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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마프>는 정말 장애인을 비하했을까?

너의길을가라 2016. 5. 2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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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놈들은 다 돼도 두 종류 놈은 안돼. 유부남, 그리고 너희 삼촌처럼 장애인."


난희(고두심)는 딸인 완(고현정)을 향해 단호히 말한다. 순간 완의 얼굴은 싸늘히 굳어버린다. 그가 함께 할 수 없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남자인 연하(조인성)를 떠올렸으리라는 건 자명하다. 아직(4회)까지 연하가 다리를 다친(장애인이 된) 이유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맥락'을 살펴보면 불의의 사고로 인해 갑자기 두 다리를 못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하루 아침에 장애인이 된 연하가 겪었을 고통과 막막함, 그리고 연하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눈 앞에서 지켜 본 완이 겪었을 상처, 두 사람이 결국 '이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의 장벽. 그런 것들이 물 밀듯 밀려왔다. 알 것 같았다. 노희경 작가가 두 사람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말이다. 이런 '감(感)'은 '노희경'이라고 하는 작가에 대한 오랜 '신뢰'에서 비롯된다.



그가 전작(前作)들에서 일관적으로 해왔던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시청자가 노희경을 알지 못하고, 당연히 그의 전작을 보지 못했을 것이기에 '오해'가 생겨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tvN 금토미니시리즈 <디어 마이 프렌즈> 2회에 등장한 위의 대사는 안타깝게도 '장애인 비하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말았다. 


자신을 '장애인의 아내'라고 밝힌 한 시청자는 장문의 글을 공식 홈페이지에 남겼는데, "장애인은 자신의 선택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유부남이 처녀를 만나는 것은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것이지만 장애인을 바람난 유부남과 동격으로 이야기했다"며 불괘함을 드러냈다. 이에 제작진은 "해당 대사가 불편한 마음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제작진도 깊이 공감하고 있다. 노희경 작가도 집필 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하신 대사라고 말씀했다"면서 '해명글'을 남겼다.


"저희가 고민 끝에 ‘장애인을 반대하는 엄마’라는 설정과 대사를 넣은 이유는 기존의 사회적인 편견을 가감없이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맞서 그것을 깨는데 기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해당 대사는 장난희(고두심 분)의 입을 빌려 우리 주변 어르신들이 간혹 자신의 자식들에게 하는 이기적인 말을 현실적으로 표현한 대사로, 이는 그러한 생각을 가진 '꼰대'같은 엄마와 그런 엄마를 답답해하는 딸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설정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에 실제로 존재하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시선을 있는 그대로 직시함으로써 그것이 야기하는 고통에 공감하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함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러한 편견에 갇힌 캐릭터가 변화를 겪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불편한 시각과 사회적 편견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 <디마프> 제작진의 해명글 -


우선, <디마프>의 그 장면이 장애인을 비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불쾌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특정한 장면과 대사에 대해 개인이 불쾌함을 느끼는 것과 그것이 장애인 비하와 같은 '속성'을 지니는 것은 다른 문제다. "세상 모든 놈들은 다 돼도 두 종류 놈은 안돼. 유부남, 그리고 너희 삼촌처럼 장애인"이라는 대사가 장애인을 비하한 것인지 여부를 따져보려면, 그 '맥락'과 '의도'를 살펴봐야 한다. 


가령,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희화화' 시키는 장면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는 (케이스를 따져봐야 겠지만) '장애'의 특성을 한낱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린다(맥락이 없다)는 점에서 '장애인 비하'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이 경우에 '제작진'의 반응은 한결같다.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미성숙'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우리가 그런 사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방증과도 같다.



그렇다면 <디마프>의 경우는 어떨까? 굳이 연하를 '장애인 역할'로 설정한 까닭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생각 없는 개그 프로그램처럼 단순히 장애인을 비하하기 위해서? 아니면 '유부남'과 장애인'을 동급으로 패대기치기 위해서? 우리는 난희가 "너희 삼촌처럼 장애인"이라고 강조해서 말하고 있는 지점에 주목해야 한다.


'너희 삼촌처럼'의 '처럼'이라는 조사가 의미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3회에서 밝혀졌듯) 연하가 완의 삼촌처럼 '다리'가 불편한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암시다. 두 번째는 난희의 인식 속에 '장애인'은 '삼촌'과 동격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직 두 사람의 관계가 직접적으로 묘사된 적은 없지만, 난희에게 '장애인'은 '가족'이라는 '현실'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난희가 갖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그의 시동생이라는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돼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확장됐을 가능성이 높다제작진은 "기존의 사회적인 편견을 가감없이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맞서 그것을 깨는데 기여하고 싶었기 때문"이라 밝히고 있다. 작심하고 부딪치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노희경이라는 '겉 맥락'과 드라마의 전개 방향이라는 '속 맥락', 그리고 제작진의 '의도'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디마프> 속 논란의 장면을 '장애인 비하'라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 거침없이 말하는 난희라는 캐릭터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드러낸 것은 역설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기 위한 '장치'라고 봐야 한다. 



"근데, 다리를 못 쓰니 진짜 너무 불편하다. 거봐, 다리 얘길 안 할 수가 없잖아. 완아, 난 내 다리가 그리워. 그래도 하지 말까? 서울에 사는 아버지, 나랑 같이 사는 누나도 내가 다리 얘기를 하면 고개를 돌리는데, 그냥 그리워 말까, 그리워도? 안 잊혀져도 그냥 잊어? 그래도 생각나면 '미친놈 뭐 그런 걸 생각해' 하고 내가 날 혼낼까? 내가 내 뺨이라도 칠까? 그럼 되나? 난 내 다리 그리워, 완아. 그래서 이런 얘길 누구랑이라도 하고 싶어. 그리워서 뭘 어쩌겠냐고? 맞아, 뭘 어쩌지 못해. 근데, 그리우면 그립다 말해도 되는 거 아닌가? 뛰고 싶고, 수영하고 싶고, 너랑 걷고 싶다고 말하는 게, 듣기 힘들어? 네가 좀 참아주면 안 될까? 난 말하고 싶은데. 내가 너랑 이런 얘길 할 수 없다면 여기서 그만 관두자 우리." 


<디어 마이 프렌즈> 3회


"오늘은 너한테 말을 해야지 싶었어. 나도 너처럼 네 다리가 많이 그립다고. 근데, 그런 말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내가 그런 말 하면, 네가 많이 더 불편하겠다. 그러니까 상처받을 수 있겠다. 지레짐작 했거든. (내 다리가 언제 제일 그립지?) 네 생각하면 다. 너랑 장난칠 때, 침대 위 레슬링. 그리고 뭐, 다 같이 길 걷고, 웃고, 내가 너 올려다 보고, 네가 나 보고, 뛰고. 지금 너도 좋아, 나는. (그때가 지금보다 더 좋은 건 사실이야. 너나 나나. 거봐, 인정하면 그뿐이잖아. 이렇게 편하게 다리 얘기도 할 수 있고, 추억도 되새김질 하고. 그렇더라고 난, 이렇게 다리를 못 쓰는 것도 기분이 그런데, 우리의 추억마저도 없어진 기분이 드는 건 너무하다 싶더라고."


<디어 마이 프렌즈> 4회


제작진은 "향후 그려지는 내용을 직접 보시면 충분히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3회에서는 연하가 의식적으로 다리에 대한 이야기를 피하는 완에게 자신의 다리가 그립다는 담담한 고백과 함께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면 관두자고 이별을 선언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4회에서는 두 사람이 '다리'에 대해, '장애'에 대해, 그리고 '추억'에 대해 솔직담백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담겼다.



여전히 담담하게 표현된 두 사람의 대화 가운데 특히 의미심장했던 부분은 '나도 너처럼 네 다리가 많이 그립다'고 말하는 완이 "그런 말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런 말 하면, 네가 많이 더 불편하겠다. 그러니까 상처받을 수 있겠다"고 "지레짐작 했"다고 말하는 대목이었다. 흔히 '깨어있다'고 볼 수 있는 완조차도 하고 있는 그 '지레짐작'을 우리들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불편하고 상처받을 것이라 생각해서, 무례한 것이라 짐작해서, 일부러 대화를 회피하고 덮어두려는 선의(善意)의 외면들이 되려 상처를 덧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리운 다리'에 대해, '그리운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연하처럼, 우리 주변의 그들도 마찬가지인 것은 아닐까? 논란 이후에 방영된 <디마프> 3, 4회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의 또 다른 측면을 지적하면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디마프>는 소위 '꼰대'들이 갖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까지 건드릴 것이다. 노트북 화면 속의 연하와 반갑게 안부 인사를 나누고, "자빠뜨려"라고 농담을 건네는 난희를 보건대, 그는 연하가 다리를 다쳐 '장애인'이 된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연하가 '삼촌'처럼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난희의 반대와 그들 모두(심지어 시청자들)의 '변화'가 드라마를 통해 그려질 것이다.


'개인적인 불편함'과 '장애인이라는 대상 전체에 대한 비하'를 동일시할 수는 없다. 둘은 '교집합'일 수는 있지만, '합집합'은 아니다. 또, 노희경을 모르는 시청자들에게 '노희경의 맥락'을 이해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드라마 전체의 맥락'을 살피지 않았다고 해서 타박하기도 어렵다. 조금 더 인내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개인적인 불편함이 발생한다면 그 원인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더불어 제작진의 사과도 적절했다고 보여진다) 자신을 '장애인의 아내'라고 밝힌 그 시청자가 계속해서 <디마프>를 시청할지 안 할지 알 수 없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그분이 인내심을 갖고 계속해서 <디마프>를 시청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진정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방송을 통해 확인하고 '오해'를 풀었으면 좋겠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가진 것은 소위 '꼰대'들뿐만 아닐 것이다. '쿨'한 척 하는 우리들도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편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완의 대사는 그 현실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노희경 작가는 <디마프>를 통해 그 엄청난 편견과 금기에 도전하는 동시에 우리들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아프다. 아픈 만큼 성장하게 될까?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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