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답잖은 질문으로 글을 시작해보자. JTBC <미스티>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이론의 여지 없이 고혜란(김남주)이다. 분량만 놓고 봐도 다른 배우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을 뿐더러(모든 등장인물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주목도가 높다. 무엇보다 고혜란은 사건을 이끌어 가는 주체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주인공은 사건의 중심에 있고, 그 사건의 전개와 밀접하고 긴밀한 관련을 맺는다. 다시 말하면 주인공은 사건 그 자체다.
얼마 전에 종영했던 KBS2 <흑기사>를 떠올리며 똑같은 질문을 해보자. 이번에는 좀 헷갈릴지도 모르겠다. 이견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 우선,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들만의 멜로에 집중하며, 알콩달콩을 시전했던 문수호(김래원), 정해라(신세경)라는 대답이 많으리라. 하지만 샤론(서지혜)이었다는 항변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분명 알고 있다. <흑기사>에서 사건을 이끌어 가는 주체는 샤론이었다. 냉정히 말하면 <흑기사>의 주인공은 샤론이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이 질문을 위해서다. 그렇다면 SBS <리턴>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다시 이견의 여지가 없다. 바로 오태석(신성록), 김학범(봉태규)이다. 혹시 최자혜(고현정-박진희)라고 생각하는 시청자들이 있을까? 역시 시청자들은 알고 있다. 분량은 물론이고, 스포트라이트도 태석과 학범의 차지다. 무엇보다 그들이 사건을 이끌고 나간다. 지금은 박진희로 '페이스 오프' 됐지만, 최자혜 역을 맡았던 고현정은 '특별출연' 수준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그러니까 계약 단계부터 그랬을까? 그랬던 것 같진 않다. <리턴>의 드라마 소개를 보면 ‘TV 리턴쇼 진행자 최자혜 변호사가 … 살인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나’간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리턴>은 ‘태석과 학범의 범행일기’쯤 될 법한 전개로 흘러가고 있다. 드라마 초반,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상류층 망나니들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던 점은 이해한다. 또, 그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그러자 <리턴>은 주인공 자리를 아예 내주기에 이른다.
주연과 조연이 뒤바뀐 것이다. 사전 제작이라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사실상 생방송으로 제작되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피드백이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가장 중요한 소스는 역시 ‘시청자 반응’이다. 다시 말해서 반응에 따라 극본 변경이 가능하고, 심지어 종용된다. 굳이 제3자의 개입이 없어더라도 작가 스스로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특정 캐릭터가 인기를 끌면 더 많은 역할을 부여하고, 어떤 사건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면 그에 대한 비중을 높이는 게 당연시 된다.
그러다 보니 주연과 조연의 역할을 바뀌는 것, 주인공의 자리를 다른 캐릭터에게 내주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런 방식이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그다지 권장할 일은 아니다. 이야기가 흐트러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흑기사>는 샤론 캐릭터가 인기를 끌면서 부각됐지만, 그에 따라 주인공의 역할이 사라지면서 시청자들의 불만에 직면했다. 그리고 시청률 하락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초반의 기대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샤론의 역할을 살리되, 적절히 조절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리턴>도 마찬가지다. 최자혜가 사라지면서 '악행'만 강조됐고, 그것이 자극적이라 시청률은 상승했을지언정 이야기의 짜임새가 헐거워졌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미스티>가 고혜란을 중심으로 쫄깃한 스토리를 전개하면서, 다양한 조연 캐릭터들의 매력까지 살리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주인공이 사라진 괴상한 드라마 <리턴>은 제작진과 주연 배우 사이에 갈등을 야기했고, 결과적으로 고현정은 하차를 통보 받았다. 제작진은 자신들이 선택했던 배우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언론의 입을 통해 흘렸고, 고현정은 배우로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또, 이번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가십거리들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인격적으로도 상처를 입게 됐다. 설령 배우와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책임감 있게 해결하는 것이 제작진의 의무임에도 이를 방기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주연과 조연이 뒤바뀐 <흑기사>, 그리고 같은 이유로 진흙탕이 돼 버린 <리턴>을 통해 좋은 드라마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적어도 <흑기사>와 <리턴>에 박수를 쳐주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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