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변호인>의 부림사건,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걸린 33년의 시간

너의길을가라 2014. 9. 2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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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집으로 들이닥쳐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끌려가 2개월간이나 고문을 당했다. 당시 대공분실은 부산역 근처 '동서문화사'라는 간판을 내건 건물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끌려가자마자 거꾸로 매달아 놓고 '매 타작'을 하는데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부림사건의 피해자 송병곤 씨-


"한 젊은이는 62일간 불법 구금되어 있었다. 그 어머니는 아들의 시신이라도 찾겠다고 영도다리 아래부터 동래산성 풀밭까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헤매고 다녔다. 그 청년의 이름은 송병곤이었다" - 노무현, 『운명이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무죄면 무죄판결 받아내야죠. 그게 내 일입니다."


1,137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변호인>의 소재이자 인권변호사 노무현의 시작이었던 '부림사건(釜林事件)'의 피해자 5명(고호석(58), 설동일(58), 노재열(56), 최준영(62), 이진걸(55)씨)이 무려 33년 만에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재심 사건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만큼 이로써 '부림사건'과 관련된 모든 재판이 마무리됐다.



1980년대 대표적인 공안사건인 '부림사건'은 1981년 사회과학서적을 공부하던 부산지역의 학생과 회사원 등 22명이 전두환 정권에 의해 불법 체포 · 감금 당하고 고문을 받았던 사건이다. 참고로 '부림'이라는 명칭은 부산의 '학림 사건(學林事件)'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1999년에 22명의 피해자 가운데 송병곤 씨를 비롯한 11명이 재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2006년 1월 재심 신청을 기각했다.



송 씨 등은 재항고를 신청했고, 대법원은 2008년 8월 재심을 받아들었다. 2009년 8월 14일 부산지법 형사항소3부(홍성주 부장판사)는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면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법원이 기각 결정을 내려 재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사회과학서적 독서모임에 참가했다가 체포돼 고문을 당했던 '부림사건'의 파해자 김재규 전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은 "우리가 재심을 청구한 사안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국가보안법 위반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실망스럽다"면서 완전한 명예회복이 이뤄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었다.



"당시 경찰이 영장도 없이 피고인들을 불법으로 연행하고 자백을 강요했다. 피고인들이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고문과 가혹행위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지만 피고인들의 불법 감금 기간이 상당히 오래고 검찰이 증거로 제시한 진술서도 상당한 기간이 지난 뒤 작성된 점 등으로 미룰 때 증거가 될 수 없다. 피고인들이 계엄법을 일부 위반한 것은 맞지만 1979년 12·12쿠데타와 1980년 5·18 학살을 통해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군사정권의 범행을 저지하고 반대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였다"


그리고 다시 5년의 시간이 흘렀다. 2014년 2월 13일 부산지법 형사2부(재판장 한영표)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유죄판결을 한 부림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한 고호석(56)씨 등 5명한테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2009년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도 재심에 의해 무죄로 판명남에 따라 이제 남은 것은 재심 사건 상고심뿐이었다.


그리고 25일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이 올해 초에 내려졌던 무죄 판결을 확정함에 따라 고호석(58), 설동일(58), 노재열(56), 최준영(62), 이진걸(55)씨 등 5명은 그토록 고대하던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무려 33년이라는 긴 세월, 감시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길고도 긴 고통의 시간을 보냈던 그들이었다.



부림 사건의 모델이었던 학림 사건의 2심 재판에서 배석판사로 참여했던 판사 황우여는 현재 새누리당의 대표를 거쳐 대한민국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되어 국가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부림 사건'을 주도했던 당시 부산지검 공안 책임자인 검사 최명국은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에서 16, 17, 18대 국회의원(울산 남구갑)을 지냈다.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하고, 국민을 억압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던 전두환을 비롯한 5공 정권에서 떵떵거리며 권력을 행사했던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에 대한 합당한 벌을 받으며 반성하면서 지내고 있을까? 물론 그 대답이 'NO'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낙담하진 말자. 너무도 긴 세월이 소요되긴 했지만, 진실은 조금씩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정의(正義)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가 지치지 않는다면, 정의가 바로 서는 그 순간도 분명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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