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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를 보며 빌었다. ‘윤복이가 행복하게 해주세요’

너의길을가라 2018. 2. 2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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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3사가 평창 동계 올림픽 중계에 올인하느라 드라마 결방을 결정했을 때, tvN <마더>는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올림픽 무대에서 뜨거운 열정을 보여준 선수들의 모습도 감동적이었지만, <마더>가 시청자들을 향해 던진 묵직한 울림도 그에 못지 않았다. 비록 시청률은 2.7%(닐슨 코리아 기준)에 그치고 있지만, <마더>는 완성도 높은 웰메이드 드라마로 시청자들의 가슴 속에 각인돼 가고 있다. 



"엄마, 나 이제 가야할 것 같아요. 엄마가 나 때문에 가족들과 헤어지면 안 되니까요. 나는 윤복이인 게 좋았어요. 하늘만큼 땅만큼 엄마를 사랑해요."


윤복(허율)이가 수진(이보영)을 떠났다. 아니,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했다.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하는 엄마 수진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 담담함이 놀라웠고, 그만큼 슬프고 시렸다. 학대라고 하는 끔찍한 현실로부터 도망쳤고, 어쩌면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어쩌면 순진했던 건 우리가 아니었을까. 윤복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도망치려 할 때마다 현실은 그림자처럼 바짝 따라붙었다. 추격은 끈질겼고, 결국 꼬리를 밟혔다. 친모 자영(고성희)이 들이닥쳤고,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자영은 "네가 필요해"라며 윤복을 데려가려고 했지만, 윤복은 "엄마, 혜나도 죽었어요. 이제 혜나는 집으로 갈 수 없어요. 내 이름은 윤복이이에요."라며 단칼에 거부했다. 그리고 "엄마가 행복해져도 불행해져도 어쩔 수 없어요. 이젠 엄마 딸이 아니니까."라며 자영을 돌려보냈다. 


자영의 출현으로 영신(이혜영)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됐다. 둘째 이진(전혜진)은 수진의 행동을 탓하며 격분했다. 가족들이 위험에 빠지게 됐다는 게 이유였다. 또, 자신의 아이들의 안위를 걱정했다. 야박하게 말하는 이진이 얄미웠지만, 그의 생각을 틀렸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셋째 현진(고보결)은 수진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그로 인한 피해를 감내하겠다고 말했다. 가족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던 영신은 집안의 가장으로서 결단을 내렸다. 



"우리 가족들을 지켜야하는 가장으로서, 수진이가 계속 위험한 길을 가야한다면 난 수진이를 우리 가족에서 내보낼 수 밖에 없다. 네가 끝까지 저 아이를 포기하지 않으면, 엄마가 너를 포기하마. 넌 더이상 내 딸이 아니다. 변호사가 파양 절차에 관해서 설명해주실거야."


2층 기둥 뒤에 앉아서 가족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윤복은 떠나기로 결정했다. 아니, 떠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 때문에 수진이 파양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윤복은 그런 아이였다. 천천히 자신의 짐을 정리한 윤복은 수진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고 떠났다. 집을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벌써 보고 싶다"며 혼잣말을 했다. 덤덤하게 표현됐지만, 몹시 가슴 시린 장면이었다. 어린 윤복이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이 안타까웠다. 


<마더>는 눈물 없이는 결코 볼 수 없는 드라마다. 또, 허점이 없다. 연출(김철규 감독)과 극본(정서경 작가)은 물론이고, 배우들의 연기에도 빈틈이 없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밀도가 높다. <마더>는 제목 그대로 마더(Mother), 그러니까 엄마에 대한 이야기다. 달리 말하면 '모성'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더>에는 다양한 모습의 엄마가 등장하고, 그들의 모성은 모두 제각각이다. 우리가 흔히 주입받았던 일반적인 의미의 모성이 아니다. 


<마더>는 '모성'에 대한 정답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성은 이래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 있다. 애초부터 없는 정답에 매어 있지 않다고 해야 할까. 선과 악을 나누지도 않고, 누군가를 손가락질하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윤복/혜나를 학대한 자영이 표적인듯 보였지만, 그가 미혼모로서 모든 책임을 홀로 져야 했던 안타까운 사연과 현실이 공개되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으리라 믿는다. 



"전 요새처럼 엄마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뱃속으로 낳은 딸이 아닌데도 가슴으로 품어주신 엄마가 아니었다면, 이런 식의 사랑이 완벽하게 가능하다는 확신을 주신 엄마가 아니었다면 저는 그 아이를 데려올 용기를 내지 못했을 거예요."


파양을 결정한 영신에게 수진이 내비쳤던 진심은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수진이 용기를 내 윤복을 데려올 수 있었던 건, 영신이 자신에게 보여줬던 헌신적인 사랑 덕분이었다. 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수진은 엄마가 될 결심을 할 수 있었다. 흔히 우리는 '핏줄'을 중요시 하고, '낳은 정'을 '기른 정'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지 않던가. 그래서 '모성'을 매우 협소한 사랑으로 격하시키지 않았던가. 


수진의 말은, 그리고 이땅의 수많은 입양 가정들의 존재는 그 생각에 좀더 많은 고민을 던진다. 편협했던 우리의 사고에, 그렇게 멈춰 있던 우리의 경직성에 찬물을 끼얹는 듯 하다. 부디 윤복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물론 수진도 그랬으면 좋겠다. 자영도 그러길 빈다. 과연 <마더>는 어떤 해답을 찾아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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