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일은 엄청난 진통 끝에 시작됐던 '9시 등교'가 시행 1년을 맞은 날이었다.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1년>이라는 노래가 생각날 만큼 1년이라는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잠시 시계를 되돌려보자. 당시 경기도 교육청(이재정 교육감)은 "학생 중심 교육이 교육개혁의 첫 출발점이다. 어려움은 있겠지만 어려움을 풀면서 9시 등교를 이뤄냈으면 좋겠다"면서 역사적인 '9시 등교'의 첫걸음을 뗐다.
1주년을 맞아 공중파 뉴스를 비롯해 여러 언론들은 성적표를 매기기 위해 분주했다. 과연 경기도 교육청의 '9시 등교' 정책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을까? 학생들은 어떤 변화를 경험했을까? 학교의 풍경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9시 등교를 반대하는 엄마아빠의 이기심, 학생들이 우선이다 라는 글을 썼던 필자로서는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 것이 사실이다.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9시 등교'에 대한 전반적인 성적표는 긍정적이었다. 가장 보수적인 접근을 한 <국민일보>조차 '학생들은 대만족 · 교사들도 대부분 긍정적'이라는 부제를 달아놓았다. 학부모들의 반응도 대체로 호의적(好意的)이었다. 놀랍지 않은가? 반갑지 않은가? 자, 이제부터 '9시 등교'라는 마법이 바꿔놓은 가정과 학교의 풍경들을 살펴보자.
<KBS> 뉴스는 고등학교 2학년인 장하린 학생의 아침을 카메라에 담았다. 7시 20분, '9시 등교'가 시행되기 전만 해도 집에서 나서 등굣길에 있을 시간이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장하린 학생은 엄마가 준비한 아침을 먹을 여유가 생겼다. "천천히 준비해서 여유롭게 학교에 올 수 있는 그런 변화된 점이 있는 것 같"다는 장하린 학생의 말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엄마도 한결 마음이 놓인다. "지금은 조금 여유가 있어서 (아침을) 먹고 가니까 저는 마음이 좀 더 좋더라고요"
학교의 풍경도 많이 변했다. 경기도 하남시의 신장고등학교를 찾은 <SBS> 뉴스는 '오전 8시 10분 학생들이 하나둘 등교'하고 '삼삼오오 모여 수능 대비 공부를 하기도 하고, 복도에서 작은 공연을 열기도 한'다고 전했다. '등교에 여유가 생기면서 생긴 새로운 풍경'이다. 1학년인 이명은 학생은 "좀 더 많이 잘 수 있고 1교시에도 집중 잘 되고 아침도 꼬박꼬박 챙겨 먹을 수 있어서 더 좋은 것 같"다고 말한다.
경기도교육연구원에 따르면, '9시 등교' 이후 학생들의 수면시간은 7~31분 가량 늘었고, 아침 식사를 하는 학생도 8%p 증가했다고 한다. 이러한 데이터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연스럽게 추론해보자면, 지나치게 이른 등교 시간으로 인해 야기됐던 수면 부족이 완화되면서 수업시간에 졸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어느 정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또, 부족한 아침 시간 때문에 식사를 거르기 십상이었던 학생들의 생체 리듬과 건강 상태에도 파란불이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잠도 덜 깬 상태에서 부랴부랴 학교로 향했던 학생들에게 '아침'이 생겼고, 그 작지만 거대한 여유는 그들의 삶에 있어 큰 변화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9시 등교 이후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라면 아이들 표정과 발걸음이다" (김대원 화성 향남고 교장)
"학생들은 대체로 만족하는 것 같다. 오랜 관행에 변화가 있다보니 초기에는 '힘들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지금은 정착이 됐다" (안산시 H고등학교 B교감)
"관리와 통제의 학교문화가 완전자율로 바뀌면서 수업분위기도 달라졌다. 9시 등교 이후 쉬고 싶은 학생은 쉬게 하고 공부하고 싶은 학생은 공부하면서 자율권과 휴식권, 학습권이 동시에 보장된 측면이 있다" (성남 서현고 허왕봉 교장)
물론 '9시 등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얼토당토 않은 부정적인 의견은 걸러내야겠지만, 비판적인 문제제기까지 외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령, 교육청의 전격 시행을 두고 '학교장의 권한을 침해했다'는 반발은 그 고민의 출발점이 '학생'이 아니므로 무시(라는 표현이 지나칠지 모르겠지만)해도 좋을 것 같다. 이는 어른들의 단순한 기싸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고려해야 할 첫 번째 문제제기는 '수능 시험과의 부조화'이다. 8시 10분까지 수험장에 입실해야 하는 수능 시험과 '9시 등교'는 충돌하는 지점이 분명 있다. 이 문제는 두 가지 해법이 존재하는데, 첫 번째는 수능 시험의 시간을 조금 늦추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교육부가 그런 선택을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물론 '9시 등교'가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될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강원, 서울, 인천 등으로 확대된 점을 미뤄보면 불가능하진 않아 보인다.
두 번째 해법은 고3이 됐을 때부터 수능 시험에 맞춰 등교시간을 자율적으로 앞당기는 것이다. '9시 등교'는 등교시간의 마지노선을 정한 것이지, 더 일찍 오는 것까지 막지는 않는다. 이렇게 되면 '9시 등교'가 무색해진다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기지만, 개인적인 활로를 찾고자 한다면 고려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수능 시험은 한 사람의 인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가.
다음으로 고려할 만한 문제제기는 맞벌이 부부의 고민이다. 아무래도 초등학생 자녀를 학교에 일찍 보내고 출근하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교실)
열쇠를 번호 키로 해서 번호를 알려주는 선생님도 있고, 근데 그건 방치잖아요. 혼자 있다가 다치면 누구 책임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소연하는 학부모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 문제는 학교 내에서 자체적으로 일찍 등교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을 따로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해결할 수 있다. 또, 사회적 고민도 필요하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의 경우 출근 시간을 조금 늦춰주거나 탄력적인 근무 시간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어떨까? 그렇게 된다면 맞벌이 부부들도 출근에 쫓기지 않고 자녀들과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테고, 아이들이 눈에 밟혀 마음 고생을 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
ⓒ 인천일보
'9시 등교'는 시행된 지 고작 1년이 지났다. 긍정적인 효과가 분명하고 성공적으로 안착되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 요소는 잠재되어 있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존재한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사회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사회적 고민이 뒤따라야 하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여전히 학생들의 수면 시간은 부족하고, 절대적인 학습 부담은 높기만 하다. 최악의 입시 제도가 이 땅의 아이들을 질식시키고 있다.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훨씬 더 많은 본질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학생'들이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어른들의 잣대와 판단이 아니라 '학생'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묻고 들어야 한다. '9시 등교'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는 것처럼, '학생'들을 위한 또 따른 변화들이 또 다시 시작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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