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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의 애잔한 MBC '하드 캐리', 때론 응원조차 미안하다

너의길을가라 2015. 11. 25.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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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방송을 볼 때마다 느끼지만, <무한도전>의 기획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굵직한 장기(長期) 프로젝트에서부터 단발성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문제 혹은 사회적 이슈에 관한 것부터 가볍고 소소한 주제에 이르기까지 '<무한도전>이 하면 다르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만큼 특별함이 느껴진다. 물론 다수의 제작진의 노력의 산물이겠지만, 중심을 잡고 있는 김태호 PD의 천재성을 부인할 수 없다. 때로는 소름이 돋을 정도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1일 방송된 '무도 드림' 특집은 멤버들의 24시간을 각종 콘텐츠 시장에 경매 형식으로 판매하고, 그 낙찰 수익금을 좋은 취지로 기부하는 그야말로 '기똥찬' 기획이었다. 이번 특집이 그 어떤 기획보다 영리(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영악'했다)하다고 여겨졌던 것은 그 어떤 불쾌함 없이 시청자들에게 자사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효과까지 거뒀다는 데 있다. 


MBC 측은 <무한도전>이라고 하는 최고의 프로그램을 통해 MBC의 각종 프로그램들을 광고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워서 떡 먹는 방식으로 해낸 것이다. <무한도전>은 정형돈이 빠진 빈자리를 두고 제기되는 위기론에 쐐기를 박으며, <무한도전>은 특정한 개인의 역량에 의해 좌우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체계적인 '시스템' 위에 놓여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경매에 참여한 MBC의 프로그램들은 더할나위 없는 홍보 효과를 거머쥐었으니 이건 '윈윈'을 넘어 '윈윈윈'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무한도전>의 멤버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 설령 경매를 통해 낙찰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무한도전>을 통해 자신의 프로그램을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바보'는 없지 않겠는가? 무려 24개 팀이 참여할 정도였으니 그 열기를 짐작할 만 하다.



뜨거운 입찰 경쟁을 거쳐 유재석은 주말드라마 <내 딸 금사월>, 박명수와 하하는 각각 영화 <아빠와 딸>과 <목숨건 연애>, 정준하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 광희는 <그린실버-고향이 좋다>에 낙찰됐다. 박명수 이마 때리기를 놓고 벌어진 경매에서 12만 원이라는 저렴한 비용으로 엄청난 홍보 효과를 거둔 영화 <아수라>가 조용한 승자가 됐다.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관심은 자연스레 높아졌고, 주요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유재석이 천재 화가로 등장한 <내 딸 금사월>은 26.7%의 시청률(닐슨코리아 기준)을 기록하며, 지난 방송분(23.9%)에 비해 2.8%P 상승했다. <스포츠동아>는 '내 딸 금사월' 유재석 투입 무리수? 라는 기사를 통해 시청률에서 큰 효과를 보지 못했고 일회성에 불과하다고 폄하했지만, TV 화제성 분석 결과를 보면 지난주 10위에서 4위를 기록하며 급등한 것을 보면 단순히 시청률로만 따질 수 없는 효과가 분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광희가 일일 리포터로 출연해 방어 잡이에 나선 <그린실버-고향이 좋다>의 경우에는 '대박'이 터졌다. 시청률도 지난 방송분(1.5%)보다 1.5%P가 상승한 3%를 기록했고, 온라인에서도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 일명 '방어PD'로 불리는 최재혁 PD는 "<무한도전>이 무섭다는 걸 느꼈다. 파급력이 컸던 것 같다. 프로그램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많이 알려져서 좋다. 앞으로도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놀라움을 전하기도 했다.


사실 <무한도전>은 '상생'의 정신을 어떤 프로그램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실천해왔다. 가장 최근인 추석만 해도 외화 <비긴 어긴인>의 '더빙'에 도전해 점차 외면받고 있는 더빙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2008년 1월 드라마 <이산>에 카메오로 출연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는 공을 세우기도 했고, MBC에브리원 <무한걸스>와 합동 촬영을 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스포츠의 비인기종목을 재조명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도 했고, 재능은 있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예능 꿈나무들을 발굴하는 데 힘을 쏟기도 했다.




하드캐리(Hard Carry) : 다른 팀원들의 역량이 부족해서 질 것 같은 경기를 월등히 잘 하는 한 명의 사용자가 팀을 승리로 이끄는 행위를 지칭하며, 이를 '하드캐리한다'고 부르기도 한다. 

- <네이버 지식백과> 에서 발췌 -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했고, 언론에선 이를 두고 '상생'이라고 보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무한도전>은 스스로의 영향력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한때 폐지 직전까지 갔던 프로그램이 최고의 프로그램으로 등극한 후 '올챙이 적 일을 잊지 않고' 따스한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말이 떠오른다. '하드 캐리'!



소위 '엠빙신'이라고 불릴 만큼 MBC의 몰락은 눈에 띈다. 시청자 만족도 평가(KI 지수)에서 MBC는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언론사 신뢰조사에서는 2013년 이후 순위권에서 사라졌다. 송호창 의원은 "MBC가 경영진의 연이은 실책으로 2류 방송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하면서, MBC가 잃어버린 3가지로 우수한 인적자원, 세월호 보도의 교훈, 책임경영을 지적했다.


김재철 사장 재임 시절 파업에 참여했던 200여 명에 대한 부당 해고와 징계가 이어졌고, 이후 MBC 구성원들의 집단 이탈이 본격화됐다. 가장 타격이 컸던 시사보도 부문뿐만 아니라 예능 쪽도 구멍이 뻥 뚫렸다. MBC 예능의 상징적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여운혁 PD를 비롯해 <위대한 탄생>의 임정아 · <쇼바이벌>의 성치경 PD 등이 차례차례 MBC를 떠났다. 


지난 2014년에는 <무릎팍도사>, <아이돌육상대회>, <나혼자 산다>를 연출했던 오윤환 PD와 <무한도전>의 마건영 PD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MBC 측은 PD들의 잇딴 이탈을 그저 '돈 문제'로 치부했지만, MBC PD 협회는 "자율성이 사라졌고 비전도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경영진이 연출과 편성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창작에 대한 욕심이 있는 PD들은 절망감을 느끼고 떠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엠빙신은 무도가 다 먹여 살리는구나", "망해가는 MBC를 무도에서 살리네"라는 네티즌들의 반응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만큼 MBC 내에서 <무한도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최근 <복면가왕>이나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같은 젊은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여전히 <무한도전>이 MBC 예능을 이끌어 나가고 있고, 심지어 MBC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역할까지 도맡고 있다.


'미래도 비전도 없는 난파선'으로 전락한 MBC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무한도전>과 김태호 PD를 볼 때마다 애잔한 마음이 든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저 MBC의 '소년가장'인 <무한도전>이 어떻게든 버텨주기를 바랄 뿐이다. 때론 응원조차도 미안하다. 그럼에도 염치없게도 응원할 수밖에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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