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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장애' 정형돈의 활동 중단, 예능인을 위한 시스템은 없는가?

너의길을가라 2015. 11. 15.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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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연예계에서 정형돈은 분명 특별한 사람이었다. 지난 2008년 <무한도전>에서 자아를 찾기 위해 인도의 갠지스 강을 찾은 정형돈은 멤버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면서 "버라이어티 방송을 하면서 너무 많은 모차르트를 봐왔다. 나는 살리에르 증후군이다"며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는 "모차르트들의 재능을 받쳐줄 수 있는 피아노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진솔한 고백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던 수많은 시청자들이 함께 공감했고, 방송인 정형돈뿐만 아니라 인간 정형돈에 대해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다. 그렇게 수 년의 시간이 지났다. 정형돈은 이제 '웃기는 거 빼고 다 잘하는' 천덕꾸러기도 아니라 '예능 4대 천왕'이라 불릴 만큼 자타 공인 최고의 예능인이 됐다. 그는 살리에르이기도 했지만, 실은 모차르트이기도 했다. 



MBC <무한도전>을 비롯해서 JTBC <냉장고를 부탁해>, KBS2 <우리동네 예체능>, MBC <능력자들>, MBC에브리원 <주간아이돌>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는 등 대체 불가의 존재로 맹활약하고 있는 그가 '불안 장애'를 이유로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정형돈의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2일 "자사 소속 방송인 정형돈 씨가 건강상의 이유로 당분간 방송 활동을 중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래전부터 앓아왔던 불안장애가 최근 심각해지면서 방송을 진행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제작진과 소속사 및 방송 동료들과 상의 끝에 휴식을 결정하게 됐다" (FNC엔터테인먼트)


불안장애. 사실 정형돈에게 이상(異常)이 감지된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12년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정형돈은 "불안장애 약을 먹고 있다. 김제동 씨가 착한 얼굴로 옆에 앉아 있는데 이유 없이 나를 찌를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고백했었다. 이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감기 같은 거"라고 넘겨버렸지만, 그가 선물하는 웃음의 이면에 얼마나 큰 고통이 숨겨져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최근에는 이런 불안장애가 좀더 심해진 듯 하다. 웃다가 갑자기 울기도 하는 등 감정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현장 스태프들에게 "나한테 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니 이해해달라"며 미안해하며 양해를 구했다고 하니 상태가 어느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병원을 다니면서 약을 복용했지만, 빡빡한 스케줄은 그에게 회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여건이 갖춰지지 못했다. 


물론 그 또한 정형돈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물 들어오면 노 저어야 하는' 예능계의 현실과 그가 짊어지고 있는 책임감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한 관계자는 "방송을 쉬고 싶어 한 건 이미 오래 된 얘기. 정작 본인은 내적으로 힘든데 도리어 인기가 올라가고 러브콜이 늘면서 스케줄을 강행해야 했다. 방송에선 웃는 모습만 나왔지만 실상 카메라 뒤 정형돈은 늘 불안정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정형돈의 활동 중단으로 당장 예능계는 '정형돈 없는 예능'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지난 14일 방송된 <무한도전>은 오프닝에서 유재석의 입을 통해 "정형돈이 당분간 하기 힘들 것 같다는 의사를 전했다. 당분간은 정형돈과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밝혔는데, 최근 들어 멤버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만큼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러 분야에서 팔방미인의 매력을 뽐낸 정형돈의 공백은 큰 타격일 수밖에 없다.



<무한도전>만큼이나 정형돈의 존재감이 확고한 JTBC <냉장고를 부탁해>도 위기를 맞이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 9월 정형돈이 폐렴으로 입원을 했을 때 셰프들이 대신 진행을 하며 방송을 꾸린 경험이 있다는 점인데, 이번에도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정형돈의 빈자리를 잠시 채우게 될 것으로 보인다. MBC에브리원 <주간아이돌>도 정형돈이 개척한 프로그램이란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새로운 MC를 섭외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 정형돈의 활약이 다소 적거나 촬영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프로그램들은 새로운 MC를 구하거나 대체자를 선발할 것이다. 사실 방송에 대한 걱정은 우리의 몫은 아니다. 흔히 '내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곧 착각임을 깨닫게 되지 않던가? '시스템'은 결국 굴러가게 마련이다. 정형돈도 이에 대한 부담은 갖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치료가 우선이고, 건강하게 돌아오는 게 중요하다.




"미래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불안하다. 운 좋게 잘 되다 보니까 내 밑천이 드러날까 봐. 내 능력 밖의 복을 가지려고 하다가 잘못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형돈의 방송 중단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부분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 예능인이 처한 현실 같은 것이다. 한 작품을 끝내면 일정기간 휴식기를 갖는 배우나 앨범을 내고 활동기가 지나면 재충전을 갖는 가수들과 달리 예능인은 그런 여건이 전혀 갖춰져 있지 못하다. MC들의 경우에는 쉼없이 매주 녹화에 참여해야 하고, 보조 출연자의 경우에는 섭외 전화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자기만의 시간을 가진다거나 자기계발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직업에 대한 불안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커질 수밖에 없고,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결국 탈이 나고 만다. 정형돈과 같은 케이스는 과거에도 수없이 많았다. 이들을 위한 '시스템'은 전무(全無)한 것이 현실이다. 그야말로 하루살이 인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웃음을 만드는 예능인은 정작 웃지 못하고 있는 아이러니. 이건 단순히 개인적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또 다른 정형돈의 사례가 잇따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방송가와 예능인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이젠 조금씩이라도 바꿔야 할 때가 됐다. 유재석, 이경규, 신동엽, 김구라 등 대형 MC들이 예능인을 위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함께 고민을 한다면 좋은 해답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시즌제'나 '정기 휴가' 등이 본격적으로 도입된다면 훨씬 더 나은 환경에서 예능인들이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찌보면 '고작' 한 명의 방송인이 휴식을 취하는 대수롭지 않은 일에 수많은 사람들이 두 손을 모아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건 무슨 까닭일까? 마치 내 가족의 일처럼 가슴 아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무래도 정형돈이라는 예능인이 보여준 '진심'을 시청자들이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웃음'을 위해 최선을 다하던 그의 진심 말이다.


정형돈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우리 앞에 돌아오길 응원한다. 살리에르이자 모차르트인 그가 다시 그만의 재능을 마음껏 뽐내는 '내일'이 하루빨리 찾아오길 바란다. 그리고 예능인을 위한 시스템이 마련돼, 건강한 예능인이 주는 건강한 웃음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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