareness Week)이라는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평소에는 쉽게 할 수 없었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일주일 동안 만이라도 거리낌없이 자연스럽게 나눠볼 수 있는 시간을 갖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것인데, 이를 통해 영국은 현재 죽음의 질 1위 국가로 변화할 수 있었다.

 

진중권은 "어떻게 두 남녀가 대등하게 만나서 평화롭고 신사적으로 교제하면서 상대를 배려하는지,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감정적으로 다른지 등을 배우는 것이 필요해요. 이런 것들을 배우는 것이 필요한데 안 하고 있다. 또 하나는 죽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구성원을 공동체에 입장시키는 절차죠. 사랑의 결실로 생명이 태어나잖아요. 그렇다면 죽음이라는 것은 구성원을 공동체 바깥으로 퇴장시키는 절차"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세상의 긴 여행을 마무리하는 순간, 어떤 삶을 살았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았다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이야기 들을 수 있을까? 그 순간 "나는 이런 삶을 살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또는 "당신은 이런 사람이었어요"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우리 삶의 목표가 될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죽음 교육이 주는 최대의 선물일 것이다.

 

-EBS <데스> 제작팀, 『죽음』-

 

 

여전히 죽음을 금기로 여기고, 기피하고 외면하기만 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죽음 교육'은 절실하게 다가오고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지라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다시 말해서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살기 위해서 죽음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그 출발은 죽음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일 것이다.

 

미국 사우스플로리다 대학의 제이미 골든버그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죽음을 거부하는 태도가 돈과 소유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죽음이 사람들의 선택에 영향을 주게 된다면, 사람들은 점점 더 자본주의와 물질주의, 즉 더 많은 소유를 원하는 것에 탐닉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당장 이 험난한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상황도 매우 심각하지만, (이대로 진행된다면) 더 가파른 경사의 자본주의를 살아가야 할 청소년과 어린아이들은 더욱 애처로운 지경에 놓여있다.

 

어린아이에게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너무 이른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일지라도 가족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눈치 챕니다. 따라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행동을 보고 스스로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추측해 나갈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보는 아이들에게는 그 경험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는 3-4 살 어린아이들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질문을 하면 반드시 답을 원합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정직할수록 더 바람직한 답이 됩니다.

 

-앤 차머스-

 

우리가 맘 속에 지난 큰 문제들에 관해서,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생각하지만, 10대들은 아직 그런 경험을 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미래가 더 좋아지기보다 나빠질 것으로만 생각하죠. 특히 한국 학생들은 학업에 엄청난 압박이 있을 때나 시험에 나쁜 성적을 얻었을 때, 가족을 실망시키고 자기 자신을 실망시켰다는 자괴감에 자살하는 사례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만약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택하고 있다면 당신이 속한 사회가 설계된 방식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덜 성취하고도 당혹감과 실망감에 자살할 필요가 없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더 우선입니다.

 

-셸리 케이건-

 

- 구글 이미지 검색 -


프란츠 카프카는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죽는다. 예외 없이 그러하다.『죽음』은 우리가 '죽음'을 긍정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이고, 좋은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할수록 이타심이 증가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공정성도 강화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으로 어떤 죽음의 이미지를 형성해 나가느냐 혹은 상기시켰느냐에 따라 그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이나 또는 그들이 보이는 양상들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죽음이 강조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삶에 대한 열정의 강도(强度)가 높았다고 한다. 우리는 더 쉽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긍정적인 이미지의 죽음(예를 들면 낭만적인 죽음)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은 오히려 삶을 직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고, 그로 인해 더욱 열정적인 뜨거운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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