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의자는 사용된 목재가 조금 특별해요. 오래되거나 버려진 선박으로 만들어졌거든요. 참 신기하죠? 나무였다가, 배였다가 이젠 또 이렇게 의자였다가." (영화 속 이수의 대사)
근래 개봉한 영화 중에 이토록 '예쁜 영화'가 있었던가? 스크린에 눈을 맞추고 있는 내내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고 일어나면 매일 모습이 변하는 남자와 그런 그를 사랑하게 된 여자'라는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소재는 보는 사람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고, 마치 공들여 찍은 CF의 한 장면들을 연결해놓은 것 같은 신(scene)들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들의 사랑은 과연 순항(順航)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이들의 사랑은 반드시 이뤄져야만 해!'라는 응원(혹은 강박)으로 바뀐다. 이처럼 <뷰티 인사이드>는 관객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면서 당위(當爲)로 가득찬 '주장'을 펼쳐나간다. 하지만 점차 '의심'이 쌓여갔고, 마지막 순간 그 '홀림'에서 완전히 빠져나오게 됐다. <뷰티 인사이드>는 '넋놓고' 보면 그런 생각에 빠져들게 만드는 '참 예쁜 영화'다. 무슨 얘기냐고?
우선, 가벼운 '트집'을 잡는 좀스러운 짓은 하지 않기로 하자.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바뀌는 건 '겉모습'뿐인데, 외국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어째서 외국어로 말해야만 하는 걸까? 매일마다 얼굴이 바뀌는 남자 주인공(우진)이 어떻게 여권을 만들고 출국을 했을까? 영화 속의 부족한 개연성과 가벼운 허점들은 애교로 넘어갈 수 있는 정도다. 그게 판타지 멜로를 대하는 관객들의 태도 아니겠는가?
정작 참을 수 없는 것은 '자기 모순'이다. 영화의 주제 의식과는 동떨어진,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장면들을 마주하는 것이다. <뷰티 인사이드>는 끊임없이 말한다. '사랑'은 '외면'이 아니라 '내면'을 향하는 것이라고. 아무리 얼굴이 바뀐다고 해도,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있는 '너'일 뿐이라고. 과연 그럴까?
<뷰티 인 사이드>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21명의 배우를 동원한다. 21인 1역을 통해,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통해 답을 찾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무엇이 남았을까? '주장'만 공허히 남았다. 결정적인 장면마다 '잘 생긴 배우(김주혁 · 박서준 · 서강준 · 유연석 · 이동욱· 이범수 · 이진욱 · 이현우)'들이 등장하는 것은 이 한계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첫만남에서부터 사랑이 싹트는 과정에는 박서준이 등장하고, 직장 동료들에게 애인을개하는 자리에는 남자가 봐도 반할 것 같은 모습의 이진욱이 나타난다. 그 외에도 결정적인 '멜로'의 장면들에는 죄다 잘 생긴 배우들이 '우진'이 되어 나타난다. 다투고 화해하는 장면(서강준)에서도 심지어 헤어지는 순간에도 우진은 멀쑥한 모습(김주혁)이다.
반면, (이런 표현이 미안하지만) 상대적으로 '못 생긴 배우(김대명 · 김상호 · 김희원 · 배성우 · 조달환)'들은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에서 소비될 뿐이다. '외면'이 아니라 '내면'이 중요하다면, 그 내면을 마주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치려면, 상대적으로 못 생긴 배우들이 '결정적인 장면'에 등장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우습게도 <뷰티 인사이드>는 결국 사랑은 '외면'이라고 하는 시각적 정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그들의 사랑은 과연 순항할 수 있을까?' 영화는 이 문제에
집중하고, 관객들의 관심을 그들의 '연애'로 국한시킨다. 그런 덕분에 <뷰티 인사이드>는 안정적인 멜로 영화가 됐지만,
정작 가장 큰 물음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매력적인 소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소진시켜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그
질문은 과연 무엇일까? 이렇게 되묻는 건 어떨까? 그 사람의 외면과 그 사람의 내면은 분리 가능한 것일까?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오감(五感)으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그 사람의 '외면'은 '내면'과 전혀 무관한 것일까? 사랑은 보고, 듣고, 만지는 행위를 통해 발현되고 성장한다. 다시 말해 '외면'과 '외면'이 마주할 때, 그 교감을 통해 사랑은 더욱 단단해진다.
<뷰티 인사이드>는 '플라토닉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진부한 이야기를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자기 모순'에 갇혀 허우적대는 수준이지만 말이다. "그 사람과 뭘했는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사람 얼굴이 기억이 안 나"라고 고백하는 이수는 과연 사랑을 한 것일까? 얼굴 없는 그와의 만남들을 두고, 그를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감독은 '해피엔딩'을 선물하기 위해 무리하게 '재결합'을 시도한다. 정신분열증까지 걸리며 괴로워하는 이수가 체코로 떠나버린 우진을 찾아가게 만든다. 과연 이수는 '외면' 따위는 상관없는 사랑의 경지에 이른 것일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결론을 알지 못한다. 이수가 만난 우진은 잘 생긴 남자(유연석)였으니까 말이다. 만약 재회의 순간, 우진이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였다면 이수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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