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책이라 마음에 들었다. 페이지가 132쪽에 불과하니 말이다. 무려 768쪽에 달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은 터라 (솔직히) 만만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으나, 첫 문단의 첫 문장에서 덜컥 막히고 말았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 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Barow 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p. 11)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로 시작하는 저 첫 문장에 클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