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리의 '어른'들과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있다고 치자. 그들은 서로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까. 엿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어른들은 젊은이들을 향해 '버릇없다'며 혀를 끌끌 찬다. 요즘 애들은 예의도 없고, 어른에 대한 공경심도 없다는 것이다. 반면, 젊은이들은 어른들에게 '꼰대'라는 이름을 붙이고 기피한다. 애초에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불만, 소통 기피를 한마디로 '세대 갈등(단절)'이라 규정할 수 있을 텐데, 그 원인을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기타노 다케시의 말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젊은이들이 예절범절을 배우지 않는 건, 귀감이 되는 어른이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남자에게 있어 예의범절이란 어떤 종류의 동경이거나 '그때 그 사람은 멋졌지'라는 기억이다. 가까이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강요하지 않아도 따라하고 싶어진다. … 그렇게 생각하면 노인이 '요즘 젊은이는 예의범절이 없어'라고 말하는 건, 하늘을 향해 침을 뱉는 것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젊은이들의 입장에서 듣자면 그야말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절묘한 설명이다. 속이 좀 시원해지는 느낌이랄까. 너무 편향적인가. 한편, 기타노 다케시가 내놓은 '답'이 가장 완벽한 형태로 구현된 방송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최근 가장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예능인데, 이쯤되면 아마 떠오르는 제목(또는 장면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같은 대답을 하길 바란다. 바로 tvN <윤식당>이다.
열정으로 가득찬 셰프이자 오너인 윤여정과 그 누구보다 성실한 아르바이트생 신구, 뉴욕대 경영학과 출신의 합리적인 상무 이서진, 특유의 사랑스러움으로 '윰블리'라는 별명을 얻은 주방 보조 정유미. 이렇듯 <윤식당>은 2명의 어른(노인)과 2명의 젊은이(청년)으로 구성돼 있다. 식당을 찾은 손님들은 이들을 바라보며 '가족'일 거라 짐작한다. 노년의 부부와 그들의 자녀들이 함께 운영하는 식당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제작진의 의도가 고스란히 반영된 설정이기도 하다. 은퇴 후에 저렇게 살고 싶다는 대중들의 환상을 제대로 '저격'한 것이다.
4명의 출연자 모두 매력적이지만, 특히 윤여정과 신구가 보여주는 모습은 놀랍다. 기타노 다케시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귀감이 되는 어른'이자 '닮고 싶은 어른'이다.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워너비' 대상이다. 그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어김없이 최선을 다한다. 열정을 쏟아붇는다. 한마디로 프로페셔널하다. 자신의 몫을 후배들에게 미루지 않고, 오히려 앞장 서서 솔선수범한다. 또, 호기심이 넘치고, 도전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늙었다'는 표현이 어색한 이유다.
1936년생, 여든을 넘긴 노배우가 식당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한다? 참신한 발상이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신구는 "나같은 노인네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로 서빙을 한다고?"라고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의외로 나같은 노인네가 서빙을 하는 풍경이 재미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열린 사고를 가졌다는 방증이다. tvN <꽃보다 할배>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신구는 묵묵히 자신의 책임을 다한다. 외국인 손님들과 소통하며 홀 서빙과 안내라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푸근한 그의 미소는 윤식당 영업의 크나큰 힘이다.
누가 뭐래도 <윤식당>의 주인공은 역시 윤여정이다. 그의 캐릭터가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방향을 결정했다. "60살이 되어도 인생을 몰라요.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 67살이 처음이야." 2013년 tvN <꽃보다 누나>에 출연했던 당시 그의 말은 뭇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의 한마디는 진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몇 년이 흘렀고, 그는 이제 70대가 됐다. 여전히 그에게 '인생'을 묻는다면, 똑같이 대답할 것이다. '70살이 돼도 인생을 몰라요'라고 말이다.
그는 솔직하다. 직설적이다. 감추는 게 없다. 혹자는 그런 모습을 두고 까칠하다고도 한다. 후배들의 입장에선 상대하기 힘든 깐깐한 선배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후배들이 윤여정이라는 이름에 '존경'을 표하고, 그의 '팬'임을 자처한다. 심지어 정유미는 윤여정과 가까워지기 위해 <윤식당>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방송 중에 정유미가 윤여정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주방 보조로서 셰프인 윤여정을 더욱 잘 보필하기 위해 애쓰는 장면들은 훈훈한 미소를 자아냈다.
윤여정의 데뷔 50주년 행사에서 이서진이 축사를 하는데 윤여정은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진심을 담아 해 봐."라고 끼어들었다. 그러자 이서진은 "진심으로 말씀드리자면 술, 담배를 좀 줄이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직언'을 날린다. 윤여정의 반응이 더 재미있다. "저건 진심이야. 진심을 말하랬더니 진심을 말하네." 이것이야말로 윤여정의 진정한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인간적인 매력이 바탕되지 않는다면 후배들의 신망을 얻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는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나이를 무기 삼아 상대방을 짓누르려 하지 않는다. 언제나 귀를 열고 들으려 하고 누구에게나 배우려 든다.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는 데 머뭇거리지 않는다. 또, 자신을 돕는 이서진과 정유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아끼지 않는다. 잘하는 건 잘한다고 칭찬하고, 지적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따끔하게 말한다. 권위의식 없는 그의 모습은 오히려 권위를 만들어 낸다. 후배들의 존경과 애정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이서진과 정유미가 특별하게 '예의 바르고', '제대로 된' 젊은이라서가 아니다.
<윤식당>이 성별과 세대를 초월해서 사랑받고, 시청자들에게 무한한 '힐링'을 선사할 수 있는 숨겨진 포인트는 바로 이러한 '꼰대 없음'이다. 진짜 영업 비밀이라고나 할까. <윤식당>은 여러모로 대중들의 '판타지'를 건드리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나에게도) 존경할 만한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는 '어른'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광장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고함을 치는 '애국보수'라는 이름의 꼰대들이 아닌가. 자신의 경험에 압도돼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격리'시킨 '꼰대'들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어른'들을 몰아세울 필요는 없다. 미워하면 닮는다고 했던가. "나는 '나 때는 이랬어, 옛날엔 그랬는데, 내가 너만 할 때는'라며 오지랖부리는 젊은 꼰대들이 싫다"는 방송인 유병재의 외침처럼 이른바 '젊은 꼰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증언들이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제법 통쾌했던 기타노 다케시의 말은 어느새 부메랑이 돼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윤여정과 신구 같은 어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가 그들처럼 나이 들기 위해 '지금부터' 애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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