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정치는 지루한 것이었다. 일단, 하품부터 났다. 설령, 진득하게 바라보고 있더라도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것이었다. 가까이 가기 싫은 것, '나'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었다. 그들만의 언어로 재구성된 정치는 소위 '평론가'들의 잔치였다. 소통이란 불가능했다.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지난 2013년 2월 21일, 첫 방송을 시작한 JTBC의 간판 프로그램인 <썰전(戰)>은 이러한 '흐름'을 뒤짚어 버렸다. 정치와 예능의 융합이자 콜라보! (그것의 원조는 팟캐스트일 테지만, 어쨌거나 그 포맷을 TV방송으로 옮겨온 것은 썰전의 공로인 셈이다.) 정치는 재미 없는 것이라는 통념을 가볍게 넘어셨다. 단순히 재밌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프로그램의 이름답게 '썰[舌]'로 전(戰)쟁을 치를 정도로 뜨거웠다. 기존의 방송사들이 '눈치'를 보느라 쉬쉬했던 내용들까지 과감하게 건드리며 대중들을 만족시켰다.
물론 이건 초창기의 <썰전>에 대한 평가다. 처음에는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과감한 소재를 다뤘다면, 프로그램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제작진을 마냥 나무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원래 일정한 자극이 주어지면 우리는 거기에 반응하고 이내 적응을 해버린다. 애초에는 매우 강한 자극이었을지라도 적응기를 지나버리면 더 이상 그 자극으로는 어떤 반응도 이끌어 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썰전>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썰전>을 소비하는 대중들의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대중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고, 아무리 <썰전>이라고 하더라도 그 이상까지 내지를 순 없는 '막다른 지점'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최근 들어서, <썰전>의 전반부인 정치 비평보다 후반부인 예능 비평에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썰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치는 아저씨들이 모여서 떠드는 이야기로 여겨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편, JTBC 썰전 제작팀은 방송됐던 내용들을 묶어서 책으로 펴냈다. 표지에서도 느껴지는 것처럼 책은 매우 화려하게 구성되어 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향연뿐만 아니라 각종 사진과 자료들이 풍성하게 삽입되어 있다. 방송 <썰전>의 기획 의도가 정치를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독하게 풀어내자는 것이었던 만큼 책 <썰전>도 우선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겠다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이리라.
다만, 아쉬운 것은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JTBC 썰전 제작팀은 책의 도입부에서 '일러두기'를 통해, '편의상 한 명의 구성작가가 방송에 나온 내용을 선별한 뒤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형식으로 구성하였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부분은 아무래도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일 텐데, 개인적으로는 팟캐스트 '나는 꼽사리다'를 책으로 엮은『우석훈 선대인의 누나를 위한 경제』와 같은 방식, 즉 방송 내용을 대화체 형식으로 그대로 옮기는 것이 나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명의 구성작가가 내용을 통째로 정리하는 방식은 깔끔하게 설명하고 전달하는 데는 장점이 있지만, <썰전>이라는 방송의 생동감, 가령 이철희 소장과 강용석 전 의원의 미묘한 신경전과 예능적 요소를 살리지 못하게 된다는 한계가 있다. 이것은 'JTBC 최고 인기 프로그램 <썰전> 무삭제판!'이라는 책 홍보와도 부합하지 않는 꼴이다.
문득 궁금해진다.『썰전』이라는 제목에 끌려 책을 집어들었던 독자들은 과연 어떤 형식의 책을 기대했을까?
'버락킴의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애덤 스미스와 조지프 슘페터를 오해하고 있나요? (4) | 2015.03.06 |
---|---|
발췌된 부분과 왜곡된 전체, 『제국의 위안부』를 위한 변론 (3) | 2014.06.19 |
『심야 라디오』, 좀 가볍고 너무 착한 철학 에세이 (0) | 2014.01.05 |
『뻐꾸기의 알은 누구의 것인가』, 인생은 유전자에 각인된 것일까? (0) | 2013.12.30 |
『살인자의 기억법』, 쉽게 읽을 것을 '강요'하는 책 (0) | 2013.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