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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시상식 자초한 대종상, 그럼에도 적반하장이라니?

너의길을가라 2015. 11. 2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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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함께 하는 영화제인데 대리 수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참석하지 않으면 상을 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주기로 결정했다" (대종상 측)


너도나도 '국민'이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는 탓에 '국민이 함께 하는 영화제'라는 말에 쉽사리 동의할 수는 없지만, '대리 수상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엔 심정적 동의를 보낸다. 그렇다고 '참석하지 않으면 상을 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 건 어이없는 일이다. 제52회를 맞은 대종상이 투명하지 않았던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하며 내세운 '대리수상 불가' 방침은 포인트가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발상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조근우 대종상영화제 사업본부장의 워딩을 좀더 꼼꼼하게 읽어보자. 지난 20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이다.


"영화 수상자들은 전문심사위원들이 달리기하듯 1등과 2등을 뽑는 것이 아니다. 4·5명 후보 중에서는 누가 받아도 손색이 없는 배우나 후보작을 선정한다. 무슨 수학공식이나 달리기처럼 1등이거나 2등이라고 정해지면 형평성에 어긋나지만, 결국은 후보로 뽑힌 4·5명 수상자(작)들은 누가 받아도 비슷하다는 의미다. 수상자로 결정된 후보가 관객들에 대한 예의와 매너가 있어야 하는데, 기본적인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주는 것보다 최소한 시상식에 나타나는 준비된 배우를 주자는 것이 '대리수상 금지'이다. 오지 않으면 그 다음 후보에게 상을 줘야한다는 의미이다."


그럴 듯한 말이다. 하지만 조 본부장의 위와 같은 말은 '대리 수상'의 문제 없음을 밝히는 동시에 '대종상'에 변별력과 기준이 없음을 공개적으로 설명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우리 상은 아무런 권위가 없어요!"라고 외친 꼴이랄까? '대리 수상'을 없애는(혹은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안 오면 상 안 줄 거야"라고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꼭 와서 받고 싶을 만큼' 상의 권위를 높이는 것 아닐까?



스스로 권위를 세워나가기보다 권위의식으로 배우들을 짓누르려한다는 날선 비판에 직면한 대종상 측은 결국 대리수상 불가 방침을 철회했지만, 이른바 '출석상'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 와중에 중국 배우의 수상 결과에 대해 몇 차례나 입장을 번복하는 등 52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지닌 영화제가 보여서는 안 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13일 대종상 측은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중국 배우 고원원(高圓圓)과 순홍레이(孫紅雷)가 해외부문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 수상을 위해 참석한다"고 밝혔다가, 하루가 지난 14일에는 "이들은 아직 후보이며 수상 결과는 미정이다"며 수상결과를 번복했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15일에는 다시 "고원원과 순홍레이가 해외부문 남녀주연상 수상을 확정했다"며 왔다리갔다리 하는 모습을 보였다. 



모르긴 몰라도 이들의 '출석 여부'가 갈팡질팡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어찌됐든 낯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대종상 측이 원로 배우인 김혜자에게 범한 무례는 경악스러울 정도다. 김혜자 측 관계자에 의하면, 대종상 측이 지난 11월 초 새롭게 신설된 봉사상인 '나눔화합상'을 수여하려 한다며 참석을 요청했지만, 연극 공연 때문에 참석이 어렵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이쯤에서 마무리됐다면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각자의 입장을 전달하는 것에서 일단락 됐던 문제가 시끄러워진 것은 대종상 측이 재차 연락을 취했기 때문이다. 김혜자 측에 의하면, 대종상 측에서 시상식을 며칠 앞두고 "수상자로 김혜자 선생님만한 분이 없다"며 재차 권유하면서 대리 수상으로 하되 영상메시지로 소감을 받겠다고 제안했고, 김혜자 측은 이를 수락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상식을 하루 앞둔 19일까지 대종상 측에서는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않았고, 이를 이상하게 여겨 문의를 했더니 "대종상 측에서 '방송사 사정상 영상메시지 촬영이 불가능해 진행이 어렵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혜자 측은 "신인배우도 아니고 연기 생활을 오래한 배우에게 이런 식의 무례를 행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상을 가지고 사람을 농락하고 있다"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짓을 시키다니. 같이 후보에 오른 이병헌 감독이다. (백감독과)일면식도 없지만 상을 잘 전해주겠다" 


이른바 '출석상'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대종상의 호기(豪氣)로운 삽집은 남녀주연상 후보 전원 불참이라고 하는 최악의 결과를 만들었다. 마치 집단 보이콧을 연상시키는 파행은 어찌보면 충분히 예고된 일이었다. 대부분의 시상식이 최소 한 달 정도의 여유를 두고 배우들의 참석 여부를 체크하는 데, '대리 수상 불가'를 내세웠던 대종상 측은 2주 전에 섭외를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 촬영 등 다른 스케줄이 잡혀 있는 배우들로서는 갑작스러운 섭외에 응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웠던 것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그렇지만, 웃음거리로 전락한 시상식에 참석해 '출석상'을 받을 만큼 자존심이 없는 배우가 적어도 저 후보들 가운데는 없어 보이기도 하다. 설사 상을 받는다고 해도, 그 상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 받아도 부끄러운 상을 누가 달가워하겠는가?


배우뿐만 아니다. 수상을 한 감독과 스태프도 대거 불참했는데, 대리수상자를 섭외조차 하지 못해 사회자인 신현준이 상을 받거나 같이 후보에 올랐던 다른 감독이 수상을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도 발생했다. 신인감독상을 대리수상한 이병헌 감독은 "이런 말도 안되는 짓을 시키다니"라며 황당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심지어 '나눔화합상'의 경우에는 "시상자가 불참했다"는 황당한 이유를 들어 수상조차 하지 않고 넘어갔다. 김혜자의 이름을 아예 불리지도 않았다. 



애초에 남우주연상 후보에 <사도>의 송강호가 빠지고 여우주연상 후보에 <무뢰한>의 전도연과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이정현이 없었던 것부터 의아했던 만큼 '공정성'에 의심이 갔던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대종상은 더욱 명확한 기준을 갖고 공정하고 깨끗한 시상을 해야만 했다. 그것이 대종상에 실망했던 대중들의 마음을 돌리고, 스스로의 권위를 세우는 길이었다.


▶최우수작품상=국제시장 ▶감독상=윤제균(국제시장) ▶남우주연상=황정민(국제시장) ▶여우주연상=전지현(암살) ▶남우조연상=오달수(국제시장) ▶여우조연상=김해숙(사도) ▶기획상=국제시장 ▶시나리오상=박수진(국제시장) ▶촬영상= 최영환(국제시장) ▶조명상=김민재(경성학교) ▶편집상=이진(국제시장) ▶기술상= ▶음악상=김준성(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미술상=채경선(상의원) ▶녹음상=이승철 한명환(국제시장) ▶의상상=조상경(상의원) ▶신인감독상=백종열(뷰티 인사이드) ▶신인남우상=이민호(강남1970) ▶신인여우상=이유영(봄) ▶해외 부문 남우주연상=쑨홍레이 ▶해외 부문 여우주연상=고원원 ▶인기상=김수현 공효진 ▶첨단기술특별상=국제시장CG▶공로상=정창화 윤일봉


- 붉은 색은 불참자



그러나 수상 결과는 영화 팬들의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1,426만명 관객을 동원한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이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편집상, 녹음상, 첨단기술특별상, 촬영상, 기획상, 시나리오상 등 10개 부문을 휩쓸며 최다 수상의 영광을 안았지만, 그 외에도 화제를 모았던 다른 영화들을 압도할 만큼의 영화적 가치가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과거의 투명하지 못했던 시상으로부터의 단절을 선언했던 대종상은 심사위원을 공개조차 하지 않았다. 과연 공정한 심사를 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스스로 파행을 자초한 대종상 측은 반성은커녕 오히려 적반하장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남녀주연상 후보들의 전원 불참 소식이 전해지자 조근우 본부장은 "영화제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몇 억씩 들어가는데 누구를 위해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면서 "우리나라 배우 수준이 후진국 수준"이라 비판했다. 모든 책임을 배우들에게 전가하는 발언이다. 과연 대종상 영화제의 수준은 어떤 수준인지 묻고 싶어진다.


'땅에 떨어졌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대종상의 권위는 지하 속으로 깊숙이 쳐박혔다. 조급했고 성급했다. 권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티끌이 태산을 만드는 것처럼, 쌓이고 또 쌓이는 그 지난한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배우들도 곧 사람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협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뢰'에서 나오고, '존중'에서 나온다. 드라마 <송곳>에 나오는 말처럼, 그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대종상 측은 배우들을 그리고 대중들을 너무 띄엄띄엄 본 것이다. 그 대가를 아주 처절하게 치른 셈이니 누가 누굴 탓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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